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수업 가르치는 교사의 일기]
올 여름엔 유난히도 비가 잦다. 요란한 빗줄기를 내다보며 출근 채비를 서두른다. 방학 중 보충수업은 여러모로 힘들다. 수업도 평상시보다 30분 정도 빨리 시작한다. 오전 8시10분께 학교에 도착해 시간표와 학급별 진도를 확인한다. 정부에서 ‘보충수업’을 금지했기 때문에 요즘엔 방학 중 수업을 ‘교과 관련 특기적성 교육’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코미디 대사도 아니고, 가당키나 한 말인가? 우리 교사들은 말이 뜻하는 의미를 잊고 산 지 이미 오래다. ‘교과 수업’을 ‘특기적성 교육’이라 하고, 교사들의 입회하에 반강제적으로 실시하는 방과후 학습을 ‘자율학습’이라고 한다. 보충수업 희망원에 반강제로 동그라미를 치게 하고 ‘학생 희망’이라고 말한다. 학생 참여가 거의 없는 학생회 활동을 ‘학생 자치 활동’이라고 부른다.
종이 울려 교실로 향한다. 교실에는 20여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다. 한 반에 대략 35명 내외의 학생들이 있으니 상당수가 불참을 한 것이다. 학생들을 다독이며 수업을 진행하지만 불과 10여분 뒤면 여기저기 잠에 취한 애들이 눈에 띈다.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학생들은 불과 7~8명, 다시 몇 차례 설득도 하고 닦달해보지만 나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내가 매를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어떤 수단도 위력이 없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고 의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우리 학교는 인근에 중소도시를 두고 있는 읍내에 위치하고 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대부분 인근 도시로 진학해 빠져나갔다. 이런 형편으론 보충수업이 아니라 본수업도 소화하기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어쩌랴! 결국 따라오는 것은 본인에게 맡기고 교사들은 무한정 수업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안간힘을 써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안다.
협박 반 하소연 반, 오전 수업을 끝내지만 수업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3학년은 오후에도 두 시간을 더해야 한다. 올해부터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마련하여 심화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수업의 양을 늘리면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소박한 소망이 학생들을 더욱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억지로 두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오후 4시가 된다. 나는 담임이 아니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아이들과 담임교사들은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어떤 학교의 여름방학 풍경이다.
풋내기 교사 시절, 학교에 온존하고 있는 수많은 거짓과 왜곡에 절망하고 분노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리라고 믿었고 이 모든 원인은 잘못된 정권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 나이 50이 넘어가는 지금의 학교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허망한 인생이란 말이 새삼스럽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일의 수업 준비를 위해 교과서를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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