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출판] 생명, 그 최후의 비밀

등록 2005-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수억년의 역사를 찾아 헤매는 인류학자의 사색 <광대한 여행>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IMAGE1%%]

미국의 한 인류학자가 말을 타고 네브래스카주의 척박한 초원을 달려 까마득한 사암 절벽 아래 선다. 그는 단단한 사암 속에 박힌 채로 그를 노려보는 설치류의 두개골 화석을 발견한다. 그는 화석을 찬찬히 살펴보며 생명의 오랜 유랑의 역사를 떠올려본다. 바다에서 자갈투성이 뭍으로 올라오는 모험을 시도하며 겪었을 지극한 고통, 포유류 시대가 열린 8천만년 전부터 인간이 탄생할 때까지 줄줄이 늘어서 있는 시련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들이고 우리의 몸에는 사라져버린 세계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최후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별들 사이로 난 길을 얼마나 많이 헤매야 할 것인가?”

<광대한 여행>(로렌 아이슬리 지음, 김현구 옮김, 강 펴냄)은 생명의 신비를 풀기 위해 수천만년 전, 혹은 수억년 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의 기록이다. 그는 초원이나 얕은 강이나 집의 뒤뜰을 어슬렁거리며 아주 작은 것들이 품고 있는 엄청난 신비를 말한다. 그것은 과학적 언어가 아니라 차라리 명상이다. 과학자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언어를 가질 수 있는지 경이로울 뿐이다.

3억년 전, 외진 습지에는 삐죽코 물고기가 살았다. 태양이 이글거리고 습지의 물이 마르면 이 물고기는 작은 폐로 공기를 들이마시며 지느러미로 물을 찾아 기어다녔다.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동료들과 달리 삐죽코 물고기는 척박한 환경에서 뇌에 양분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두뇌 끝에 붙은 두개의 작은 기포, 즉 대뇌반구를 탄생시켰다. 삐죽코 물고기는 바다에서 밀려난 패배자였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서식처를 일구면서 생명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이다.

꽃의 탄생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꽃들은 지구의 표면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물에 정충을 흘려야 하기 때문에 물가를 떠날 수 없었던 식물들은 점차 육지로 올라왔다. 꽃이 품고 있는 씨앗과 그 결실인 열매들은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포유동물의 영양공급원이 되었다. 한 송이 꽃은 놀라운 기적이었던 셈이다.

로렌 아이슬리는 생명의 신비를 탐색하는 데 있어, ‘인간적 확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생명의 조정이 인간으로써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편협한 진화적 관점에서 열등한 생물과 완벽한 인간, 열등한 인종과 진화된 인종을 가르는 것은 인간 스스로 눈을 가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문명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