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슈미드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1908년 “나보다 역사를 더 사랑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역사광’이 에 투고를 했다. 그는 한국의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다가 문득 이율배반적인 말을 내뱉는다. “역사에 대해 나보다 더 무지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이름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외국인들이 부르는 ‘코리아’라는 호칭은 적절해 보이지 않았고, 동국이라는 이름도 진부해 보였다. 그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역사가의 임무를 촉구한다. 이 당시 역사는 매우 유동적이었고 역사가 어떻게 서술되어야 하는지도 미결정의 상태였다. 이 ‘미결정’에서 ‘민족’이 형성되고 ‘민족의 역사’가 기술되어 굳어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앙드레 슈미드 교수는 에서 이 상황을 탐구해나간다. 그는 1896년 을 시작으로 등장한 신문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당시 한국 사회의 흐름, 변화를 포착했다. 자연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상사’ 혹은 ‘지성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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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가 ‘국사’로 배우는 민족주의 역사와 차별화된다. ‘국사’에서는 독립을 위한 정치적 투쟁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역사에서는 ‘저항’만 강조된다. 하지만 당시의 저항운동 또한 아노미 그 자체였다. 나라를 위한다, 군주를 위한다, 독립자강을 한다, 외세와 연합한다 등등 혼란한 상황은 당시의 기록에 눈을 맞추면서 살펴볼 때 정확하게 본질이 드러난다. 말하자면 ‘국사’로 ‘둔갑’하기 전의 진짜 역사를 살펴보는 데도 저자의 방법은 유용하다.
책 제목의 ‘제국’은 일본과 중국이다. ‘1895’년은 갑오농민전쟁을 진압하기 위해 뛰어든 청과 이를 두고 보지 못한 일본이 뛰쳐들어와 벌인 청일전쟁이 조약의 형태로 맺어진 해이다. 이 전쟁의 승자는 일본이었다. 한국은 청나라의 속국 지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 대한 이해 방식도 변화했다. 일본은 ‘독립’을 가져다준 나라이며 ‘문명개화’가 진행 중인 나라였다. 이때 일본을 경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견지명을 지닌 친절한 국가의 안내 없이 어떻게 삼국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겠는가” 등으로 일본의 지도자적 역할을 강조했다. 물론 이런 주장의 내용은 ‘민족적’이다. 우리 민족의 살길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명개화론’을 매개로 한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공통된 이해관계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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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국제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은 쉽게 인정하면서도, 민족적 정체성이 문제가 되면 민족의 자기 인식을 자율적 상상력의 산물로 간주하기를 망설이게 된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는 목적은 달랐으나 지식적 측면에서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생산한 한국 관련 지식은 거의 그대로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사용됐다. “민족에 대한 지식의 생산은 민족주의 운동의 주요 기능이었고 그 나라에 대한 지식은 식민지 경영에서 필수적”이었다. 이는 역사 서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민족 관점의 역사는 일본의 역사 서술을 모방하고, 비판하며 배제하고, 한국 고유의 그리고 베낀 역사와 유사한 우상을 세우면서 전개됐다.
그리고 이 시대의 가장 근사한 ‘발명품’은 ‘민족’이었다. 저자가 외국인이기에 민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민족’은 ‘국가’와 영어 번역에서 똑같다. ‘Nationstate’는 ‘Nation’이다. 동아시아 국가의 대표적인 ‘내셔널리즘’인 ‘민족주의’는 곧이곧대로의 ‘국가주의’는 아니다. ‘민족’이란 말은 삼국에서 공통적인 것으로 영어로는 종족성, 인종에 가깝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민족은 언제나 가리키는 곳이 다른 희미한 단어였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1905년 한국에서 ‘민족’이라는 말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가 찾은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00년 1월12일자 이다. 하지만 이때는 ‘한국을 초월한 동아시아의 인종적 단위’였다. 이후 단계적인 완성을 거쳐 1907년 6월 ‘민족주의’라는 제목이 붙은 간단한 사설에서는 현재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명확해진다. 옮긴이 정여울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왜 국가를 가장 절실한 표상의 중심에 올려놓게 되었을까”라고 질문하고 그 중심으로 ‘민족’이 선택됐다고 말한다. 이런 ‘민족’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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