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벌레를 발견한 것은, 스탠드의 어두운 불빛 아래서 공무원 수험서에 붉은 밑줄을 긋고 있을 때였다. 책에 밑줄을 그어야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학생 시절부터의 습관이다. 하얗고 조그마한 벌레는 붉은 밑줄 위를 재빠르게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재빠르게 그것을 짓눌렀다. 1밀리도 되지 않을 그것은, 당연히 먼지처럼 존재를 잃고 만다. 개미보다도 작은 벌레 따위는 시험이 코앞인 내게, 신경 쓸 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다시 펜의 색깔을 바꿔 보라색으로 밑줄 아래 주석을 달고 있을 때, 나는 똑같은 벌레 한 마리를 또 발견했다. 의아하며 그것을 눌러 죽이는 사이, 스탠드 밑을 기어가는 또 다른 그것을 본다.
나는 그제야 의자를 빼고 엉덩이를 돌려 방의 불을 켰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의 좁은 방은, 일어나 걸을 잠깐의 거리조차 허용하지 않아 독방에 갇힌 무기수처럼 언제나 허리가 삐걱거린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눈부신 형광등 아래 번쩍거리는 은색 자명종을 더듬었다. 3시… 커튼을 내려놓은 밖은, 낮인지 밤인지 순간 헷갈린다.
아아, 분명 밥을 먹고 들어왔었지. 조금 전 밥을 먹었다면 낮 3시다. 밤 1시에 밥을 먹으러 나가지는 않으니까. 나는 천천히 책상을 살폈다. 스탠드 밑의 벌레는 하얗고 작은 몸뚱이를 부지런히도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의 낡은 책들 사이에서나 보았던 ‘책벌레’가 아니던가? 다시 검지 손가락을 쓰면서,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은 아닌가 자문한다.
기껏 이런 벌레를 가지고서….
다시 불을 끄려고 할 때, 나는 보았다.
침대 옆 벽면에 점점이 붙어 있는 그것들을. 그리고, 이불에도 몇 마리, 책꽂이 사이사이에도 몇 마리…. 오랫동안 버리지 않고 놔두었던 종이컵을 들추자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나온다. 사람과 함께 사는 벌레라면 쥐, 바퀴벌레, 모기, 파리… 이런 것들 아니던가?
그런 것들도 끔찍하지만, 그것들 대신 이 낯선 벌레떼를 동거인으로 받아들일 용의는, 전혀 없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티슈를 뽑아 그것들을 누르고 쓸어 담았다. 눈앞에서 놓치면 그대로 숨어든다는 절박함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책상과 벽면을 닦고, 침대를 살피고, 방 안의 쓰레기들을 모두 버렸다. 너무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는 자책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하나씩 뽑아 위 아래 옆면을 샅샅이 살핀다. 뽑아드는 책마다 어김없이 벌레가 한두 마리씩 나왔다. 나는 점점 울고 싶어졌다.
이것들이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는 줄 알고 전부 잡는단 말인가. 언제 이렇게 벌레가 많아진 것인지, 내 몸에 기어다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손을 살피고 팔을 살피고 미친 듯이 옷을 벗어 털었다. 벌레가 두 마리 보였던 침대 위 이불은 세탁기에 집어넣고 60도 온도의 세탁 버튼을 눌렀다. 그 정도 온도는 되어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대엔 얇은 무릎덮개 하나만 깐다. 진한 갈색이라 하얀 점이 눈에 띌 것이다.
이렇게 1시간가량 벌레와 사투를 벌이고 난 뒤에, 포털 지식검색 사이트가 생각났다.
나는 그제야 의자를 빼고 엉덩이를 돌려 방의 불을 켰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의 좁은 방은, 일어나 걸을 잠깐의 거리조차 허용하지 않아 독방에 갇힌 무기수처럼 언제나 허리가 삐걱거린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눈부신 형광등 아래 번쩍거리는 은색 자명종을 더듬었다. 3시….그래, 물어보자. 오천만의 국민이 지식인이 되어 대답해줄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는 것도 께름칙해 몇 번이나 닦고 확인한 뒤에야 컴퓨터를 켰다. 이 벌레의 정체를 빨리 밝히는 것만이 살길이다. 몇 번의 검색 끝에, 여러 사람의 답변을 거쳐 이것의 실체를 찾아냈다.
[먼지다듬이: 몸길이가 1~3mm 정도 되는 미세 곤충이다. 때문에 알의 이동이 용이하여 확산이나 번식력이 크다. 생존 적정 습도는 75~80%고, 먼지나 미세한 균, 곰팡이 등을 먹고 산다. 주요 서식처로는 습한 바닥, 배관 틈새, 벽 틈새, 화분 주위, 목재가구류, 책이나 종이 사이, 적재된 종이상자, 나무껍질 속, 해묵은 돌 표면, 낙엽 속 등지이다.]
