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결단을 내리려는 이를 위한 ‘매뉴얼’ 김두식의 </font>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논의는 소강 상태다. 2002년 1월 박시환 전 부장판사(현 대법관)가 병역거부자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면서 각급 법원에서 벌어진 백가쟁명의 열기는 사그라진 것 같다. 2004년 대법원의 ‘병역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가치’라는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병역거부는 헌법상의 권리가 아니다’는 7 대 2 합헌 판결이 찬물을 끼얹었다.
법적 소강 상태에도 징집영장은 집집마다 날아간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법학)의 (교양인 펴냄)도 영장과 함께 ‘시련의 어깨’로 배달되면 좋겠다. 은 저자가 2002년 3월 펴낸 을 새롭게 가다듬어 펴낸 것이다. 제목의 ‘보습’이 ‘땅을 갈아 흙덩이를 일으키는 농기구’라는 것을 알지 못해 “그 칼을 어쩐다는 책 있잖아요?”라고 묻는 통에 새로 지은 제목인데, ‘칼’을 ‘치’는 것보다 훨씬 ‘비폭력적’이다.
책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행하고자 하는 이를 위한 ‘매뉴얼’이다. 그는 병역거부를 마음먹은 이들이 받을 갖가지 질문을 예비하고 질문에 답하는 요령과 그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먼저 “군 복무한 우리는 비양심적이란 말입니까”라고 질문을 받았다고 해보자. 이 질문은 용어의 번역 과정에서 나온 오해다. ‘양심’이라는 말은 ‘conscientious’를 해석한 말로 “그 사람 참 양심적이야”라는 말에서 보이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양심’은 ‘내면의 생각 또는 지식’을 의미한다. 헌법의 ‘양심의 자유’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징병에 응한다면 굳이 양심의 자유와 연결시킬 필요가 없는 문제이므로 ‘비양심적’이 아니라 ‘양심과 크게 상관없는 문제’다.
그럼 이제, “만약 누가 네 여동생을 강간하고 죽이려 한다면?”에 대처해보자. 이 질문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재판정에서 늘 받는 질문이다. 저자 역시 난감해하다가 메노나이트 출신의 세계적인 평화주의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 교수의 말에서 ‘비밀의 빛’을 보았다. 요더 교수는 이 질문은 그릇된 전제에 바탕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나’ 한 사람뿐이라는 전제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상황을 과연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도 의문이다. 현실은 단순하지 않아서 자신의 의지대로 상황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으로 내몰려는 사람이 늘 질문자의 처지에 서고 평화를 지키는 사람은 ‘논증 부담’의 자리에 선다는 것도 의문이다. 평화주의자는 “전쟁이 어떻게 선일 수 있는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그 외에도 병역이란 이단이나 하는 짓인가를 세계 역사를 돌아보며 살피고, 성경은 평화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를 성경 구절을 샅샅이 훑어 살핀다.
구구절절 ‘병역거부’에 대한 논리적 모순과 교회의 각성을 지적하던 그는 마지막에 한 방 날린다. 그의 주장을 접하고 번민에 사로잡힌 ‘병역거부의 다짐’을 보내오는 이에게 그는 이렇게 충고한다. “우선 군에 들어가서 매일 예수님을 따라 죽는다는 각오로 주변 사람들을 (섬기고)… 부대장에게 당신의 고민을 미리 털어놓으세요. 아마 대부분의 지휘관은 당신이 군 복무를 계속하기를 원(하므로)… 계속할 기회를 준다면 그걸 받아들이세요.” 끝까지 친절하고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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