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건 1984년 만신창이의 몸으로 상대방을 하나씩 메다꽂던 그 때 그 남자 하형주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베이징의 매트 위에 최민호가 있었다면, 로스앤젤레스(LA)의 하얀 매트 위에는 그 남자가 있었다. 1984년 8월10일,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유도 하프헤비급(95kg 이하급) 결승전. ‘왕발이’ 하형주(46·동아대 교수)는 결승전 상대 브라질의 더글라스 비에라와 힘겨운 경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하형주의 몸은 만신창이로 변해 있었다. 그는 3회전에서 만난 일본의 유도 영웅 미하라와의 ‘혈전’에서 오른쪽 어깨를 다쳤고, 이어진 4강전에서 만난 서독의 노이로이터에게 경기 내내 끌려다니다 종료 41초를 남기고 가까스로 ‘유효’를 따내 역전승했다. 뜬눈으로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4천만의 입술은 바짝 말라오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를 다치고 오른 매트
“아, 제발…!” 하형주는 어떻게든 상대를 매트에 메다꽂아야 한다는 정신의 힘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2008년의 기준으로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류승완의 신작 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실소를 머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권의 ‘3S’ 정책이 여전하고, 금메달을 따면 “어머니 고생 다 했소!”라는 울먹임으로 인터뷰가 가능하던 시절의 얘기다.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상대의 도복을 잡아챈 하형주는 믿기 힘든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몸을 돌려 빼던 비에라를 번쩍 쳐드는가 싶더니 안다리 후리기 한판으로 상대를 메다꽂았다. 그 놀라운 괴력, 대담한 몸놀림! 는 8월10일치로 ‘호외’까지 찍어내 당시 광경을 “잘생긴 얼굴에 균형 잡힌 몸매, 이 귀공자풍의 몸에서 뿜어나온 힘은 황소 같았다”고 묘사했다.
그 뒤로 다시 4년의 시간이 흘렀고, 4천만은 다시 한 번 하형주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84년에서 88년으로 이어지는 4년 사이에 세계 유도는 지각변동을 겪고 있었다. 하형주의 선 굵은 ‘힘의 유도’에 맞서 일본 선수들의 ‘기술 유도’가 거센 반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형주의 ‘숙적’은 85년·87년 세계선수권대회를 2연패한 일본의 강자 스가이 히토시였다.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아슬아슬한 건곤일척의 진검승부가 하형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의 역대 전적은 1승1패. 스가이는 85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하형주를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격퇴했고, 절치부심한 하형주는 이듬해 86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스가이를 유효 유세승으로 눌렀다. 하형주는 올림픽을 앞두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세 번이나 일본 전지훈련을 자청해 스가이 연구에 몰입했다. 두 영웅의 세 번째 대결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다.
88년 9월30일, 유도 95kg 이하급 결승전이 치러진 장충체육관. 그날의 허무함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스가이를 꺾고 조국에 금메달을 안긴다”던 하형주는 1회전에서 80년 모스크바올림픽 우승자 로베르 발드발(벨기에)에게 경기 시작 1분59초 만에 가로누르기 한판으로 허무하게 침몰했다. 라이벌의 부진 때문이었을까.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스가이도 2회전에서 프랑스의 복병에게 유효를 빼앗겨 초반 탈락했다. 사람들은 “그 두 놈 아쉬우니까 한번 마음껏 싸워보라고 매트라도 펴주라”고 분노했고, 그것을 끝으로 영웅 하형주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졌다.
그날의 허무함을 어떻게 잊으랴
아마도 하형주는 당대 최고의 유도 선수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는 전기영처럼 세계선수권대회를 3연패하지 못했고, 이원희처럼 완벽한 기술로 올림픽 전 경기를 한판으로 따내지도 못했으며, 온갖 시련을 딛고 29살의 나이에 금메달을 목에 건 최민호 같은 끈질긴 근성의 사니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올림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턱밑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참아가며 상대선수를 하나하나 메다꽂던 ‘그때 그 남자’의 시원스런 안다리 후리기와 들어메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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