한 마리 표본을 잡아 자세히 비교한 결과, 사진도 일치한다. 엄지손톱만 하게 확대되어 버젓이 나붙은 그것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어찌나 끔찍한지, 나는 서둘러 이것의 박멸 방법을 찾았다. 비록 한쪽 방을 얻어 쓸 뿐이지만, 이곳은 엄연히 나의 유일한 주거지이므로.
그러나 1시간을 탐색해보아도, 긍정적인 반응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벌레가 여간해선 없어지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심지어 유명 해충박멸 업체마저 완전한 박멸에는 의구심을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장마가 시작되는 7월이다. 습한 곳을 좋아하고, 책이나 종이 사이를 좋아하고, 벽 틈새를 좋아한다니…. 내 방은 반지하에다 지난 3년간 쌓인 수험서와 헌책들로 반절은 채우고 있다. 창문 앞은, 시멘트로 일정 공간을 만든 벽, 그 자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컴퓨터를 껐다.
일단은 며칠 더 지켜보기로 한다. 그래, 어쩌면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낙관은 언제나 사치였다. 벌레는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온다. 그것의 출처는 분명치 않았지만, 창틀에서도 넘어오고 책꽂이에서도 나오고 벽면에서도 나왔다. 내 방의 사방 벽이, 그것들의 천국이었다. 학원 수업도 받고 있지 않는 요즘, 나의 생활공간은 그 한 평의 방에 한정되어 있다. 24시간 중 잠자는 6시간을 제외하고는 18시간 내내 벌레를 생각하고, 벌레를 찾고, 벌레와 함께하는 셈이었다. 그나마 잠자는 시간에도 몸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느낌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고, 책을 볼 때도 글씨보다 벌레의 흔적을 찾는 데 골몰함은 물론, 창틀이며 벽면이며 구석구석을 살피느라 눈이 빠질 지경이다.
나는 마침내 분연히 일어났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
“벌레요? 그냥 개미 아니에요?”
벌레와의 신경전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내게, 몇 년째 경찰시험으로 재수 중이라는 그의 신통찮은 반응은, 즉각적인 짜증을 불러왔다.
“그게 아니라, 먼지다듬이, 책벌레라고 부르는 그 벌레 말이에요!”
“아아, 이름이 뭐든 간에요. 그게 어쨌다는 말입니까?”
수험생이 무슨 머리를 다 볶았을까, 나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훑으며 소리쳤다.
“그게 우글우글하다고요! 제 방에! 이불에도 벽에도 책에도, 치워도 치워도 우글우글!”
성의 없이 어슬렁거리는 그를 데리고 방에 들어갈 때, 나는 다소 수치심을 느꼈다.
내 사적인 공간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불쾌함과, 책들과 정리되지 않은 채 처박힌 자질구레한 짐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복합되었다. 노량진 가장 끄트머리에 신축된 이 고시원으로 옮겨온 것은 반년 남짓 되었다. 반년 동안의 외롭고 지난했던 내 생활은, 여기저기 쑤셔보고 펼쳐보는 그에 의해 파헤쳐지고 유린된다. 이윽고, 그가 판결문을 읊조리듯 말했다.
“책이 이렇게 많으니 책벌레가 나올 수밖에 없겠네요.”
나는 항변한다.
“제 잘못으로 벌레가 생겼단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 책이 그만큼 많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볼 땐 별로 보이지도 않는데….”
그가 말꼬리를 내리면서도 별거 아니라는 듯 넘어가려는 술수를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면 될 거 아니에요? 모르긴 몰라도, 이 건물 어딘가에 이것들 서식지가 있는 거라고요! 새 건물이라 믿고 들어왔더니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이런다니!”
앙칼진 내 외침에 그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는다. 지난 3년 동안 다른 데 드는 돈은 철저하게 아꼈지만, 고시원 방만은 깨끗한 곳에 있자는 것이 내 원칙이었다. 멋모르고 처음 들어갔던 23만원짜리 방은 지저분한데다(가끔 바퀴벌레도 나왔다) 식당도 엉망이어서 당장에 나와버렸다. 그다음 방은 28만원짜리였는데, 방도 깨끗하고 위생 상태도 좋았지만 건물 증축을 이유로 정전이 되거나 소음이 심해 나왔다. 그다음도,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노량진 어디서나 밀려드는 수험생을 수용하기 위해 공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돈을 버는 것은, 건축업자나 고시원장들뿐이다. 마지막으로 택한 이곳은, 반지하인데다 그 전보다 몇 뼘 정도 작은데도 32만원이나 주고 들어왔다. 꼭대기에 있어 근처가 조용하다는 것과 신축 건물이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그런, 비싼 방이, 벌레 소굴이라니! 나는 그를 끌고 내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아아, 그 하얀 벌레요? 그거 뭐예요? 팔에 기어다는 거 보고 깜짝 놀라서 에프킬라 사다가 뿌렸는데….”
