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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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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접하게 잘 싸우네

등록 2009-07-02 10:11 수정 2020-05-02 19:25
<코미디쇼 희희낙락>

<코미디쇼 희희낙락>

연예인은 거짓말쟁이다. 7년간 열애 중이지만 그냥 아는 오빠·동생 사이고, 버라이어티쇼에선 미녀들을 번쩍번쩍 들지만 군 생활엔 부적합한 약골이고, 비키니 미녀는 운동만 열심히 해서 더블 A컵에서 D컵으로 진화했다. 솔직히 귀엽고 안쓰럽다.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 생활을 하려면 착한 척, 행복한 척, 안 고친 척, 억울한 척… 모든 척에 능통해야 하니까. 아침 토크쇼의 카메라는 그 모든 ‘척’에 곱게 분을 발라왔는데, 이제는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유세윤의 자폭형 ‘인간극장’이 그 분을 벗겨내다 못해 피부까지 뜯어내고 있다.

끊어질 듯 말 듯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평일 심야의 비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 아슬아슬하지만 흥미진진한 한주 한주를 보내고 있다. ‘김준호 쇼’가 기상천외한 가짜 토크쇼로 몇 번 번개탄 같은 불꽃을 터뜨렸는데, 촬영 소스가 제한된데다 같은 패턴이 이어지다 보니 조금 힘을 잃은 듯하다. 대신 ‘유세윤의 인간극장’이 회를 더해가면서 연탄처럼 달구어지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감동의 생활 다큐멘터리 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온 이 코너는 4년 연상의 부인과 신혼살림을 시작한 개그맨 유세윤의 사생활을 보여준다. 요즘은 워낙 사생활 밀착형 리얼리티쇼가 많아 순진한 시청자들이 ‘진짜’라고 믿을지도 모를 만큼 능청스러운 에피소드들을 이어간다.

결혼 직전 마지막으로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해보려고 애쓰는 세윤, 동료 개그맨 장동민의 아버지처럼 아들을 따라 TV에 출연해보려는 세윤 어머니, 집들이에 A급 연예인을 초대했다고 옆방으로 쫓겨나더니 앙심을 품고 부인의 나이가 많다고 할 말 안 할 말 다 해대는 친구들. 겉보기엔 솔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수위가 만만치 않다. “열심히 해서 떠야지. 너네들이 안 뜨니까 이렇게 서러움받잖아.” “너네 어머니가 며느리 하나는 잘 뒀다. 말은 잘 통하겠네. 같은 세대 사람이니까.”

순진한 시청자들은 ‘저러다 진짜 싸우겠다’며 아슬아슬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치고받는 맷집은 케이블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인 에서 오랫동안 갈고닦아온 것이다. 이들은 추접하게 싸울 줄 안다. 연예인들의 위선을 후려치는 그 위악이 제법 통쾌하다.

유세윤·유상무·김준호 등 출연자들의 구질구질한 연기도 일품이지만, 다큐멘터리를 비꼬는 여러 장치들도 양념을 더해준다. 특히 3인칭 시점이어야 하지만 주관이 가득 담긴 강유미의 내레이션이 우리의 마음을 뽁뽁 찔러준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진 세윤이 준호가 혼자 사는 집에 놀러가는데, 아침에 컵라면과 함께 단무지를 통째로 내놓는다. 그때 식의 억양으로 들리는 내레이션. “6·25 때도 단무지는 썰어먹었다.” 세상에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진짜처럼 능청맞게 거짓말을 해대는 이 프로그램이 더욱 솔직해 보인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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