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까. 지난 10월6일, 60m 높이의 타워크레인을 운전하던 한 기사가 추락해 사망했다. 타워크레인의 가로축은 땅에 고꾸라지며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기사가 타고 있던 운전석 일부는 60m 꼭대기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뒤집어지는 타워크레인의 가로축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 스스로 “하늘의 막장”이라고 부르는 곳. 출퇴근길 우리 곁에 늘 있지만, 그 한 평도 안 되는 꼭대기 공간에서 어떤 삶이 숨쉬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렇게 무관심 때문에 또는 특별한 공간적 격리로 인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오지’와 ‘오지의 삶’은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은 ‘우리 곁의 오지’들을 찾아가는 연재를 시작한다. 첫 번째 공간은 고공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그곳, 타워크레인의 꼭대기 조종석이다. _편집자</font>
지난 10월12일, 먼지를 뒤집어쓴 70m 높이의 타워크레인 앞에 섰다. 동행한 박아무개 기사는 36살의 가장으로, 타워크레인을 탄 지 6년째다.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박 기사가 앞장섰다.
“좀, 많이, 꽤 힘들 거예요.”
올라가는 요령이 있긴 한데 알려줘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요령이란 팔을 곧게 펴고 팔의 힘을 비축하면서 최대한 다리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딱 한 사람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한 뼘이 겨우 넘는 넓이로 만들어진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안전장비는 없었다. 요령의 적용을 방해하는 것은 공포감이었다. 공포에 익숙해지는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에게 느껴지는 공포감이 극대화되는 높이는 15m라고 알고 있었지만, 지식은 현실 앞에서 무력했다. 오를수록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공포가 더해졌다.
안전 장비 없이 오른 70m사다리를 정확하게 디디려면 아래를 보면서 올라야 했다. 여러 개의 사다리를 잇대어 놓은 탓에 아래위 사
다리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다. “아래를 보면 안 돼”라는 할리우드 영화의 대사는 “아래를 반드시 봐야 안전합니다”라는 현실 언어로 바뀌었다. 아래를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공포를 참아야 했다. 공포가 밀려올수록 팔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너무 힘을 준 탓에 팔근육이 굳어오고 경련이 날 듯 씰룩거렸다. 그 고통으로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악순환이다. 손힘으로 사다리를 단단히 잡아야 덜 무서울 듯한데 쥘수록 고통스러워 손에 힘이 빠지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결국 사다리를 품에 안았다. 무릎이 사다리에 부딪히면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법규상 3m마다 있어야 하는 안전 쉼판이 10m 정도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다. 공중 30m에서 느끼는 다음 쉼판의 거리는 10km보다 더 멀었다. 결국 양팔에 상처를 가득 내고, 무릎을 제대로 펴기 힘들 정도로 멍을 단 채 조종석 바로 아래 철골로 올라섰다. 35분이 걸렸다.
<font color="#008ABD">공중 30m 사다리에서 느끼는 쉼판의 거리 10m는
10km보다 더 멀었다. 결국
양팔에 상처를 가득 내고,
무릎을 제대로 펴기 힘들
정도로 멍을 단 채 조종석
바로 아래 철골로 올라섰다.
35분이 걸렸다.</font>
조종석 문을 열었다. 박 기사가 전원을 올렸다. 윙~. 330V의 전원이 흐르면서 타워가 숨 쉬기 시작했다.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힘들게 올랐지만 앉을 자리도 없다.
박 기사도 처음 올랐던 때를 기억했다. “저도 무서워서 사다리를 하도 꽉 쥐는 바람에 팔뚝에 쥐가 올랐어요. 무릎도 너무 아파서 엉덩이를 뒤로 빼고 우스꽝스럽게 한 칸씩 겨우 올랐죠.” 지금은 사다리를 두 칸씩 뛰어오른다. 공사 현장에서는 타워크레인이 돌아야 삽질이 시작된다. 아침 7시에 무조건 작업을 시작해야 하니 이를 악물고 악착스럽게 올랐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고 사다리를 손으로 감싸쥐는 대신 손바닥을 갈고리처럼 구부린 채 턱턱 걸치면서 오를 만큼 단단한 팔을 갖게 된 건 두 달이 지나서다. 지금은 조종석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바람이 부는 날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 공포가 일상이 된다고 해서 무감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듣는 동료의 사망 소식올라오고 나서야 알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맨몸으로 맨손으로 오르지만 사다리에서 사고가 난 경우는 최근 몇 년간 한 건도 없었어요.” 박 기사는 타워크레인 노조의 조합원이라 크레인 사고가 날 때마다 사고 직후 문자메시지로 소식을 받는다. 하지만 박 기사는 모르고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순수하게 타워 크레인을 오르내리다가 난 사고가 3건 있었다.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크게 다쳤다.
땅속으로 3m가 박히고 하늘로 70m가 올라온 철기둥에서 본 하늘은 땅에서 본 색깔과는 달랐다. 노랬다. 바람이 불면서 크레인이 좌우로 유연하게 흔들렸다. 많이 무서웠다. 그래서 자꾸 묻게 됐다. “무섭지 않으세요?”
“무서운 건 익숙해지는데, 외로운 건 익숙해지지 않아요.”