내 옆방에 사는 그녀는, 임용고시 준비생이다. 임용고시 준비생은 공무원이나 경찰시험 준비생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차적으로 대상자가 걸러지는 교원자격증의 보유 덕분인지 시험에 대한 나름의 여유와 세련된 옷차림, 스터디 등을 통한 사람들과의 적절한 유대관계까지…. 내 일방적이고도 주관적인 편견에 의하면, 그들은 노량진에서 가장 일반인다운 그룹이었다. 그녀의 방에서도 임용준비생답게 향긋한 레몬향이 퍼진다. 그녀의 트레이닝복은 핑크색 유명 메이커 세트였다. 아기 같은 뽀얀 뺨과 갈빛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이 내 보기에도 어여뻐 총무라는 작자가 헤벌쭉 웃으며 인사하는 것을 이해하고 만다.
“왜요? 그게 뭔데요? 종종 보이던데….”
엄마에게 묻는 호기심 어린 아이처럼, 그녀의 눈이 빛났다.
“아닙니다. 이 분이 좀 예민하신가봐요..”
총무는 그녀에게 신사다운 말투를 쓰며 일을 수습한다. 나만 바보가 될 순 없었다.
“그 벌레 말이에요! 책벌레 그거, 많죠?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죠? 벽에도 나오고 창 쪽에서도 넘어오지 않나요?”
그녀가 도전적인 나의 태도에 놀랐는지, 머뭇거렸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총무가 씨익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거 보라고요, 란 말을 얼굴에 쓴 채. 돌아본 다른 방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게 있어요? 찾아보면 있을라나요? 제가 눈이 나빠서 등등…, 잠시 뒤 나만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낙관은 언제나 사치였다. 벌레는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온다. 그것의 출처는 분명치 않았지만, 창틀에서도 넘어오고 책꽂이에서도 나오고 벽면에서도 나왔다. 내 방의 사방 벽이, 그것들의 천국이었다.힘없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수없이 밀고 닦았던 방 안을 다시 꼼꼼히 살핀다. 며칠 새 그것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아아, 아니나 다를까, 또 여기저기 그것이 붙어 있다. 미쳐버릴 것 같다. 차라리 내가 그 사람들 방을 살펴볼걸…. 나는 중얼거리면서 에어컨을 강하게 켰다. 따뜻하고 습한 것을 좋아한다니, 에어컨으로 얼려 죽여보자 생각한 것이다.
책상 위에는 며칠 전부터 보던 수험서가 비슷한 페이지로 놓여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에도 낙방이다. 이번에도 낙방하면, 귀향은 영영 글렀다.
지난달, 석 달 만에 집에 내려갔다. 매달 30만원의 고시원비를 포함해 60만원을 공수받고, 일주일에 한 번가량 안부 전화를 나누는 부모님은, 퇴직한 공무원이다.
두 분은 연금이 보장된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단 하나의 짐, 곧 눈엣가시인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위로 오빠와 언니, 동생은 모두 진작부터 각각 다른 직종의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으니 걱정이 없었고, 스물일곱이 되도록 대학원을 간다, 만화를 그린다, 뜬구름만 잡던 내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겠노라 선포했을 때, 두 분은 참으로 기뻐했었다.
그래, 너라면 올해 안에 될 거다. 우리가 어떻게든 뒷바라지를 하마.
그러나 나는 해를 넘기고 또 넘기도록 합격하지 못했고, 올해로 3년을 꼬박 채우고 있었다. 두 분의 얼굴은 만날 때마다 더 어둡고 늙어져간다. 결혼한 오빠는 조카를 데리고 와 고모에게 재롱을 부려보라 재촉하고, 언니는 결혼 준비를 한다고 패물 수를 헤아렸다. 동생은 남자친구가 내년쯤 결혼을 조른다고 은근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만 무리에서 떨어진 낙오자 같았다. 서울역에서 달려온 버스가 노량진 앞 육교에 나를 토해놓고 돌아가면,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줄지어 선 포장마차에 빽빽이 선 수험생들 속에서 1천원짜리 토스트로 허기를 달래노라면, 모두가 나처럼 낙오자란 생각에 기운이 솟기까지 했다. 이젠, 3년의 시간이 아까워 되돌릴 수도 없다. 올해 죽기 살기로 해보고, 아니 되면 영영 연기처럼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가족에겐 면목이 없어 도저히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실패자’란 단어와 함께 세상이란 게 점점 더 두려워졌으므로.
일단, 한 주간은 버렸다 생각하자 스스로를 달랬다. 자괴감은 곧 자멸이다. 그리고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고 결심했다. 먼지 속에 수북이 쌓인 헌 수험서와 책들을 하나씩 살피며 분류한 것은, 그것들을 퇴치하기 위한 첫 번째 방책이었다.
-먼지와 책과 종이 사이를 좋아함
메모지에 동그라미를 치며, 서너 차례에 걸쳐 책과 묵은 종이상자들을 내버렸다. 남은 수험서들은 걸레로 잘 닦아 새로 사온 상자 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시험을 앞두고 이런 청소질을 한다는 것이 한심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
-따뜻하고 습한 것을 좋아함
또 동그라미를 쳤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지 한참이나 되어 코딱지만 한 방은, 이미 냉장고가 되었다. 한여름이라지만, 한없이 온도가 내려가는 작은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책들을 정리하고 묶자니, 생리가 올 것처럼 허리가 묵직하다. 어딘가 상자 속에 처박혀 있던 긴 잠바를 찾아 입었다. 내가 힘든 것보다는 그것들이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하며 참아야 한다. 실제로, 구석구석 보이던 그것들의 움직임이 얼마쯤 둔화된 것 같다. 나는 쾌재를 부른다. 좋다, 좋아. 박멸까진 아니어도 쫓아낼 순 있다. 희망이 샘솟았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절망하고 희망한다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간절하고 긴박한 일이 또 있을까.
