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18세기 프랑스 극작가 마리보의 희극 </font>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우리가 운명의 주인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하세요….” “혹시 위조지폐 본 적 있소. 난 그거랑 비슷한 사람이오.”
한국 무대에 펼쳐진 250여 년 전 프랑스 귀족들의 연애 놀이는 재치와 풍자 어린 말잔치다. 결혼에 앞서 상견례하기로 한 귀족 청년 도랑트와 오르공 귀족 딸 실비아. 잘 모르는 상대방의 인품과 사랑을 떠보려고 몰래 그네들이 데려온 하인인 아를르캥, 리제트로 변장한다. 하인이 가짜 귀족 주인이 되는 역할 바꾸기 놀이다. 천민들의 로맨스를 노리개 삼은 사랑 놀음은 정작 위장한 계급들끼리 사랑에 빠지면서 뒤틀린다.
6월13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시작한 18세기 프랑스 극작가 마리보의 희극 (연출 임영웅)의 얼개는 귀족들의 복잡·우아·코믹한 연애 해프닝이다. 물론 결말은 신분 밝히고 제 짝 찾는 해피엔딩. 신분 초월한 사랑의 가치를 외치는 ‘공자왈’식 교훈담으로 끝난다. 한데, 귀족 하인들의 위장극 행간에는 삐딱한 울림이 있다. 천민 놀음을 즐기는 두 귀족은 바뀐 신분에 괴로워하고 짜증낸다. 억지춘향식 귀족 남녀로 연애를 하는 하인·하녀 또한 신분의 벽에 번민한다. 당대 귀족계급의 기만적 행태를 은유하는 계급의식이 번뜩거린다. 프랑스 귀족 거실 문화를 동양의 극장에 실감나게 재현하기란 쉽지 않기에 당연히 극의 재미는 대사다. ‘마리보다주’(감언이설)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마리보는 가식적 수사와 직설적 비유를 극에 교묘하게 뒤섞으며 쏟아낸다. 연인에게 “사랑스런 내 영혼의 장난감” “당신의 아름다운 두 눈은 내 이성을 앗아간 소매치기” 등의 헌사를 읊는 아를르캥의 대사는 연애편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불문학자 오증자의 번역으로 대사의 복선이 감칠맛나게 살아났다. 드라마 의 배우 김석훈이 도랑트로 분했으나, 극의 줄거리는 기실 하인·하녀 역인 최규하, 최광희의 익살 수다 연기가 이끈다. 270여 년 만의 첫 한국 초연. 7월1일까지. 화 오후 2시, 수~금 7시30분, 토 3시·7시30분, 일 3시. 02-580-1300, 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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