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엉뚱한 소설작법서’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자칫하면 스포츠 코너에 가 있는 , 음악서 코너에 있거나 공상과학(SF) 코너에 비치돼 있는 등을 쓴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우리나라에서 ‘논술 코너’에 비치될지도 모르겠다. 책은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쓴 ‘소설작법’이다. 오해할 만한 소지는 원제에서부터 온다. 원제는 ‘1억3천만을 위한 소설 교실’인데, 일본 전체 인구가 소설 쓰기에 골몰하는 기이한 사태가 일어날 법한가. 그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소설작법이라는 것이 있을 법하기라도 한가. 이런 호언장담은 정말 그답다. ‘1억3천만이 소설 쓰는 그날을 위하여’라고 외치는 것은 그다운 허풍이다. 그의 소설의 매력이 이런 비약과 호기로운 건너뛰기에서 옴을 떠올려볼 때.
제목도 그렇지만 형식도 ‘친절’한 모양새다. 겐이치로는 ‘레슨 20’까지 자신의 주장을 정리해 알려준다. 문장은 강의 형식이다. 하지만 친절한 척이고 강의인 척이다. 너무 두리뭉실하거나 구체적이다. 시키는 대로 하면 소설을 쓸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글쎄요’ 되겠다. 예를 들어, 쓰기 시작하기 전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충분히, 마음껏, 실컷, 즐긴다. 2. 첫 행은 되도록 꾹꾹 참고 최대한 늦게 시작한다. 3. 기다리는 동안 전혀 관계없는 것을 생각한다. 4. 쓰기 전에 고래 다리가 몇 개인지 조사해본다.’ 그러고도 끝이 아니다. 아직 글쓰기는 아직,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것이다. ‘5. 언제부터 쓰기 시작해야 하는가, 그것이 가장 어렵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하다. ‘6. 쓰기 위해서 스스로 바보가 된다.’ 그리고 이제 정말 시작된다. ‘7. 정말로 알고 있는 것, 그것부터 시작한다.’
그는 을 쓰기 시작하는 에리히 케스트너의 예를 든다. 케스트너는 남태평양에 관한 소설을 3장까지 써두고도 멍하니 쓸데없는 생각, 고래의 다리 개수에 빠지고 만다. 결국 원래 쓰려고 했던 원고는 테이블 다리 괴는 데 쓰인다. 케스트너의 ‘새로운’ 소설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오리무중으로 빠질 것 같던 소설 쓰기 작법도 ‘킥킥’ 웃음에서 ‘으흠’으로 바뀐다. 여전히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말은 옳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한다. 아뿔싸,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들고 만 것이다.
8번째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다. 붙잡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특히 좋다. 안절부절못하던 에리히 케스트너는 거리를 바라보며 이야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창을 닫고 책상 주위를 쉰세 번 빙빙 돌다가 오래도록 바닥에 누워 있다가(‘9.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본다.’) 갑자기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10번째). 누워서 ‘의자 다리에 종아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고는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기억이란 건 흠씬 얻어맞은 개 같아서 성급하게 말을 걸면 도망가니까, 그래서 언제 올지 모르니까 ‘가만히’ 해야 한다. 그러고는 “생각의 목덜미를 꾹 잡아” 누른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라, 잡아채서 꾹 잡아 누르는 것이다.
‘실천편’에서는 그가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옛날 고전들을 뒤적여,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는 흉내내려고 했다. 그의 소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일급 비밀’인 셈이기도 하다. 는 엄마 말을 흉내내는 아기처럼 다자이 오사무의 을 따라 쓴 소설이다. 그리고 레이먼드 챈들러를 따라 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도 곁들여 있다. 책을 다 읽은 뒤 소설을 쓸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여전히 ‘글쎄요’이겠지만 이제 작가 앞에 무릎 꿇고 싶어진다. “겐이치로 선생님!” 말미에 ‘베낄 만한’ 작가들의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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