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원 2700명 참가한 ‘한울 전국탁구동호인 복식탁구 축제’ 열기… 실력 따라 4부로 진행… 코치까지 품앗이하며 건강한 승부욕 과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어제도 오고, 오늘도 또 왔어? 노친네들 뼈 삭어. 살살 해.”
중년의 사내들이 짓궂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제3회 2006 한울 전국탁구동호인 복식탁구 축제’가 열렸던 8월20일 경기도 광명실내체육관 주변은 스포츠 가방을 짊어진 사람들로 북적였다. 귀걸이를 한 청년,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이 뒤섞였다. 나이와 성별은 달라도 한결같은 운동복 차림에 유쾌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심판·응원단·주최자까지 자발적인 공동체
체육관 안의 열기도 ‘후끈’했다. 두 줄로 늘어선 10여 대의 탁구대에서 저마다 진지한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탁구대 옆에는 응원단도 더해지는 흥미진진한 축제였다. 이렇게 18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 한울 복식탁구 축제는 한여름 주말을 탁구 열기로 달구었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남자복식과 단체전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고, 앞서 토요일에는 혼합복식, 금요일에는 여자복식 경기가 벌어졌다. 만장하신 선수들을 보면서 도대체 몇 명이나 참가할까, 궁금했다. 대회를 주최한 한울탁구용품 전문점 오근유 대표에게 물었다. “연인원 2700명이 참가해요.” 그렇다면 수많은 경기의 심판은 누가 볼까? 오 대표가 답했다. “대학동아리나 탁구동호회 분들이 무보수로 수고해주시죠.” 그는 “용품을 팔아서 번 수익을 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한다”고 덧붙였다.
대회를 한 번 치를 때마다 수백만원의 적자가 남지만, 탁구 저변 확산을 위해 감수한다는 것이다. 선수, 심판에서 응원단, 주최자까지 그야말로 자발적인 공동체가 만드는 자족적인 축제였다. 이렇게 전국에서 해마다 수많은 동호인 대회가 열린다. 배드민턴, 테니스 등 각종 종목의 동호인 대회가 해마다 확산된다. 어쩌면 한국이 그나마 나은 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 대회는 실력에 따라 4부로 나뉘어 열렸다. 예컨대 4부에서 상위권에 입상하면 다음해 3부로 승격되는 시스템이다. 대개의 동호인 대회가 실력별 리그로 나뉘어 열린다. 가장 실력이 뛰어난 1부 복식조는 대개 선수 출신 1명과 동호인 1명이 파트너로 나선다. 동호인 대회지만 승부는 진지하다. 이날 오후 3시, 남자복식 1부 8강전이 열리고 있었다. ‘백성찬-황재성’ 조와 ‘최정환-이원재’ 조의 대결. “하나만 잡자.” 탁구대 앞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세트 스코어 2 대 2, 마지막 세트의 접전이 계속됐다. 최-이 조가 한 점을 달아나면 백-황 조가 따라붙는 형국이었다. 10 대 9로 뒤지던 백-황 조가 백성찬 선수의 스매싱으로 10 대 10 듀스를 만들었다. 선수들의 눈빛은 유남규-김택수 조의 세계선수권 결승전 못지않게 진지했다. 접전은 이원재 선수의 스매싱으로 12 대 10, 최-이 조의 승리로 끝났다. “아휴~ 다 잡았는데!” 다시 한 번 탁구대 앞에서 누군가 몸을 비틀며 탄식을 뱉었다. 경기 내내 선수들보다 더 마음을 졸이며 응원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백-황 조의 코치인 줄 알았다. “아닌데요. 같은 동호회 회원인데요.” 이렇게 동호인들은 코치까지 품앗이하면서 탁구를 즐기고 있었다. 코치(?)는 정말로 섭섭한 얼굴이었지만,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고 웃으며 헤어졌다. 이토록 건강한 승부욕이라니.
몸도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지고…
경기장 밖에서 중년의 남녀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부인 줄 알고 다가갔다. 역시나 웃으며 같은 동호회 회원이라고 답한다. ‘분당 미래탁구회’에서 함께 탁구를 즐기는 신문수(46)씨와 임경숙(51)씨였다. 동호회 선수들을 응원왔다는 임경숙씨는 정말로 40대 초반으로 짐작할 만큼 젊어 보였다. 임씨가 신씨를 가리키며 “8강에서 져서 허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의 구력을 물었다. “중간에 쉰 적도 있지만, 10년은 했죠.” 신씨는 스물두 살인 아들 같은 파트너와 남자복식 2부에 출전했지만, 아쉽게 8강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올해 강릉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실력파다. 그는 “충남 위 지역은 커버한다”고 말했다. 두세 시간 거리에서 열리는 대회는 대부분 참가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회 때마다 비슷한 선수들끼리 만난다”며 “서로 친하면서도 경쟁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렇게 동호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짜릿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돈과 무관한 일에 자신을 쏟아붓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자신만의 리그를 가지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임씨의 구력도 10년에 가깝다. 전업주부인 그는 일주일에 나흘씩 3시간을 탁구장에서 보낸다. 그는 “몸도 가벼워질 뿐 아니라 머리가 맑아지죠. 계절에 관계없이 할 수 있으면서 비용은 적게 들죠. 다양한 직업을 가진 동호인들도 만나게 되죠”라고 탁구의 장점을 말했다. 정말로 어쩌면 탁구대 앞에서 누구나 평등한지 모른다. 임씨는 “참, 실제 강습비보다 고수들한테 술자리에서 듣는 ‘두상 레슨비’가 더 많이 들어요”라며 웃었다.
경기장 복도에 놓인 미니 탁구대에서는 꼬마들이 탁구를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근육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유산소 운동이 많이 되는 탁구는 남녀노소 함께 즐기기 좋은 가족 스포츠다. 진지하게 경기에 몰입하고, 흠뻑 땀에 젖어 체육관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이 챔피언”이라고 중얼거렸다. 인생을 가장 즐겁게 즐기는 101가지 방법 중 최소한 하나를 그들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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