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 7명의 단편을 묶은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에쿠니 가오리 외 지음, 신유희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은 일본 여성작가 7명의 연애소설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사설이 좀 필요하다. 스스로의 ‘꼰대스러움’을 주체 못하는 서른다섯의 ‘아저씨’ 기자가 이 책을 자발적으로 펴들기는 어렵다. 주말에 거실에 앉아 아내와 함께 하루 종일 ‘온스타일’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어색하다. 책을 읽은 이유는 ‘즐거움’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소설 시장의 주요 소비자가 여성으로 굳어진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이들은 한국 소설에서 공지영류의 ‘눈물’이나 전경린류의 ‘상처’ 같은 것들을 소비한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동시대 일본 작가들의 쿨한 연애소설을 소비한다. 그것은 일종의 동경이다. 내 호기심은 일본 여성작가들의 감성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저씨’의 시선으로 본 일본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다. 여기에는 물론 오해가 따를 것이다.
한국에서 일본 여성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 그보다 약간 ‘청승스런’ 에쿠니 가오리가 대표하고 있다. 일본 소설 열풍이 ‘2세대’ 작가들로 번져가고 있는 눈치지만, 이상하게도 여성작가들은 그 수요에 비해 다양하게 소개되지 못한 느낌이다. 에는 에쿠니 가오리 외에, 마니아가 아니라면 접하지 못했을 6명의 작가들이 소개된다. 이 중에서 가쿠다 미쓰요의 ‘그리고 다시, 우리이야기’를 살펴보자.
화자 ‘나’와 유리에, 와카코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 사이인 30대다. 얼굴이 예쁜 와카코는 유부남 취향이라서 첫사랑이 고등학교 고문 교사고, 지금도 8년째 유부남과 연애 중이다. 인기 많은 유리에는 오타쿠 취향이라서 연애보다 별자리나 역사를 좋아하는 남자들과 만난다. “유부남과 사귀어 상처받는 건 여자뿐”이라며 분노하던 유리에는 와카코의 애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 한때 절교를 당하기도 한다. 어느 날 유리에는 “와카코를 이해해보겠다”며 유부남과의 연애전선에 뛰어든다. 이제 3명의 여자들은 애인들이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하는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마다 ‘동맹’을 맺어 함께 보내기로 한다.
소설들에는 사랑의 기억에 얽매여 징징대는 ‘무지몽매한’ 여자들은 없다. 위악적으로 사랑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인격적으로 고양되는 계몽적인 사랑도 없다. 억지로 쿨하고 발랄해지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일본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새로운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부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저 양파 같은 것이다. 우연히 한 꺼풀 벗겨보고 호기심에 젖어 계속 벗겨보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다. 이런 태도는 섹스에서 드러난다. 섹스는 목욕처럼 자연스럽다. 소설 속의 여자들은 애인이 아닌 남자친구와 가끔 자기도 하고, 여자친구를 위해 자주기도 하고…. 여하튼, 섹스를 위한 특별한 계기를 만들지 않는다. 또 하나, 유부남과의 사랑이라는 모티브가 자주 나타난다. 여기엔 금기를 넘어서는 짜릿한 흥분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남편의 친구와 사랑하거나 친구의 남편과 사랑할 때조차 그렇다. 이것은 모두 ‘양파를 까는 태도’가 아닐까. 여기엔 양면이 있다. 매우 자연스럽거나, 너무 수동적이거나.
소설 속 여자들은 그들의 일상 밖에 있는 세상,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에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이런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만한 아가씨들과 자살하고 싶은 청년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다시, 우리이야기’의 ‘나’와 유리에는 고등학교 졸업부터 서른세 살이 넘도록 프리터 생활을 하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이노우에 아레노)나, ‘이것으로 마지막’(다니무라 시호)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클래스 메이트 대부분이 그러하듯 취직을 못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거듭하며 생활했다.” 그들은 친구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자본주의를 그냥 떠다닌다.
작품들 대부분은 꽤 재미있고 몇 개는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미연의 ‘해파리’는 쓸데없는 기교만 부린 느낌이고, 유이카와 게이의 ‘손바닥의 눈처럼’은 억지스런 설정이 거슬린다. 고등학생의 습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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