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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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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시의 아름다운 파이널

등록 2006-09-14 00:00 수정 2020-05-03 04:24

17살 꽃미남 땐 멋있었고, 36살 대머리 노장의 모습엔 감동이 넘치네… 인생의 마지막 경기였던 2006 US오픈 3회전을 경쟁자의 박수 속에 끝내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는 코트와 정들었겠지만, 나는 그와 정들었다. 17살에 처음 그를 알았고, 36살에 그의 은퇴를 지켜봤다. 그가 갈기머리 청년에서 대머리 아저씨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를 응원하는 부인이 브룩 실즈에서 슈테피 그라프로 바뀌는 것도 보았으며, 전성기에 나이키의 상징이 됐다가 황혼기에 아디다스로 유니폼을 바꾸는 모습도 보았다. 팬들의 피켓은 나의 마음과 같았다. “앤드리 애거시 영원한 넘버 원”(Andre forever #1), “21년의 위대함”(21years greatness). 1986년에 데뷔해 21년의 선수생활 동안, 앤드리 애거시는 가장 탁월한 선수는 아니었을지라도 가장 꾸준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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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랜드슬램’(선수생활 동안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한 기록)을 달성한 5명 중 1명, 8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포함한 60개의 타이틀, 통산 870승…. 그보다 위대한 것은 역대 최고령 세계 1위였고, 35살에도 톱10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애거시는 지난 9월4일, 2006 US오픈 남자단식 3회전에서 벤야민 베커에게 1-3으로 지면서 코트를 떠났다.

랭킹 141위 추락의 아픔을 딛고…

17살의 꽃미남 애거시를 기억한다. 프로 데뷔 2년차였던 그는 87년 서울에서 열린 KAL컵 대회에 참가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직은 무명이었던 애거시는 멋진 플레이뿐 아니라 수려한 외모로도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갈기머리 휘날리며 나이스샷을 날릴 때마다 여성팬들은 (마리아 샤라포바처럼) 괴성을 질렀다. 꾸준한 상승세를 타던 애거시는 92년 윔블던에서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다. 94년 US오픈, 95년 호주오픈을 석권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필생의 라이벌은 피트 샘프러스였다. 애거시는 번번이 샘프러스의 벽에 막혔고, 역대 상금 랭킹에서도 샘프러스에 뒤진다. 솔직히 나는 샘프러스의 팬이었다. 곱상한 외모에 셀러브리티와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젊은 애거시는 내게 2류 연예인처럼 보였다. 그에 견줘 샘프러스는 ‘원숭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평정심을 잃지 않는 심지 곧은 청년으로 여겨졌다. 애거시는 97년 브룩 실즈와 결혼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랭킹이 141위까지 떨어졌다. 자업자득이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애거시가 99년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돌아왔다. 앞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선수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0, 2001, 2003 호주오픈에서 연거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1세기의 애거시는 ‘내겐 너무 멋진 당신’이었다. 한 살 어린 샘프러스가 2002년 은퇴했지만, 애거시는 4년을 더 뛰었다. 오히려 애거시는 머리숱이 적어질수록 멋있어졌다. 30대 중반의 애거시는 대머리를 가리던 두건마저 벗어던졌다. 유니폼 아래로 슬쩍 보이는 뱃살까지 애거시에겐 매력이었다. 갈기머리 애거시에게 멋이 있었다면, 대머리 애거시에게는 감동이 있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테니스 경기에서 3시간이 넘는 접전을 거듭하면서도 노장 애거시는 대회마다 경기마다 명승부를 연출했다. 보는 사람마저, 이제는 멈추어도 될 텐데, 하는 순간에도 그는 전진했다. 2005년 US오픈은 애거시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비록 로거 페더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한 경기 한 경기가 35살의 노장이 만드는 드라마였다. 이렇게 애거시는 준우승을 많이 했다. 숱한 준우승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대함의 클래스를 한 단계 더 높여주었다. 그는 가장 많이 우승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선수였다.

이란계 미국인, 영웅이 되다

2006 US오픈은 애거시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그의 ‘파이널’이었다. 1회전, 2회전, 3회전, 그의 ‘파이널’은 US오픈의 ‘파이널’보다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했다. 특히 2회전 마르코스 바그다티스(랭킹 8위)와의 경기는 역사에 남을 명승부. 애거시는 ‘제2의 애거시’라고 불리는 21살의 바그다티스를 맞아 풀세트 접전을 벌였다. 1, 2세트를 따내고 3, 4세트를 뺐겼을 때, 노장 애거시가 5세트를 따내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정말 마지막이구나 하는 순간, 애거시는 7 대 5로 5세트를 따내며 3시간48분의 격전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그는 팬들이 ‘제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만드는 선수였다. 180cm의 단신은 광속 같은 서브도 괴물 같은 힘도 없었지만, 역사상 가장 다이내믹한 백핸드와 그림 같은 서비스 리턴으로 테니스계의 거물이 됐다. 팬들은 US오픈 ‘파이널’이 그의 파이널이 되기를 기도했지만, 36살의 노장은 등부상에 시달리다 3회전에서 멈추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그도 울고 팬들도 울었다. 4분 동안 기립박수가 계속됐다. 떠나는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는 고별 인터뷰에서 “탈의실에서 모든 선수들이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인생에서 최고의 박수는 경쟁자들에게 받는 박수다”라고 말했다. 팬들에게는 “스코어보드는 내가 오늘 졌다고 말하지만, 지난 21년간 코트에서 내가 얻은 것을 모두 말해주지는 않는다. 여러분의 사랑이 코트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이끌어주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이렇게 이란계 미국인은 미국의 영웅이 됐다. 애거시의 아버지는 영어 한마디 못했지만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바다를 건너온 이란계 이민자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그리고 아들은 마침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었다. 어쩌면 애거시는 미국의 저력을 상징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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