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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승부사, 김호철의 귀환

등록 2006-08-18 00:00 수정 2020-05-03 04:24

20년간 이탈리아 선진배구리그에서 활동했던 ‘컴퓨터 세터’에 거는 기대… 만년 2위 현대캐피탈에 2006 우승 안기고, 이제 국가대표팀 새 역사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국에서 단 한 명에게 ‘컴퓨터 세터’라는 이름을 주어야 한다면, 당연히 그 이름은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 김호철(51)은 그렇게 전무후무한 컴퓨터 세터였다. 그가 코트에 서면 왠지 안정감이 들었고, 정말 무언가 달라지곤 했다. 그가 이끌었던 한국팀은 1978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무후무한 세계 4위에 올랐고, 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김호철이 올리고, 강만수가 때리던 시절의 한국 배구는 얼마나 당당했던가. 80년대 중반, 선수로 뛰는 그를 보았으니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김호철의 무게감은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있었다.

“졌다면 왜 졌는지 알아야 한다”

2003년 그가 20년에 걸친 기나긴 이탈리아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현대캐피탈 감독을 맡았을 때, 최소한 내겐 현대캐피탈의 우승이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렇게 김호철이라는 이름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겐 신뢰감으로 남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3년째인 2006년, 김호철은 만년 2위 현대캐피탈에 우승컵을 안겼다. 86년 슈퍼리그 최우수선수상을 받고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으니 20년 만의 귀거래사였다(그는 81년 이탈리아로 떠났다가 84년 돌아와 3년 선수생활을 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갔다. 그는 나중에 세계 최고의 리그로 떠오른 이탈리아 리그에서 무려 세 번이나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8년 만에 참가한 2006 월드리그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초반 홈경기 4연전에서 4연패를 했다. 2005 월드리그 3위였던 쿠바, 5위였던 불가리아의 벽은 높았다. 그래도 경기가 재미없지는 않았다. 한국은 쿠바와 불가리아에 무기력하게 무너지지 않았고, 상당수 세트는 접전을 벌였으며, 쿠바와의 첫 경기에서는 한 세트를 따내기도 했다.

98 방콕,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던 90년대 아시아 남자 배구의 지존 한국은 최근 위기에 처했다. 90년대 스타인 신진식과 김세진이 저물면서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절실한 시점이다. 김호철은 세대교체에 일가견이 있다. 그는 만년 준우승팀 현대캐피탈에서 노장과 신진의 조화를 이뤄내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김호철은 쿠바와 불가리아 경기에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실험은 코트에서 드러났다.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되는 대학생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노장 선수의 활용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주전선수 몇 명에게 의지하지 않고, 선수들이 골고루 뛰는 시스템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캐피탈 배구단은 ‘골고루 선수 기용’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비록 월드리그에서 초반 4연패를 했지만, 김호철은 차세대 거포인 문성민(20·경기대)과 김요한(21·인하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 배구의 오늘은 초라할지나 내일은 창대할지 모른다, 희망을 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집트 원정경기에서 쉽지만은 않은 2연승을 거두었다.

김호철은 승부 근성이 강하다. 그것은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그의 앙다문 입술에서는 독한 결기가 보인다. 그의 입가에는 결기가 가득하지만, 그의 얼굴은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그의 표정은 그가 지독한 독사가 아니라 생각하는 승부사라고 말한다. 김호철은 말한다. “감독의 틀에 선수들을 맞추는 주입식 훈련, 스파르타식 훈련은 원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생각하는 배구를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감독의 지시에 따르는 운동에 익숙해져 있다.” 그는 ‘김호철 배구’에 대해 “자율 배구”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과학적인 데이터에 기반해서 선수들이 훈련 과정을 이해하고, 흥미를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연습을 위한 연습이 아닌 시합을 위한 연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의 배구에 대한 철학 중에 “졌다면 왜 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무의미하게 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의 말을 들으며 독일의 축구 감독들에게 들었던 훈련에 대한 철학이 떠올랐다.

한국적 근성과 서구 합리주의의 조화

김호철은 20년을 배구 선진국인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그는 선수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감독을 맡은 팀마다 우승을 따내서 “황금손”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이탈리아 대표 2진 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굳이 국내로 돌아왔다. 그는 “아직 힘이 남았을 때 마지막 정열을 한국 배구에 바치고 싶어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배구에 대해 “아직도 수비형 배구, 지키기 위한 배구를 하고 있다”며 “공격적인 배구를 하지 않으면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호철은 오늘도 선진 배구의 경기를 스크린하며 세계 배구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렇게 한국적인 승부 근성과 서구의 합리주의가 김호철 안에서 조화롭다. 김호철의 앞에 11월 세계선수권대회와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대회가 놓여 있다. 김호철이 한국 배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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