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빈 라덴가의 ‘로맨스’를 파헤친 마이클 무어의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말 많은 영화 의 주요 아이디어가 담긴 (한겨레신문사 펴냄)는, 마이클 무어의 어떤 책들보다도 더 많이 조지 부시 2세가 싫어할 말들을 늘어놓는다. 9·11 이후 온갖 거짓말들 밑에 가라앉아 있는 의혹을 수면으로 건져낼 뿐 아니라, 책 말미에 부시 낙선을 위한 행동 지침까지 설파하니, 부시가 읽는다면 밤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니더라도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익살은 끝도 한도 없다. 꿈속에서 100살이 된 자신과 손녀가 석유 고갈 시대에 대해 대화하기도 하고, 갑자기 하나님이 등장해 “조지의 아들이 내 손에 걸리기만 해봐라”라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낄낄댈 일만은 아니다. 마이클 무어는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이 피흘리는 시대의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바로 미국이 선택한 복수가 ‘삽질’이었음을.
책의 1장 ‘아라비아의 조지에게 던지는 질문 일곱 가지’에서 무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빈 라덴 일가와 부시 가문의 ‘오래된 로맨스’라는 매우 중요한 의혹을 던지고 있다. 비행기 납치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인이었다. 그러나 9·11 뒤 네브래스카 지하에 숨었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부시는 워싱턴 기념비를 올려다보며 사우디의 반다르 왕자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9·11 직후 미국 상공의 비행이 금지돼 있음에도, 유력한 단서를 제공해줄지도 모를 빈 라덴 가족은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미국을 빠져나갔다. 온 나라가 비탄에 잠겨 있을 때 튀어나온 이 생뚱맞은 장면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사우디 왕가는 자신들의 독재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대가로 오랫동안 미국 정가, 특히 부시 일가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빈 라덴 가문은 부시 가문의 석유사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부시로서는 테러에서 ‘사우디’란 단어를 지우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무어는 ‘로맨스’가 얼마나 진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이런 도전적인 질문까지 던진다. “이들은 사우디 정부나 왕가의 불만을 품은 몇몇 왕족의 지시로 이 짓(9·11 테러)을 한 것은 아닐까?”
는 9·11과 두개의 전쟁에 얽힌 부시의 음모를 파헤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음모를 가능케 한 미국 사회의 토대를 건드린다. 부시 행정부의 거짓말(이는 ‘와퍼 햄버거’에 비유된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미디어, 석유를 물쓰듯 하는 소비 행태, 테러리즘을 양산하는 대외정책, 사이비 우익 기독교도들, 빈부격차가 무시무시하게 커지는데도 “우리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버티고 있는 현실. 그럼에도, 무어는 아직도 ‘자유주의의 나라’ 미국에 가능성이 있음을, 그 가능성이 올해 대선에서 실현돼야 함을 지식인이 아닌 ‘대중의 언어’로 외친다.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우리는 2001년 9월11일 미국 시민들의 거대한 분노 중 일부를 껴안게 되었다. 복수는 달콤하고(비록 그것이 대상도 분간하지 못하는 삽질이라 해도), 돈도 된다. 용서는 고통스럽다. 우리는 미국인들이 한 짓을 따라할 것인가.
그런데, 대중의 분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중의 공포다. 미디어가 쏟아놓는 ‘숭고한’ 스펙터클은 우리를 방관자로 만들어 권력의 의지대로 질질 끌려다니게 한다. ‘애국법’이 통과되는 동안, 독가스를 막을 덕트 테이프를 사러 온 슈퍼마켓을 헤집는 미국 대중들이 이것을 증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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