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실험하고 시트콤 찍는 TV 광고

‘2천원 커피’ 편견 깬 맥카페, 인기 폭발 오주상사 영업 2팀 등 영리해진 ‘15초의 마술’
등록 2009-01-22 10:22 수정 2020-05-03 04:25

한 교실에 7명의 실험자가 앉아 있다. 6명은 연기자이고 나머지 1명은 피실험자이다. 피실험자는 자신이 속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 이들 앞에 맛과 향이 똑같지만 하나는 4천원, 나머지 한 잔은 2천원인 커피를 내놓고 어떤 커피를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다. 연기자 6명은 차례로 4천원짜리 커피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한다. 맨 마지막 질문을 받은 피실험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이들을 따라 4천원짜리 커피를 선택한다. 이윽고 나오는 자막. “인간은 상황에 지배받는다.”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TV 광고들이 늘어나면서 광고를 이용한 새로운 콘텐츠도 생겨나고 있다. 시트콤 형식을 도입한 오즈 광고(왼쪽)와 여행 다큐로 만들어진 대한항공 광고.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TV 광고들이 늘어나면서 광고를 이용한 새로운 콘텐츠도 생겨나고 있다. 시트콤 형식을 도입한 오즈 광고(왼쪽)와 여행 다큐로 만들어진 대한항공 광고.

‘방송 불가’ 내용 보려 인터넷으로

최근 TV에서 전파를 탄 맥도날드 커피 ‘맥카페’ 광고다. 맥도날드는 ‘별도 콩도 잊어라’라는 도전적인 카피로 본격적인 커피 시장 진입을 알렸다. 맥도날드 홍보팀 김주영씨는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자 심리실험을 하는 다큐멘터리 기법 광고를 선보였다”고 말했다. 맥카페의 광고가 눈길을 끄는 건 메시지가 주는 울림 외에도 실험 방식이 눈에 익어서다. 광고는 지난해 교육방송에서 방송된 를 참고해 만들었다. “모두가 오답을 말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는 ‘애시의 동조실험’ 내용을 응용해 만든 광고다.

‘15초의 마술’인 TV 광고가 영리해지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변하고, 인터넷TV(IPTV)나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매체 환경이 나뉘면서 광고는 소비자의 생리적 필요인 ‘니즈’(NeedS)와 사치스러운 욕구인 ‘원츠’(Wants)를 찾아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인터넷과 연계된 TV 광고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여준다. 대개의 광고 타깃인 20~30대 젊은 소비자가 스스로 광고를 찾아보게끔 만들고 있다. 광고대행사 엘베스트의 송진아 부국장은 “TV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메이킹 영상’ ‘광고 풀(Full) 버전’ 등 번외편을 제작해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광고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가장 화제가 됐던 광고는 단연 LG텔레콤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오즈-오주상사 영업2팀’ 광고다. 대우전자의 ‘신대우가족’, 한솔PCS의 ‘018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사용된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광고다. 고전 방식임에도 눈에 띄는 건 이야기 배경과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꼼꼼하게 설정해두고 매회 다른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시트콤’ 형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광고는 ‘카리스마 부장’ 장미희, ‘애교 대리’ 이문식, ‘촐랑 과장’ 유해진 등 개성파 배우 5명을 출연시켜 직장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그날이 오면’ ‘계약 10분 전’ 등 총 8편으로 제작된 광고는 15초 분량 TV 광고를 내보내면서 “방송 불가 버전은 인터넷에서 확인하세요”라는 자막을 같이 흘린다. 짧아도 웃기고 감동적인 재미를 주는 광고를 본 시청자는 기업 홈페이지를 찾은 1천만 명의 누리꾼이 됐다. 시간을 늘려 제작된 ‘온라인판’ ‘영화특별판’ 등 번외편들이 인기를 끌면서 영화로 재구성해달라는 누리꾼들의 요청도 이어졌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안도 해왔다. 광고가 광고로 그치지 않고 제2·제3의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광고를 만든 HS애드 공진성 팀장은 “아날로그적인 삶을 사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친근하고 따뜻하게 그리면서 웃음을 준 것 같다”며 “광고의 선호도가 곧바로 브랜드 선호도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태희와 빅뱅이 ‘아이스크림송’을 부르며 춤을 추는 사이언 ‘아이스크림폰 2’, 베컴이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라며 스포츠팬들을 자극했던 아디다스 ‘임파서블 이즈 나싱’(Impossible is Nothing) 광고 등도 TV에서 인터넷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광고다.

