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식인들에게 고하는 행동 원칙 <지식인의 책무>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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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엄 촘스키의 책들은 한국 독자들이 그를 알든 모르든, 나올 만큼 나온 것 같다. <지식인의 책무>(황소걸음 펴냄)는 전작들에 비하면 소품이다. 동티모르 문제에 대해 시드니의 작가센터에서 연 강연, 오스트레일리아 아나키스트들의 모임인 ‘자유의 비전’을 대상으로 한 강연 등을 정리해 묶었다. 명망 있는 지식인이 여기저기서 한 강연의 기록이나 단상을 묶어낸 책은 일단 그 밀도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식인의 책무>는 책의 1장만이 지식인 문제를 다루고 있고, 나머지는 비전과 목표에 대한 고찰, 신자유주의에서의 민주주의 등을 다룬다. 그러나 이 짤막한 1장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매우 단순명쾌한, 그러나 지식인의 위선을 통쾌하게 벗기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살롱에서 귀부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부류들은 세계의 나아갈 바를 밝히는 ‘근대적 사명’을 짊어지기에 이른다. 혁명기에는 민중을 위해 투쟁을 외치다가 바로 그 민중의 이름으로 숙청당하기도 했다.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아, 온갖 전문가들과 ‘정치위원’들이 득세하는 시절이 도래하면서 텔레비전 토론회 패널이나 매체가 입맛대로 맡기는 칼럼에 초라하게 발을 담그고 있는 ‘멸종 동물’의 처지로 몰락하고 있다.
어쨌든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어떤 진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촘스키는 이를 밝히기 위해 몇 가지 정치적 사실들을 예로 든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학살은 악의 상징이 되었지만 범죄를 종식할 어떤 대안도 이야기되지 않았다. 반면, 동티모르의 학살은 미국의 완벽한 침묵 아래 감춰졌다. 마찬가지로 냉전 시기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은 미국에서 양심적 지식인으로 각광받았으나 그들의 역할은 소련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뿐이었다. 소련과 동일한 잣대로 ‘자유 세계’ 미국이 남미에서 저지른 범죄를 비판하는 건 혐오스러운 일로 치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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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는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뻔한’ 소리를 해본다. “서구 지식인들의 책무는 ‘서방 세계의 수치스러운 짓’에 대한 진실을 서방 세계의 대중들에게 알려서, 대중이 범죄 행위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원칙에 어느 지식인이 반박할 수 있는가. 침묵할 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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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