-나프탈렌을 싫어함?
동그라미를 치려다 말고, 물음표를 찍었다. 나프탈렌? 그건 좀약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내 의구심을 버린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을 나는 믿는다. 좀약이 아니라 무좀약이라도 바르라면 바를 수 있다. 지갑을 들고 10분 거리의 마트로 달려간 나는, 나프탈렌, X락스, 돋보기, 플라스틱 상자 여러 개를 골랐다. 이달의 생활비가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지만, 1천원짜리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여기에 돈을 아낄 수는 없다. 약국에 들러 그것들에게 효과적이라는 살충제도 하나 샀다. 한 보따리 짊어지고 이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든든할 수 있다니. 나는 무거운지도 모르고 신나게 고시원으로 올라간다.
그는 ‘104호님’이란 내 호칭을 또박또박 발음해 말했다. 이곳에서 나는 이름이 없다. 누구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 불러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통성명을 하며 관계를 만드는 동시에 낙방의 길이다.“104호님!”
고시원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총무가 자기 얼굴만 한 창문에 대고 짜증 어린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참으로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이 망할 놈의 고시원 건물에 대고 짜증을 낼 사람은 나란 말이다.
“왜요?”
나도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저거, 저거 보세요.”
그가 고개를 외로 꼬며 가리킨 곳엔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 수북했다.
“저거, 분리수거 제대로도 안 하고 저렇게 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책과 종이상자 외에도 그간 쌓인 잡동사니를 한꺼번에 버린 게 화근이다. 나는 다소 무안해졌다.
“저거 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요? 104호님만 수험생 아니잖아요. 저도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쉬운 줄 아십니까? 뭔 가당치도 않은 벌레 가지고 트집을 잡으시더만, 이젠 저런 걸로 스트레스를 주시냐고요.”
그는 ‘104호님’이란 내 호칭을 또박또박 발음해 말했다. 이곳에서 나는 이름이 없다. 누구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 불러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통성명을 하며 관계를 만드는 동시에 낙방의 길이다. 나는 일단 한 걸음 물러서기로 한다. 벌레 퇴치 작전이 모두 통하지 않는다면, 나는 화려한 화장과 미스코리아대회용 사자 머리를 하고 가끔씩 들르는 그 고시원장에게 따져 물을 테니까.
“미안해요…. 이거라도 드시고 화 푸세요. 이제 다신 안 그럴게요.”
생활비가 오는 다음주 금요일까지 맞추어서 산, 350원짜리(이곳에선 어디서 유통되는지 유명 메이커와 똑같은 저가 제품이 어디에나 있다) 캔커피 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내 유일한 사치생활 품목을 그에게 양보하는데도, 그는 그 영광을 깨닫지 못하고 찌푸린 얼굴로 마지못해 받아 든다.
“앞으로 주의해주세요.”
나는 방으로 들어서며 씩씩대고 있었다. 벌레가 나오는 방을 임대해준 주제에 참으로 아니꼽다. 하지만, 총무와 관계가 나빠져봤자 좋을 것도 없으니 참기로 한다. 엄마가 송금을 잊어버려 방값이 며칠 밀릴 때부터 꼭대기 층에 있는 자그마한 독서실 자리를 전날 맡아놓는 것까지 어디에나 그의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분을 풀지 못하고 침대에 걸터앉는데, 침대 머리 벽에 기어가는 그것이 보인다.
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사온 것들을 풀어놓았다. 일단, 나프탈렌을 책꽂이 사이사이, 서랍 칸칸이, 침대와 책상 밑, 옷장 속과 바닥, 심지어 벽에도 붙인다. 곧 그것의 지독하면서도 묘하게 자극적인 냄새가 피어올랐다. 콧속에서 물이 흐를 듯하더니 이내 목구멍으로 꿀꺽하고 침이 넘어간다. 약의 화학작용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만족한다. 그 냄새가 지독해질수록 그것들도 이곳을 벗어나려고 할 테니까. 그다음은, ×락스 차례다.
창밖에 연결된 창고 같은 공간은, 원래는 반지하 방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비가 계속 오는 사이 습기의 원천이 되어 가끔 곰팡내가 퍼져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벌레가 넘어온다는 것은, 며칠간 창틀을 관찰한 결과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창틀엔 개미떼처럼 그것들이 종종 모여 있다. 나는 독성이 강한 락스를 원액 그대로 창틀에 붓는다. 코끝을 싸하게 만드는 락스 냄새가 치켜 올라와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 향락스로 고르기를 잘했다 싶다. 창틀을 강으로 만든 락스 위로 그것들의 시체가 둥둥 떠올랐다. 하하하, 나는 크게 웃다가 깜짝 놀란다.
