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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구명조끼마저 빼앗겨버린 세대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절망의 10대, 20대에게 희망은 없는가,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이탈리아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천유로 세대’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이탈리아 두 젊은이가 자신들의 불안정한 삶을 책 에 담으면서 널리 알려졌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우리 젊은이들, 10대와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레디앙 펴냄)라는 책에서다. 저자들은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 세대의 명명법에 고심했다고 한다. ‘배틀로얄 세대’ ‘승자 독식 세대’라는 후보에 오른 이름들은 경쟁이라는 인간 일반의 속성만을 보여주기에 망설여졌다. 결국 선택된 ‘88만원’은 이렇게 나온 숫자다.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약 119만원이다. 여기에 전체 임금 대 20대의 임금 비율 74%를 곱한다. 그러면 딱 88만원이 나온다. 88올림픽 해에 태어난 젊은이들도 포함할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잘 맞아떨어져 보인다.

그런데 왜 정규직 임금이 아니라 비정규직 평균임금인가. ‘세대’라는 말을 붙여 이 정도 수준의 임금이 평생 동안 따라다닐 것이라고 말할까.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죄수들의 딜레마’를 연상시키는 ‘세대 내 경쟁’을 넘어 ‘세대 간 경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모든 세대의 평균적 ‘평생소득’이 같다면 세대 내 경쟁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면서 젊은이들은 안정된 자리로 옮겨갈 가능성이 없어진다. 윗사람이 자연스럽게 빠지고 신세대가 아래쪽에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밀어내기가 이루어지는 ‘연공서열제’가 이미 무효화됐다. 태권도 국가대표단, 공무원, 국가정보원, 정부출연기관, 상공회의소, 전경련 및 각종 민간 협회들, 시민단체, 낱낱이 살펴보니 모두 윗길이 막혔다. “취직 안 되면, 대학 못 가면 장사나 해라” 하던 자영업의 길도 ‘닫혔다’. 독과점화를 자연스럽게 진행시키는 ‘인질경제’ 때문이다. ‘인질경제’는 10대부터 펼쳐지는 무차별 마케팅과 조작이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프랜차이징이라는 자연독점 체계에 친숙해진다. 대학교 안에 ‘스타벅스’나 ‘커피빈’이 들어오는 것과 학생 생협에서 운영하는 카페테리아 중 무엇이 나을까. 젊은이들은 프랜차이징 독과점을 선호한다. 싸고 이익금이 학생 생협으로 다시 돌아오는 카페테리아보다. 그러니 자영업이 될 리가 없다. 일자리가 생겨나는 곳은 프랜차이징의 주차관리, 안내원, 서빙 보조 등일 것이다. 앞뒤가 꽉 막힌 곳에서 이뤄지는 경쟁, 이 20대 승자 독식 게임의 특이점은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것이다. ‘개미지옥 게임’이다. 가장 밑바닥에 누구를 밀어넣느냐, 누가 가장 먼저 잡아먹히느냐가 문제다. 개미지옥에 박혀 구명조끼마저 빼앗겨버린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한번 들었다 놔야 할 것 같다. 일단 저자들은 해법을 몇 가지로 한정한다. 혁명이라는 방법은 통할 수 없으며, 세계화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며, 윗길을 튼다고 포디즘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나온 해법도 불가능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교육 분야로는 이렇다. 교육에 인질 잡힌 청소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대학입시와 관련된 과목들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사교육을 금지하고, 서열화된 현재의 대학 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가 국립대학으로 전환하고 국립대학 네트워크(프랑스 방식)를 운영하자. 이런 저자들의 제안은 가능할까.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 언저리에는 혁명의 꿈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68세대의 중심에 섰던 ‘고등학생’들이 사립대학을 네트워크로 구성하는 대학 개혁을 이뤄냈듯이, 우리 고등학생도 (책의 부제가 그렇듯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던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 꿈도 슬프고 현실은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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