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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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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다른 삶은 가능하다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은이 목수정씨… 한국과 프랑스를 가로지르며 느낀 희망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레디앙 펴냄, 1만3천원)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게다가 ‘프랑스 남자’라니. 겉장을 넘기면 지은이의 이력이 나온다. 관광공사에서 문화축제 기획, 4년 뒤 연극 기획자로 변신, 외환위기 이후 파리8대학에서 문화정책 공부, 프랑스인과 사랑에 빠져 딸 출산, 2003년 한국에 돌아와 국립발레단에 취직,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정책연구원으로 활동, 흙 건축 공부. 지은이의 삶은 발칙하거나 도발적이거나 매혹적이다. 그는 누구일까.

때론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한국 남성을 비판하는데, 이유가 뭔가.

=그들은 가부장적이고 창의적이지 않다. 희완(프랑스인 연인)이 낮 12시에 여의역에 갔다가 너무 놀랐다. 공포영화처럼 건물 밖으로 같은 양복과 와이셔츠를 입은 부대가 쏟아져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성매매에 많은 돈을 소비하면서 자식들은 미국식 기독교로 키우려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런 남성성은 시장만능주의로 이어진다.

연인 희완이 본 한국을 좀더 이야기해달라.

=그는 한국 사회가 미스터리하다고 말한다. 삶의 조건은 비명을 지를 만큼 힘들다. 재래시장은 대형마트에 밀려 빈민들의 집합소가 됐고,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많을 정도로,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없다. 다들 자살하기 일보 직전 같은데, 왜 그렇게 밝고 친절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시민연대계약’(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커플들에게 법적 부부는 아니지만 결혼에 따른 각종 혜택·권리를 인정해주는 제도)을 했다. 왜인가.

=한국에선 ‘동거’라는 말의 울림이 암울하다. 왜 결혼해야 하나. 머릿속 몇 가지 버튼만 바꿔주면 된다. 프랑스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어서 시민연대계약을 했다.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한국 문화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비판인 것 같다.

=아이 팬티 하나 사러 가도 미키마우스 등 미국 만화 캐릭터가 그려지지 않은 게 없다. 문화적 다양성을 죽이는 건 자본주의다. 오죽하면 국제사회가 문화다양성협약 같은 걸 만들었겠나. 한국 정부의 투자는 게임산업처럼 열매를 따고 마케팅하는 방식이다.

사회주의는 생명의 문제라고 썼는데, 무슨 의미인가.

=한국 운동권은 획일주의에 갇혀 있다. 자유와 평등은 치열하게 경합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 생명은 두 가치를 다 아우른다. 촛불집회가 격렬하게 아가씨와 아줌마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건 우리가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절대 투쟁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수평적 연대를 통해 성과를 낸다. 촛불이 성공했다면 수평적 연대를 통해 상상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희망은 무엇이고 절망은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절망이다. 곁눈질하면 금세 낙오자가 돼버린다. 국가라는 게 있다면 적어도 밥 먹고 자는 정도는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점점 잊어버린다. 또 자유가 엄청나게 모욕을 당하는 사회다. 자유총연맹 등 극우단체들이 자유라는 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좌파들은 자유라는 말을 쓰며 운동하지 못한다. 흙집 건축을 배우면서 발견한 희망이 있다. 공동체적 삶에 대한 열정이 번져가고 있다. 누가 선동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한때 운동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하고 싶어서, 흙으로 학교를 짓고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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