언제 마지막으로 웃어보았던가. K가 내게 마지막으로 돈을 빌린 날이었던가?
거리에 나서면, K는 늘 한 걸음 앞서 종종걸음을 했다.
“같이 가면 안 돼?”
“소문나면 안 돼. 이 바닥 몰라?”
그는 노량진 골목의 수많은 학원 중 한 곳의 젊은(나와 두 살 차이뿐이었다) 영어 강사였다. 유명하지도 인정받지도 못한, 세트수업 강의 중 하나를 간신히 맡은, 생업용 강사.
어느 겨울날, 거리에 삼겹살 집이 하나 생겼다. 거리를 가득 메운 고기 굽는 냄새에 눈이 뒤집힐 정도로 삼겹살이 먹고 싶었지만, 노량진에 한 명의 친구도 만들지 않은 나는 혼자 식당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때 그를 만났다. 그는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걸어오다 그 집 앞에 멈춰서 담배를 하나 빼어 물었다. 나는 그의 수업을 세 번 이상 들었으므로(그를 선택한 것은 아니고, 세트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금방 알아봤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하자,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 학생이네. 삼겹살 좀 먹을래요?”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본 것에 감격했다. 선생님에게 인정받은 어린 제자처럼. 그러고는, 삼겹살을 먹자는 말에 두 번 감격한다. 아아, 나는 정말 그것이 먹고 싶었다. 오랫동안 고기 기름이라곤 식판에 얹어진 붉은 돼지 불고기 양념뿐이었다.
그를 만난 석 달 동안,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지만, 통장에 있는 잔고 350만원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가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때나 그에게는 돈이 급했고, 나는 노량진에 오기 전 소소한 알바로 모았던 돈을 내주기를 주저할 수 없었다. 월급을 꼬박꼬박 타고 있는 그가 왜 나보다 그리 쪼들리는지 의심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와의 사랑이 내 모든 영혼을 구원하고 있다고 믿을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노량진의 첫 살이에 지쳐 그만큼 배가 고프고, 외로웠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50만원을 건네던 날, 그는 말했다.
“넌 정말 천사야. 네가 없었다면, 난 이곳을 견딜 수 없었을 거야. 내가 나중에 열 배, 스무 배로 갚을게.”
그의 눈은 진심 어린 감회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두 손은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 나는 크게 웃었다. 그에게 구원이 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쓸모 있어진 첫 번째 순간인 것처럼. 하지만 그 뒤로 그를 보지 못했다. 그가 주말마다 카지노에 살다시피 했고, 사채업자들이 학원까지 쫓아왔다는 것은, 학원에 떠도는 소문에서 알았다. 나는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 이곳의 누구와도 통성명을 하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더 이상 배도 고프지 않고, 외롭지도 않았다. 삶이란 원래 무채색인 것처럼, 늘 반복되는 수업과 밤샘, 홀로 먹는 식사가 그 뒤 생활의 전부다.
나프탈렌과 락스 냄새가 뒤섞인 방은 옷장이나 화장실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냄새가 나를 지켜주는 듯 적이 안심이 되었다. 책상에 앉자, 공부도 제법 된다. 이제 벌레만 없어지면, 다시 원래의 패턴대로 시험 준비에 돌입하는 거다. 앞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벌레 때문에 허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잠잘 시간도 모자라다.
그렇게 허망한 희망으로 한 주간을 더 버텼다.
그러나 벌레는 내 주거 공간에서 떠나갈 의향이 전혀 없었다. 나는 날로 말라갔고, 콧물도 멈추질 않았다. 지독한 나프탈렌과 락스 냄새 때문이었지만, 그것들을 치울 엄두는 내지 못했다. 큰 효과는 없었지만, 이것마저 없다면 벌레들은 더욱 몰려올지 모른다. 절망적인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그것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는데, 미선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노량진에 있는 유일한 고향 친구다. 벌써 두 달 가까이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늘 내 쪽에서 공부를 핑계로 만남을 거절한 탓이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나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녀는 내 얘기를 다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레? 그런 벌레가 다 있나? 어릴 때 보고 못 본 거 같은데….”
“너네 고시원엔 없나 보지. 우리 고시원은 정말 벌레 소굴인데, 아무도 그걸 몰라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아아, 역시 친구뿐이다.
“네가 요즘 힘든가 보다. 그런 거에 신경을 다 쓰고….”
그녀의 말에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기분 탓이 아니야. 정말로 그것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나는 종이컵에 든 커피를 벌컥, 모두 마셔버렸다.
“그래… 그러면, 원장한테 말을 해봐. 요즘은 방역업체도 좋은 데가 많잖아. 불러서 소독도 하면 효과가 좀 있을 텐데. 아니면, 방을 바꿔달라고 하든가. 그래도 벌레가 나오면 다음달에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잖아.”
