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 흥국생명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19살 에이스 김연경…점프력 부족도 ‘회초리 타법’으로 극복하며 힘을 빼고 배구하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저렇게 가냘파서 제대로 강타를 때릴까, 지난해 김연경(19)을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189cm에 70kg의 체격은 아무리 여자 배구선수라고 해도 지나치게 호리호리해 보였다. 다행히 세상에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많은 법이다. 김연경은 볼수록 기대를 뛰어넘었다. 2006년 여름에는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에서 ‘겨우’ 18살로 에이스를 차지하더니, 겨울에는 만년 꼴찌였던 흥국생명을 2006 프로리그에서 우승시켰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세계 정상 중국과의 경기를 보면서, 새삼 김연경의 ‘클래스’가 ‘월드 클래스’라는 사실을 느꼈다. 2년생 징크스에 무릎 수술이라는 악재가 겹쳤지만, 그의 성공시대는 올해도 멈추지 않는다. 2007 시즌에도 외국 선수들을 제치고 공격 부문 선두를 달린다.
여자 프로배구는 올해 처음 외국인 선수를 기용했다. 용병이 와서 불안하지 않았을까. 이제 막 주인공이 됐는데, 강력한 ‘포스’의 라이벌이 등장한 기분은 아니었을까. “솔직히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죠. 우리 팀의 케이티 윌킨스는 미국 대표 출신이거든요. 연습할 때 공을 때리는데 파워가 장난이 아니에요. 나는 파워가 떨어지는데, 걱정 많이 했죠.” 하지만 김연경은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제 걱정은 기대로 바뀌었다. “외국 선수들이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평소에 키 크고 파워 좋은 선수들과 경기하면 세계대회 나가서도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무릎이 불편하다면 날렵한 손목으로
김연경은 올해 ‘회초리 타법’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다.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아무래도 점프가 낮아졌지만, 스파이크 순간에 손목을 꺾어치는 회초리 타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점프가 낮아지니까 손목을 이용해보자고 생각하고 첫 시합에서 써봤는데, 잘 먹히더라고요. 계속하다 보니 익숙해졌죠.” 그의 귀여운 얼굴에 영리한 타법까지 구사하니, 틀림없이 두뇌 회전이 빠른 선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연경은 솔직했다. “운동신경 좋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머리가 좋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요.”
김연경은 신데렐라라면 신데렐라다. 스스로도 “신인상만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대보다 너무 잘됐다”고 할 만큼. 2006년 프로 데뷔 첫해에 신인상에 최우수선수상까지 휩쓸었고, 팀을 만년 꼴찌에서 깜짝 우승으로 이끌었다. 더구나 단숨에 대표팀의 에이스로 부상했다. 언제나 엘리트 코스만 밟아오지 않았을까.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의 고통을 모르진 않을까. “아니에요. 고등학교 전까지는 키가 크지 않았어요. 노력을 해도 안 되는구나, 좌절할 때도 많았죠. 고등학교 때 갑자기 키가 크면서 배구하기에 좋은 몸이 됐어요. 연습만 충실히 해도 배구가 되는 거예요. 참, 노력도 중요하지만 재능도 필요하다고 느꼈죠.”
최근에도 시련의 계절은 있었다. 지난해 5월 무릎 수술을 받고 6개월의 재활 기간을 거쳤다. “재활 기간을 3개월로 잡았는데, 회복이 더뎠어요. 연습을 못하니,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우울증 걸릴 지경이었다니까요.” 우울증이라니, 해맑은 얼굴을 생각하면 도저히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면이다. 겨우 회복해 연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세계선수권대회를 뛰었다. 그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뛰는 모습을 중계로 봤지만, 일주일 만에 뛰었다니 도저히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이어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한국은 대만에 지고, 타이에 져서 메달도 따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19살의 어깨에 놓인 대표팀 에이스의 짐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큰 부담은 없다”고 대답하던 그이지만, 아시아경기대회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타이 경기에서 제가 못했거든요.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잤어요. 그래도 세계대회 갔다 오면 기량이 늘어요. 잘하는 선수들 따라해 보면서 느는 거죠.” 그리고 “(대표팀에서) 못했을 때 돌아오는 비판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이렇게 19살 선수는 배구도 배우고, 인생도 배우는 중이다.
아등바등하지 않으면서 사는 사람
지난 시즌, 이런 일이 있었다. GS칼텍스의 김민지 선수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고 “라이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같은 포지션의 김연경을 답으로 예상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김연경보다 세 살 위인 김민지는 “일본의 구리하라 선수”라고 대답했다. 한편으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일본전을 전후해 언론은 김연경과 구리하라를 라이벌로 소개했다. 과연 김연경은 누구를 라이벌로 생각할까. “누군가 잘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특별히 누구를 라이벌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만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솔직한 답변으로 들렸다. 가끔 우여곡절 끝에 스파이크를 성공시키고 민망함과 즐거움이 뒤섞인 웃음을 짓는 김연경을 보면, 너무 힘주지 않고 배구 하는구나, 생각이 든다. 라이벌이 없다는 대답도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으면서 사는 사람의 진심으로 들렸다. ‘그냥 하니까 되네’ 하는 사람이 짓는 기분 좋은 표정이 떠올랐다. “대표선수가 목표였는데 이뤘거든요. 언젠가는 다른 나라에서 뛰는 것이 목표예요.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었다고 하면 와~ 하거든요. 저도 그런 소리 듣고 싶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웨이트로 근력을 키우고, 점프 높이를 올려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도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 자의 성공시대는 오랫동안 계속될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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