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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정신병, 새로운 삶의 시작

등록 2006-01-21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신분열 환자들이 모인 ‘베델의 집’ 르포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정신분열에는 격리와 치료라는 두 개의 시선이 따라다닌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정상인과의 접촉을 차단해야 하지만, 하루빨리 치료를 받아 다시 정상인이 돼야 한다는 이중적인 시선 안에 정신분열 환자들이 갇혀 있다. 그런데 사회의 바람과 달리 정신분열은 한번 발병하면 죽을 때까지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질병이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삼인 펴냄)는 정신분열 환자들이 모여 회사를 차리고 나름의 즐거운 삶을 이어가는 ‘베델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 우라카와 마을의 버려진 교회당에서 시작된 베델의 집은 헌신적인 사회복지사와 목사 등의 도움으로 상주 환자만 100명이 넘고, 다시마와 복지물품 판매를 위한 법인까지 만들었다. 베델의 집 주민들은 일본 각지의 강연회에 초청되고 있다.

책이 이끄는 것은 베델의 집의 이러한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성찰이다. 베델의 집은 환자들이 어서 치료를 받아 증상을 없애고 사회로 복귀하도록 등 떠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병 그대로, 이렇게 문제 많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약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연대를 이루어가는 모습은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베델의 집은 문제가 없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투성이고,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고, 겪어야 할 고생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베델의 집에는 관리와 규칙이 없다. 규칙에 주민들을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충돌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간다. 일반인들의 직장으로 ‘복귀’할 것을 강요받지 않는 주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다시마 포장 작업장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이곳의 질서는 정말 엉망이다. 작업장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 일하다 조는 사람, 5분 일하고 뛰쳐나가는 사람…. 일을 길게 할 수 없는 병이므로, 각자의 조건에 맞게 일을 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

베델의 집에는 인간이 살아간다는 극히 당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요한 건 정신분열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각지에서 구름 같은 사연들을 마음에 담고 모인 주민들은 함께 고생하고 자신의 병을 말하고 관계를 회복한다. 어떤 주민의 증세가 심해질 때는 다른 주민들이 옆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힘을 북돋운다. “떨어져, 더 떨어져봐. 다시 올라올 수 있을 테니.” 그래서 베델의 집은 정신분열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계속 상승만을 강요받고 죽을 힘을 다해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어느 날 정신분열이 찾아온다. 끝없는 ‘하강’ 속에서 베델의 집 사람들은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상승만이 살길이 아님을, 생은 그 자체로 살 만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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