그녀는 내가 심상치 않아 보였던지, 조곤조곤 달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원장이 오는 날이 언제인지를 생각해본다. 예전에 듣기로, 그녀는 수요일과 금요일만 들러서 6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잠깐 머물다 간다고 했다.
“시험은 어때? 난 이번 지방시험은 포기해야 할까봐.”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도 반년 전부터 나와 같은 공무원시험에 뛰어들었다. 그녀마저 이 끝없는 터널에 빠져드는 게 무서워 만류했지만, 그녀도 선택할 여지가 없다 했다.
“나도 그렇지…. 벌레 때문에 지난주에도 책 한 자도 못 보고….”
“그런데 넌 왜 그 시험만 고집해? 다른 시험도 좀 보지.”
그녀는 내가 매년 7·8월에 있는 7급 시험만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9급 시험이든 소방직이든 닥치는 대로 보고 있었다는 것은 모른다. 그럼에도 언제나 낙방이었다는 것이, 그녀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하는 이유였다.
“한 우물만 파려고….”
나는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입술이 올라가질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로 이것저것 찔러대고 있어서 아무것에도 합격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핑계를 찾는다.
“아, 다음주엔 강식이랑 롯데월드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히…. 수험생이 이 모양이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잠실에 살고 있는 직장인이었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그녀는 ‘사람다운’ 생활을 여전히 유지한다. 낙방을 해도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나는 부러웠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나는 원장을 독대하겠다고 결심한다. 어떻게든 이번 일을 마무리지어야지만 이 지옥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원장님요? 왜요?”
총무는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훑었다.
“드릴 말씀이 있으니, 만나게나 해주세요.”
나도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지금 당장 내 방에 가보면 벌레를 죽인 화장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을 테니까.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전화를 들었고, 한참 뒤에 ‘띵’ 하고 엘리베이터 소리가 났다. 그녀는 오늘도 스칠 때마다 보았던 화려한 화장을 하고,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긴다. 끈으로 연결된 호피무늬 민소매를 입고 나타난 것도 역시 그녀스럽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얘길 들어보면, 그녀가 야쿠자의 애인이란 소문도 있었다.
“무슨 일이죠?”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용기를 내려 했지만, 주책없는 심장이 쾅쾅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요즘 들어 점점 더 사회성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벌레가요. 하얀 벌레가, 엄청나게 많아요. 방에요. 화장실에서도 몇 마리 발견했어요. 책에서도 나오고, 벽에서도 나오고, 창틀에도 많고요.”
그녀의 눈이 날카로워졌고, 뒤에선 총무의 짜증스러운 한숨이 느껴졌다.
“제가 어떻게 참아보려고 했는데, 이건 정도 이상이에요. 방역업체를 불러서 소독을 해주시든지, 방을 옮겨주세요. 안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게 환불을 해주시든지요.”
그녀의 눈초리에 짓눌려 마지막엔 숨이 차올라 침을 몇 번이나 삼켜야 했다.
“그러니까.”
얼음을 갈아넣은 듯 차가운 목소리였다.
“우리 건물에 벌레가 많고, 아가씨 방에도 그 벌레가 나온단 말이지요?”
나는 주눅 든 아이처럼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레라면, 나도 싫어하니까.”
그녀가 고개를 돌려 총무를 바라본다.
“저번에도 이분이 한번 말씀하셔서 살펴봤는데요, 별로…. 다른 사람들도 말이 없고요.”
총무는 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제가 한번 가보죠. 몇 호인가요?”
그녀가 나와 총무를 따라 걸어왔다. 굽이 뾰족하고 매끄러운 그녀의 암갈색 실내화가 똑똑 소리를 내며 복도에 울린다. 방문을 열자, 옷장이나 화장실에서 나는 비슷한 냄새가 확 밀려나왔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 벌레 퇴치에 좋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런 것들을 좀….”
둘은 정말로 놀란 듯했다. 원장은 차마 들어서지도 못하고 고개만 들이밀고 나프탈렌이 여기저기 붙고 플라스틱 상자에 정리된 책들과 벽과 거리를 두어 떨어뜨려놓은 침대 등을 살폈고, 총무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들어와 락스에 변색돼가는 창틀을 본다.
“104호님!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희 건물을 오히려 손상시키시는….”
“총무, 알았으니까 나와.”
내게 항의하려는 총무를 원장이 끌어냈다. 나도 주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쩐지 미안하긴 했지만, 다 그놈의 벌레 때문이지, 내 탓이 아니란 말이다.
“방역업체에 의뢰해서 철저히 조사하고 처리해달라고 해.”
총무실 앞까지 함께 걸어온 원장이 총무에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뾰족한 굽에 키스라도 할 수 있을 만큼 기뻤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그녀는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총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복도를 사뿐사뿐 걸어 벌레의 방으로 되돌아온다. 업체의 전문가들이라면, 분명 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시험에 붙은 것보다도 더 마음이 가벼웠다.
기쁨이 더 큰 실망이 된 것은, 불과 이틀 후였다.
