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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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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주의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사회의 ‘통합’보다는 ‘분리’로 귀결된 정책,
영국 철학자가 제공하는 다문화사회의 경험과 교훈 <사회의 재창조>
등록 2009-07-02 09:56 수정 2020-05-02 19:25
<사회의 재창조>

<사회의 재창조>

현재 국내의 결혼 이주여성이 약 15만 명이라고 한다. 주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이 급증하는 추세인데, 이들 가정의 자녀 수도 2010년엔 10만 명을, 그리고 2020년에는 16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문화가정의 양적 확대는 자연스레 한국 사회를 다문화사회로 접어들게 할 것이고, 이에 따르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도 제기될 것이다. 그것이 한국 사회가 당면하게 될 불가피한 미래라면 다문화사회로 먼저 진입한 사회의 경험과 교훈을 참고해보는 것도 유익하겠다. 영국의 철학자이면서 영연방 유대교의 최고지도자이자 랍비인 조너선 색스의 (말글빛냄 펴냄)가 적절한 길잡이가 돼줄 듯하다.

시골 별장에서 호텔로

이미 다문화사회로서의 한국을 진단하고 조망하는 책들이 여럿 출간돼 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색스의 책은 좀 독특하다. 영국이 경험한 다문화사회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하여 다문화주의의 극복과 다문화사회의 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다문화주의가 오늘날 수명을 다하고 있으며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다고까지 말한다. 어째서 그런가? 그것은 다문화주의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사회 통합이 아닌 분리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 다문화주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한 사회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배타적이고 더 편협하게 변모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대교 랍비답게 색스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서 세 가지 유형의 사회를 설명한다. 첫 번째는 ‘시골 별장으로서의 사회’다. 이 별장에는 주인과 손님, 곧 내부인과 외부인이 있으며, 다수와 소수가 존재한다. 별장 주인이 아무리 따듯하게 환대하더라도 외지인은 주인이 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손님으로만 남는다. 두 번째는 ‘호텔로서의 사회’다. 호텔은 시골 별장이 줄 수 없는 자유와 동등한 권리를 제공한다. 애초에 내부인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주류문화도, 국가적 정체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1950년대까지는 시골 별장 모델이 지배했다고 한다.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인이 영국 사회의 주류이고 내부인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갖은 사회적 충돌이 빚어졌고 결국 내부인과 외부인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다문화주의가 채택됐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호텔 투숙객’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투숙객’들은 ‘호텔 주인’이 아니기에 그 ‘호텔’에 대해서 아무런 애착도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색스가 보기엔 이것이 다문화주의가 궁극적으론 실패한 이유다. 기대와는 달리 다문화주의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막아내지 못했고 오히려 분열만을 더 심화시켰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세 번째 모델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으로서의 사회’다.

사회는 상호존중에 바탕을 둔 ‘언약의 산물’

사회적 통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보수적이지만, 그러한 통합이 과거와 같은 시골 별장식 모델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점에서, 즉 미래 지향적이라는 점에서는 진보적이기도 하다. 색스는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소속감이 사회적 공공선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에서 창출돼야 한다고 본다. 이때 그가 강조하는 것은 국가와 시장의 바깥에 있는 가치들이다. 그는 사회가 국가와 시민 간의 계약관계의 산물이 아니라 상호존중과 신뢰에 바탕을 둔 언약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사회 언약론자’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사회는 이방인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사회 자체가 구원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는 인류가 공존을 위해 고안해낸 최선의 방식이다. 각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을 통해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을 때 사회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이 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사회는 다문화주의를 넘어설 때 도달할 수 있는 사회다. 더불어 한국 사회와는 아직 거리가 먼 사회다. 이 또한 ‘당신들의 사회’인 것일까?

로쟈 인터넷 서평꾼·blog.aladdin.co.kr/mr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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