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US오픈을 끝으로 은퇴한 테니스 스타, 레즈비언다운 레즈비언…망명인으로, 성소수자로 늘 편견에 시달렸지만 그녀는 멋지게 늙어간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마르티나 힝기스의 마르티나는 그에게서 유래했다.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가 2004 US오픈 여자단식 우승컵을 들고 특별한 감사를 표시한 사람도 그였다. 1993년 러시아 소녀 마리아 샤라포바의 재능을 알아보고, 샤라포바의 아버지에게 미국으로 테니스 유학을 보내라고 권유한 사람도 그였다. 그의 이름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니스 스타 중의 한 명이었으며 가장 당당한 레즈비언 중의 한 명이다. 체코 출신으로 스위스에 정착한 힝기스의 어머니는 딸에게 나브라틸로바 같은 선수가 되라고 마르티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쿠즈네초바는 나브라틸로바의 복식 파트너로 뛰면서 기량이 늘었다. US오픈에서 우승한 쿠즈네초바가 감사를 전하자 인자한 미소로 답하던 그는 마치 동구권 선수들의 대모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의 얼굴에는 갈수록 멋있는 주름이 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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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나브라틸로바의 은퇴 소식을 접했다. 그는 2006 US오픈을 끝으로 50살의 나이에 코트를 떠났다. 같은 대회를 끝으로 은퇴한 앤드리 애거시에 한눈이 팔려 나브라틸로바와 작별을 놓쳤던 것이다. 94년 은퇴를 했다가 2000년 복식 전문 선수로 돌아온 나브라틸로바의 마지막 은퇴였다.
단식 170개·복식 132개 대회 우승
이제는 경기를 즐기려 코트에 선다던 그는 마흔이 넘어서도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듯 복식에서 심심찮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마지막 무대였던 2006 US오픈 혼합복식 우승컵도 나브라틸로바 조의 몫이었다. 단식 170개와 복식 132개 대회 우승, 윔블던 9번을 포함해 18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 이렇게 위대한 기록에 못지않은 멋진 인생을 그는 살았다.
파란만장하다면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1956년 체코 프라하에서 출생한 나브라틸로바는 75년 US오픈에서 준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그의 나날은 순탄치 않았다. 서구로 투어를 다녔던 나브라틸로바는 체코의 공기가 갑갑했고, 체코의 관료들은 “그가 미국물을 먹었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미국에서 레즈비언 정체성을 깨달은 나브라틸로바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국 75년 미국에 망명을 요청했고, 81년 미국 영주권을 얻었다. 역사에 남은 성소수자 100명을 기록한 <the gay>을 보면, 나브라틸로바는 “원할 때 언제나 어느 곳이든지 여행하기 위해서”라고 망명 이유를 밝혔다.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81년 그에게는 또 다른 중요한 사건도 있었다.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당시 그의 파트너는 저명한 레즈비언 작가인 리타 매 브라운(Rita Mae Brown)이었다. <the gay>은 “두 짝꿍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를 가장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동구의 마녀’가 여성 스포츠인의 모델로
나브라틸로바를 생각하면 80년대의 일요일 아침이 떠오른다. 일요일 아침에 방송됐던 윔블던, US오픈 등은 당시 드물게 중계되는 해외 스포츠였다. 비록 녹화방송이었지만 일요일 아침이면 괜스레 설레었다. 역시나 신윤동욱 소년은 나브라틸로바의 팬이 아니었다. 소년은 어찌나 친미 반공의식이 투철했던지 미국 선수만 편애했다. 지루한 이반 렌들(체코)에 견줘 악동 존 매켄로는 흥미진진한 캐릭터였고, 철녀라고 불렸던 나브라틸로바에 비해 크리스 에버트는 예쁜 바비인형 같았다. 돌아보면, 소년은 매체의 조작에 놀아났다. 미국발 기사를 옮기는 한국의 신문은 나브라틸로바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중계에서도, 신문에서도 나브라틸로바의 근육질 다리는 끈질기게 부각됐다. 그의 독주가 못마땅했던 카메라는 ‘철녀’의 다리에 집요하게 집착했다. 그가 에버트를 누르고 정상에 오르자 약물복용설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성별도 의심당했다. 근육질의 다리를 비추는 카메라는 ‘약물이 아니면, 남성이 아니면 가능한 몸인가’라고 선동했다. 나브라틸로바가 커밍아웃을 하자 아마도 그들은 의혹의 증거를 찾았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이러니 모범생 소년이 그를 ‘동구의 마녀’로 여긴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한편에서는 하나 만들리코바 같은 체코 선수들은 나브라틸로바를 “조국의 배신자”로 비난했다. 정말로 나브라틸로바 별로였다.
뒤늦게 그의 진가를 알았다. 나브라틸로바가 2000년 다시 코트로 돌아온 이후로 가끔 들리는 소식은 멋졌다. 그는 레즈비언다운 레즈비언이었다. 동물권리운동에 앞장서는 채식인이었고, 동성애자인권운동에도 기여했다. 동성애자 건강을 위해서 활동하는 모임에 기꺼이 자신의 명성을 빌려주었다. 마흔 넘어서 코트에 복귀한 뒤에는 테니스를 즐기고, 인생도 즐기면서 멋지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코트 안팎에서 인생을 개척하며 나브라틸로바는 여성 스포츠인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the gay>에 올랐고, 그의 인생은 같은 책에 실렸다. 80년대 에버트의 인기가 나브라틸로바를 압도했을지라도, 지금은 나브라틸로바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굿바이 나브라틸로바, 작별 인사를 하기엔 그의 인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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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the gay>(폴 러셀 지음·이현숙 옮김, (주)사회평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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