비자 면제 맞춘 미국 여행 프로그램

좀더 뻔뻔해진 광고 방식도 등장했다. 대놓고 특정 브랜드나 상품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담아 보여주는 ‘브랜드 엔터테인먼트’다. 광고는 내용의 일부를 노출해 호기심을 유발하고 케이블TV나 인터넷, 극장 등 전체 내용을 볼 수 있는 매체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항공의 새로운 광고 시리즈다. 대한항공은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 시행에 맞춰 한효주·하석진·이완이 출연하는 광고 ‘로드트립 USA’를 5월까지 선보인다. 출연자들이 미국 동부와 중부, 서부를 45일간 여행하면서 촬영한 내용은 케이블 채널인 XTM에서 란 이름으로 방영 중이다. 지난해 한효주의 동부 여행편은 방영이 끝났고, 1월29일부터 하석진의 중부편이, 4월에는 이완의 서부편이 방영될 예정이다. 총 50개의 여행지 소개 동영상(약2~3분 분량)을 대한항공 여행정보 사이트(Travel.koreanair.com)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이 중 15개를 15~30초 분량의 TV 광고로 편집해 방영중이다.

콘텐츠와 광고를 동시에 집행하려면 제작비는 기존 광고보다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엘베스트 송진아 부국장은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판단이 서면 기존 광고와 차별화해서 브랜드를 노출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광고”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애니콜 뮤직비디오인 ‘애니모션’, 소지섭이 주연한 쌍용자동차 ‘액티언’ 광고 드라마인 ‘유턴’, 류승범·신민아·현빈을 모델로 단편영화처럼 제작된 엑스노트 노트북 광고 ‘여름날’ 등이 선보인 바 있다. 제일기획 이정은 홍보차장은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이에 맞는 효과적인 광고 방법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추세”라면서 “예전엔 ‘신문광고를 참조하세요’였다면 이제는 ’인터넷에서 확인하세요’라는 TV 광고가 늘었다”고 말했다.



바이럴 광고의 위력
재밌으면 바이러스도 괜찮아


인터넷 동영상 광고가 먼저 만들어진 뒤 TV 광고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2007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촬영된 매일유업 가공우유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사용자제작콘텐츠(UCC)가 대표적인 예. ‘바나나는 하얀데 왜 바나나 우유는 노랄까’를 꼬집은 이 UCC는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호기심을 자극해 소비자를 ‘낚은’ 광고다. 웹상에서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것을 목표로 만든 ‘바이럴 광고’인 이 제품 광고는 온라인상의 인기를 등에 업고 TV 광고에서도 성공했다. 그해 대한민국방송광고페스티벌 작품상과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받았다.
KT 인터넷전화 광고

KT 인터넷전화 광고


온라인에서 뿌려지는 바이럴 광고는 TV나 옥외 광고 등의 매체 집행비보다 싼데다 누리꾼 스스로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확산시키는 자발성이 장점이다. 각 포털 사이트에서 누리꾼들의 흥미를 끈다면 브랜드나 상품 노출이 이보다 더 효과적일 수 없다. 광고나 제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인터넷을 놀이터로 삼은 이들이 만든 UCC 덕분에 중단됐던 기업 TV 광고가 살아나기도 한다. 롯데삼강은 지난해 영화 이 개봉할 때쯤 한 누리꾼이 만든 ‘빠삐놈’ UCC 덕분에 매출이 늘었다. 영화 배경음악에 쓰인 스페인 그룹 산타 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와 1989년에 제작된 빙과류 ‘빠삐코’ TV CM송을 합성한 동영상이 폭발적인 패러디 문화를 이끌면서 어부지리로 롯데삼강 빠삐코 판매율이 40% 이상 올라간 것이다. 때 아닌 호재에 중단됐던 TV 광고까지 재개됐다.
최근 눈에 띄는 바이럴 광고는 KT 인터넷전화 동영상이다. KT는 ‘라디오 스타’의 김구라·신정환·윤종신·김국진을 광고모델로 섭외해 프로그램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촬영했다. 초대손님은 KT 마케팅 부장. 자신들을 광고모델로 섭외해줘 고맙다는 인사말로 시작한 모델들은 프로그램 속 캐릭터 그대로 “후발 주자잖아?” “KT가 돈 벌려는 수작 아냐?”식으로 마케팅 부장을 몰아붙인다. 토크쇼 형태의 광고인데 ‘라디오 스타’를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유머 코드가 살아 있다. 인터넷 동영상용으로 12분짜리 풀버전을 본 누리꾼들은 “광고지만 재밌다”는 반응이다. KT 박인순 홍보과장은 “온라인에서 프로모션이 펼쳐진 20일 동안 60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고, 각종 포털에서 동영상을 다운로드해갔다”며 “단말기 판매도 이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TV 광고는 현재 고려 중이다.
영상 자체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거나 흥미롭다면 ‘속아서 본 광고’라도 배신감이 들지 않는다는 게 요즘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