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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외

등록 2007-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창비(031-955-3351) 펴냄, 9800원

단편소설 6편을 묶은 5년 만의 소설집. 상상하고 몽상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다. 거짓말도 못하고 별 볼일도 없는 만년 고시생 K는 난쟁이 여자를 만나고(‘고독의 발견’), 친구의 결혼식에 가던 유진은 도플갱어를 만나고(‘의심을 찬양함’), 꿈 많은 소녀 B는 현실과 다른 자신을 끊임없이 상상한다(‘날씨와 생활’). 수록작인 ‘날씨와 생활’의 오디오북(한정본)이 딸려 있다.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성우들이 작품을 낭송한다.

야구의 추억

김은식 지음, 뿌리와이파리(02-324-2142) 펴냄, 1만1천원

여기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 또 한 명 있다. 숱한 인천 소년들의 야구에 대한 정을 끊어버릴 정도로 패배에 관련한 불멸의 기록을 세운 구단. 인천생이라는 ‘출신성분’은 ‘기록의 스포츠’라는 야구를 사람이 주인공인 ‘드라마’로 각색하는 버릇을 들였을 터, 30명의 선수에 대한 추억은 유명, 무명 선수가 따로 없다. 3연타석 데드볼을 기록한 ‘김인식’을 유난히 싫어했던 저자 ‘김은식’이 다시 김인식을 평가하게 되는 서론부터 즐겁다. 2005~2006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글을 묶었다.

폴 드 만과 탈구성적 텍스트

마틴 맥퀼런 지음, 이창남 옮김, 앨피(02-335-0525) 펴냄, 1만2500원

20세기 후반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탈구성 비평 운동의 중심에 자리잡은 폴 드 만에 대한 연구서. 드 만은 독일의 현상학과 해석학적 전통,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언어이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의 핵심 개념은 ‘탈구성’으로, 우리에게는 ‘해체’라는 말로 익숙하다. 사고의 완결적인 체계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경계를 설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스트링 코스모스

남순건 지음, 지호(031-903-9350) 펴냄, 1만5천원

20세기 물리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이를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하려는 노력은 지금 현재도 꿈으로 남아 있다. 1970년대에 맨 처음 등장한 끈 이론은 가장 진리에 가까운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처음에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이 이론은 혁명적인 두 번의 전화를 거쳐 물리학계의 총아가 되었다. 한국 물리학자의 저서로, 양자중력 이론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학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선의 프로페셔널

안대회 지음, 휴머니스트(02-335-4422) 펴냄, 1만9천원

200년 전 한국의 ‘미쳐서 미친’(不狂不及) 벽(癖)·광(狂)·나(懶)·치(痴)·오(傲) 혹은 마니아 10명을 모았다. 조선 최고의 바둑꾼 정운창, 산천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여행가 정란, 동서남북 존비귀천을 따지지 않고 서울 시내에 책을 팔러 다닌 조신선, 제 눈을 제가 찌르는 돌출행동을 벌이고 늘그막에 남의 집에 기식하다 죽은 병적인 탐미주의자 최북 등의 삶이 펼쳐진다.

신여성, 길 위에서 서다

나혜석 외 지음, 서경석·우미영 엮음·해설, 호미(02-332-5084) 펴냄, 1만1천원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도 여성의 외출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1904년에는 장옷을 벗고 대낮에 길을 다닐 수 있었다. 1920년대에는 간간이 여성들의 여행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1920~30년대 ‘외출’을 기록한 여성들의 글을 모으고 해제했다. 기차 통학과 여의사가 본 도쿄 등 ‘수준’은 많이 다르다. 여행기는 기쁨과 놀람에 차 있고 해제는 비극적이다. 최영숙은 4년 동안 남경에서 유학하고 스웨덴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재원. 인도인과 결혼하고 귀국한 지 5달 만에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언론은 그를 ‘처녀 엘리트의 튀기 아이 출산’ 등으로 가십화한다.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고미숙 지음, 박지원 원저, 이부록 그림, 아이세움(02-3475-3947) 펴냄, 9800원

리라이팅 클래식 을 쓴 고미숙의 청소년용 . 원문을 현대어로 다듬어 싣고 저작을 시간 순서에 따라 정리했다. 돋보이는 건 역시 고미숙의 ‘참견’이다.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벗은 제2의 나다’라는 문장이 첫 번째 시퀀스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그의 벗은 누구인가부터 박지원이라는 인물을 조명해가는 여행이 즐겁다.

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02-3466-8841) 펴냄, 9천원

2006년 르노드상 수상작. 작가는 아프리카 콩고 출신으로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미국 UCLA에서 프랑스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키방디’라는 인간의 ‘해로운 분신’으로 살며 99번의 살인을 저지른 가시도치(호저) ‘느굼바’가 주인공이다. 설정은 사람에 따라 ‘해로운 분신’과 ‘평화의 분신’인 짐승을 끌고 다닌다는 아프리카 설화에서 따왔다. 아프리카의 원초적 감정을 프랑스식 고품격 유머로 승화시킨 ‘유려한 말맛’이 돋보인다. 헌정 글에 삐죽이 얼굴을 드러낸(‘외상은 어림없지’의 손님들…) 와 함께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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