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은 한국에 한 집 건너 하나씩 메달리스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세계 유일 야구·축구 동시 4강 국가’, 인구 4700만에 더 이상은 무리일 듯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언제나 궁금했다. 꼬박꼬박 여름철 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 이상을 따내고, 때때로 올림픽 종합순위 5위 안에 드는 쿠바에는 한 집 건너 한 명씩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수두룩한 권투 금메달리스트는 물론이고, 때때로 높이뛰기에서 세계기록을 세우고, 어쩌다 여자 유도와 레슬링에서도 메달을 따내고…. 이처럼 다양한 종목에서 전방위로 뛰어난 쿠바 스포츠의 저력은 도대체 무얼까, 아직도 궁금하다. 더구나 쿠바는 개인종목뿐 아니라 단체종목도 실내외 가리지 않고 잘한다. 야구, 배구는 세계 정상이다. 농구도 여자팀은 세계 정상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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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쿠바 인구는 ‘불과’ 1100만 명.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 올림픽 메달을 따온 역사가 켜켜이 쌓였으니, 한 집 건너 한 명은 아니더라도 한마을에 한 명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있지 않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동네 체육관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혹시 쿠바에 가면 동네 체육관에도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의 트레이너가 있지 않을까, 괜한 공상도 했다. 아무리 신이 축복한 유연한 몸매에 국가의 지원이 더해졌다고 해도, 논리를 넘어서는 불가사의한 저력이 쿠바 스포츠에는 있다. 더구나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쿠바 스포츠는 그럭저럭 건재하지 않은가.
‘중산층스러운’ 체조, 피겨스케이팅까지
혹시 지구촌 저편의 누군가는 궁금해하지 않을까. 여름철 올림픽에서 10위 안에 드나 했더니, 겨울철 올림픽에서도 쇼트트랙을 앞세워 10위 안에 들고, 여자 골프 선수들은 사이좋게 LPGA 우승을 나누어 가지는 한국에는 한 집 건너 한 명씩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지 않을까. 더구나 격투기만 잘하나 했더니 최근엔 경제 발전 덕분인지 ‘중산층스러운’ 스포츠까지 잘하지 않는가. 귀족스포츠라는 펜싱에서도, 우아한 체조에서도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심지어 백인들이 석권하는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에서도 세계 정상에 도전할 가능성이 보인다. 한국에는 한 집 건너 한 명은 아니더라도 한마을에 한 명씩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있지 않을까, 지구촌의 누군가는 궁금해하지 않을까. 더구나 최근에는 최홍만이 ‘뜨면서’ 이종격투기도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지 않은가.
어느 날 위성방송 채널을 돌리다 목사님의 말씀에 달콤쌉싸래한 웃음을 지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축구와 야구에서 모두 세계 4강에 든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때는 2006 독일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 듣고 보니,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 정말로 지구촌 인기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야구, 축구 모두에서 4강에 든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들었으니 말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축구를 못하고 브라질은 야구를 못한다. 일본도 월드컵 4강에는 들지는 못했고, 프랑스와 영국도 야구에는 문외한이다. 그나마 네덜란드가 축구를 잘하고 야구를 괜찮게 하지만 2002 월드컵과 2006 WBC에서 4강에 들지는 못했다. 목사님은 ‘우리가 정말로 대단한 민족’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셨겠지만, 내 마음에는 ‘정말로 대단한 스포츠 공화국이야’ 하는 생각만 남았다.
남들이 돌보지 않아도 놀라운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들이 있다. 여자 핸드볼, 남자 하키 같은 종목은 열악한 조건을 딛고서 때때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려 국민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여자 핸드볼이 올림픽에서 잇따라 메달을 따내도 비인기 종목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타령이 나온다. 너무나 익숙한 유행가라 이제는 뉴스의 대사를 외울 지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언론이 텅 빈 관중석을 비추면서 진심 없는 읍소를 해도, 텅 빈 관중석이 채워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프로축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이제는 K리그”라고 외쳐도 관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이미 한국에는 스포츠가 과잉이기 때문 아닐까. 프로 종목만 해도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까지 다양하다. 인구 4700만 명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국은 3만달러가 넘는 국민소득에 3억 인구를 가진 미국도 아니고, 역시 3만달러 이상의 국민소득에 1억5천만 명이 사는 일본도 아니다. 민족의 중흥처럼 지상 과제가 된 축구의 중흥을 위해 수요일에 농구 보고, 토요일에는 야구장 갔는데, 일요일까지 축구장 가야 할 의무는 없는 것 아닌가.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는 정말로 야박한 말이지만, 비인기 종목은 없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들었던 “프로스포츠와 아마스포츠가 있을 뿐이지 비인기 종목과 인기 종목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기영노 스포츠평론가의 말처럼.
야박하지만 비인기 종목은 없는지도…
올림픽이,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대만, 싱가포르,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스포츠 덕분에 한국에 살면서 별로 심심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4년마다 메달 잔치를 벌이는 올림픽이 찾아오고, 또 4년마다 꼬박꼬박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주고, 이제는 4년마다 지구촌의 야구축제까지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족하다. 더 이상은 무리다. 이영표 인생에 축구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한국인 인생에 스포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다른 즐거움을 누릴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경쟁에 능해서 올림픽에 열광하고 기적에 익숙해서 비인기 종목에서조차 이따금 메달을 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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