이틀 동안, 나는 참말로 그것들과 기쁜 동거를 할 수 있었다. 이내 사라져버릴 것들이었으므로. 하지만 이틀 후, 총무가 나를 불러 업체의 소독 방식이 고시원 사정에 적합하지 않아 도저히 방역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는, 천국에 매달린 내 동아줄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것처럼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원장님이 다른 방으로 옮겨주라고 하시네요. 마침 403호가 났는데, 4층이면 햇빛도 잘 들고, 송풍도 잘 되니 벌레 얘기는 없으시겠지요. 옮기시기 전에 방부터 확인시켜드릴 테니까, 뒷말 없으셨으면 하고요. 퇴원 하실 생각이면 미리 말씀해주세요. 물론 중간에 환불은 안 되니까 다음달부터요.”
그는 내 방을 다녀간 뒤로, 나를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과 키득거릴 때도 있었다. 아아, 그것도 나의 기분 탓일까. 우리는 함께 4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바로 짐을 뺀 듯 사람의 체취가 아직 남아 있는 깨끗한 방이다. 오후 4시의 오렌지빛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더위가 한풀 꺾인 따듯한 바람이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밀려드는 것이 나는 도리어 낯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반지하의 내 방은 비가 내리는 듯 어둡고 축축했으므로. 이곳이라면, 그래, 이곳이라면, 벌레도 없을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방을 둘러본다. 제발, 그것들이 보이지 않기를 소망하며.
“여기 쓰던 분이 합격하셔서 나갔으니, 좋은 방이에요.”
총무가 무슨 생각에선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바심치는 내 모습이 가엾었던 걸까? 여긴 좋은 방이다. 단지 내가 방 운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뇌던 순간, 나는 보았다. 책꽂이 옆을 지나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는 그것을. 내가 미동도 없이 서 있자, 그가 재촉한다.
“없죠? 그럼 내일 중으로 방 옮기세요. 행여 이 방에도 이상한 거 하지는 마시고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돌아왔다. 좌절감이 머리를 짓눌러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4층으로 가거나, 다른 고시원으로 옮긴다 해도, 그것들이 나를 따라올 것이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어쩌면 내 평생의 숙명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영영 그것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고시원 옷봉에 목을 매단 수험생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나의 오늘이거나 내일이다.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덮은 채 마른 눈물을 삼키다 잠이 들었다. 혹시 벌레가 보이지 않을까봐 불도 끄지 못해 환한 형광등 불빛이눈꺼풀을 파고들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2주째 공부를 하지 못했다. 책들은 지난 3년간 보고 또 보고 해온 것들이지만, 2주간 손을 떼고 있었다는 것은 시험에 대한 감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그 ‘감’이란 것은 시험의 ‘운’과 같은 뜻이었다. 나는 분명 이번에도 낙방할 것이다. 부모님은 한숨을 내쉴 것이고, 올케는 가끔 남편이 용돈을 보내주곤 하는 시누의 존재를 마땅찮아 할 것이다. 동생은, 예비 시부모님께 나의 직업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친구들 중 누구는 떳떳하게 돈을 벌고, 누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때론 집을 산다 차를 산다 고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눈으로는 벌레를 찾고, 손으로는 그것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내가 미쳐가는 것은 아닐까? 고시원 옷봉에 목을 매단 수험생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나의 오늘이거나 내일이다.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덮은 채 마른 눈물을 삼키다 잠이 들었다. 혹시 벌레가 보이지 않을까봐 불도 끄지 못해 환한 형광등 불빛이 눈꺼풀을 파고들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따라라라랑∼ 따라라라랑∼ 따라라라랑∼.
엄청난 굉음에 눈을 떴다.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이 들었고, 그 소리가 화재경보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복도에서 울려퍼지는 그것의 파워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복도를 퉁탕거리며 뛰어가는 소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었다. 쿵, 쿵, 심장이 뛰었다. 고시원에 불이 나다니. 어디에서 났을까. 얼마나 났을까. 불이 나면 질식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빨리 나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어쩌면,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좋은 방법이 아닐까? 나는 귀를 때리는 굉음 속에서도 차분하게 벽과 책상 등을 살폈다. 여전히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다닌다. 나프탈렌과 락스 냄새는 안개처럼 방 안을 감싸고 있었고, 나는 원피스형 잠옷을 하나 입은 채 유령처럼 서 있다.
나는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옷감에는 잘 붙지 않는 그것들의 특성상 그곳만이 나의 천국이다. 그곳에 영영 머무를 생각이었다. 화재경보음은 계속 괴성을 질러대고,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갔는지 복도는 조용해진 대신, 창밖의 사람들의 웅성임은 점점 더 커진다.
곧 이 지옥이 끝난다는 생각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모두 끝이다. 벌레도, 나도, 절망도, 실패도.
얼마쯤 지났을까. 밖의 웅성임은 그대로인데, 화재경보음도 잠잠해지고, 기다리던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불길은커녕 연기 냄새조차 나지 않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나는 일어나 문을 연다. 복도는 깨끗하게 일자로 뻗어나간 채 고요했다. 뜨거운 느낌이나 라이터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방마다 열린 문들이 대피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왜 나는, 그 방들에서 벌레를 확인해볼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을까. 벌레는 내 생의 중심에 있었다.
나는 방 하나를 골라 샅샅이 뒤진다. 벽도, 옷장도, 책꽂이도, 침대 밑과 이불도 살폈다.
놀랍게도, 그 방에선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번 벽을 꼼꼼히 살폈다. 창틀도 보았다. 없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더 미칠 것 같았다. 이 방만 없는 것일까? 혼자 자문하는 사이에, 방주인이 돌아오고 말았다. 까딱하다가는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다.
“벌레…. 벌레가 있는지 보고 있었어요.”
여자의 눈에 천천히 조롱의 빛이 떠올랐다. 뒤에 서 있던 그녀의 동무인 듯한 여자도 그녀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그녀들은 총무와 친한 그룹이었다.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붉어지는 얼굴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들이 원망스러울수록 점점 더 뜨거워진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았다. 가보세요, 그녀가 인심 쓰듯 말한다. 도망치듯 복도로 나오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원장의 애인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다가 경보 벨을 눌렀다는 얘기를 소곤거렸다. 원장의 민소매 사이로 드러났던 탄력 있는 몸매가 떠올랐다. 그 매끄러운 피부 위로 그것 한 마리가 기어간다면 어떨까, 나는 미친 사람처럼 키득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지옥은 계속된다.
오전에 403호로 이사를 했다. 벌레 퇴치 작전 중에 짐을 많이 내버렸으므로, 중간 사이즈의 플라스틱 상자만 7개쯤 옮기면 되었다. 미선이 와서 거들었다.
“야, 이 방 정말 좋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커플링 반지를 반짝이며 생긋 웃었다. 어쩌면 곧 그와 결혼할지 모른다. 시험의 합격과 불합격이란 판정을 받지 않고서라도.
“이제 너도 다 잊어버리고 공부에만 전념해. 괜히 이상한 생각만 하지 말고.”
나는 말없이 350원짜리 캔커피를 내밀었다.
“난 이거 찜찜해서 먹기 싫던데. 그래도 어쩜 이렇게 맛은 똑같은지.”
그녀가 먹는 것이 마지막 커피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어제부터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벌레 소동에 생활비가 달랑 3천원 남았다. 엄마에게 미리 송금을 부탁하는 것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에게 얼마라도 빌릴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식권이 몇 장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바래다준다는 핑계로, 거리로 나왔다. 대낮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거리로 나온 게 얼마 만인지 까마득하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사육신공원을 가보기로 한다. 사육신공원에 가면 낙방한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한 번도 가질 못했다. 공원은 조용했고, 오래된 나무가 내뿜는 그윽한 향과 멀리 내려다보이는 한강이 시원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 부채질을 해주는 연인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어쩌면 그 햇살이 내 온몸과 마음에 가득한 벌레를 살균해줄는지 모른단 생각에 일견 시원하기까지 했다.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뿌연 시야 속에 붉은 꽃이 들어온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수십 년은 됐을 법한 커다란 나무에 점점이 매달린 붉은 꽃들. 공원 안쪽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 나무 아래에 섰다. 이름표가 없어 나무 종은 알 수 없었지만, 나무가 머리 가득 짊어지고 있는 붉은 꽃들만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젯밤 불이 났더라면 저런 빛이었겠지,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불이 난 줄 알고 죽겠다고 숨어 있었는데, 결국은 한낱 소동에 불과하다니. 나는 웃었다. 크게 웃었다. 사람들이 내 쪽을 힐끗거렸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미선에게 전화해 5만원을 빌렸다. 그리고 마트 옆 지업사에 들어가 붉은 꽃이 가득 그려진 화려한 포인트 벽지를 반롤 구입했다. 붓과 풀은 각각 1천원에 샀다.
그러고 나니, 딱 4천원이 남았다. 생일에나 가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 들른다.
화이트 초코 모카 라테. 생크림과 초코가루가 듬뿍 들어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달콤하고 들척지근한 맛이 이제까지 중 최고다. 들어오자마자, 나는 벌레 몇 마리를 종이로 살며시 잡아 작은 비닐 병에 담았다. 그것을 들고 나는 엘리베이터의 6층 버튼을 누른다. 6층 복도 끝엔, 큼직한 원장의 전용 룸이 있다. 그 방에 앉아 수금한 방값을 세곤 하겠지. 나는 병을 열어 벌레를 그 문에 기어오르도록 했다. 벌레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문 안쪽으로 숨어 들어갔다. 나는 또 웃는다.
방으로 돌아왔다. 북북, 침대 옆과 맞은편의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한다. 그 양 벽에 붉은 꽃이 가득해지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붉어진 하늘에서 감빛 햇살이 달려 들어왔다. 붉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나는 그 속에 들어앉은 작은 벌레였다. 웅크린 몸을 쭉 편다. 두 팔을 벌리고, 붉은 꽃 속에 기대어 누웠다.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몇 해 만의,
낮잠이다.
김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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