문을 열고 조종석에 오르자마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발을 꼼지락거린다. 그리고 바람에 따라 돌기 시작한 타워크레인 가로축의 끝단을 본다.
“작업자와 무전을 통해 주고받는 게 근무 중에 듣는 사람 목소리의 전부일 때가 많아요. 그러니 무인도에 와 있는 느낌이죠.”
늘 아래의 작업 요청 무전에 신경을 써야 하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조금만 늦어지면 아래에서는 일을 하지 못하고 때로는 안전사고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건물의 기초를 잡는 3개월간은 정신이 없다. 타워크레인 한 대가 책임지는 영역은 1만 평 정도. 적게는 건물 한 동, 많게는 네 동의 넓이다. 한 개의 타워크레인이 날라준 철근 등 자재로 100명에서 400명까지 일을 해간다.
“무전이 아우성처럼 들려요. 양손을 쉴 수가 없죠. 전화는 걸 수도 받을 수도 없고요.”
<font color="#008ABD">“하루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4~15시간 혼자 멍하니
앉아서 들어오는 무전대로
기계를 움직이면 내가 기계
인지, 기계가 나인지….”
-박아무개 타워크레인 운전 기사</font>
순간의 착오가 대형 사고를 가져오는 건설현장에서 무전을 통해 개인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하루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4~15시간 혼자 멍하니 앉아서 들어오는 무전대로 기계를 움직이면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래에서 동료끼리 웃고 떠들면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공중에 매달려 고정돼 있다는 답답함은 작업 중간중간 쉴 틈이 생길 때 오히려 더 커졌다.
이런 느낌은 동료의 사고 소식을 접하면 더 심해진다고 한다. “서교 자이 현장 타워 전도, 사망 2명, 부상 1명.” 지난 10월6일 타워크레인 노조에서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작업 도중이라 한참 뒤에서야 확인하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줄담배를 넉 대나 피웠다. 70m 상공에서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였던 동료의 죽음에 대해 듣는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박 기사의 타워크레인도 사고 기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어서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지난해 받은 사망사고 문자메시지는 16건. 사망자는 17명이다. 박 기사는 광산 사고와 자신들의 사고를 비교하기도 했다. 사고 순간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예측하기도 힘들다. 광산 사고가 집단적이라면 타워크레인 사고는 개별적이다. 허공과 지하로 공간이 갈리지만, 가장 큰 차이는 사고 순간이다. 고꾸라지는 순간, 허공의 조종석은 끝이다. 박 기사의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말은 그래서다. 일어서서 한 걸음도 제대로 내디딜 수 없고 기지개도 켤 수 없는 좁은 공간, 그 공간이 하늘과 가까워지면서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은 그들에게 공포와 긴장을 불러와 더욱 힘들게 한다.
그는 왜 타워크레인 일을 시작했을까? 5년 전 1t 트럭으로 채소·과일을 납품하는 일을 했다. 불황이 왔고 더는 버틸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누구나 그렇듯 공사현장 일을 시작했다. 그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노가다의 꽃’이 타워크레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현장 작업의 중심은 타워크레인이다. 폼이 났다. 꼭 “기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것도 한몫했다. “인생이 좀 피겠거니하고 시작했죠.”
박 기사의 자리에 직접 앉아봤다. 이제서야 유리로 앞이 트인 강철상자라는 게 느껴진다. 머리위를 가로지른 선반은 쏟아질 듯 가깝다. 팔을 한 껏 벌려봤다. 양팔이 어렵지 않게 닿는다. 전면의 유리에는 먼지가 뿌옇다. 먼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앞에 펼쳐진 풍경에 현실감이 떨어져서인지, 시야가 트여 시원하기보다 갇혀있다는 답답함에 가슴이 막혀왔다. 가을임에도 오후 내 강철지붕을 달군 열 때문인지 후텁지근한 느낌까지 더해진다. 잠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전면이 트여 있으니 공중에 붕 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묘하게 불안하다. 20층 고층 빌딩같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는 느낀 적이 없는 불쾌함이다.
그러고 보니 조종석에도 안전벨트 등 안전장치는 없다. “사고가 났을 때 전투기처럼 낙하산 펴고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면 안전벨트가 사실 별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이 역시 박 기사는 잘 모르고 있었다. 지난 10월6일 타워크레인 사고에서는 조종석과 기사를 연결시켜주는 안전장치만 있었다면 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만에 하나 벌어질 상황을 대비해 이어놓는 마지막 생명줄에 대해 정부는 법률로 규율하고 있지 않다.
의자가 별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뒤를 보니 기아 마크가 찍혀있다. 박 기사가 말을 건넨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는데 원래 운전석은 아니고, 중형차 운전석이에요.”
아무렇게나 끼워넣은 운전석처럼 부품도 어떤 부품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사실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했다. 타워크레인이 건설기계가 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그 전에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유해위험기구’로 분류돼 단순한 철 구조물로 취급됐다. 자동차 번호판 같은 등록번호도 없었다.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고철덩어리에 의지해 공중에 매달려 하루 10시간을 보내온 것이다. 지금도 등록되지 않은 타워크레인이 꽤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 탓에 각각의 기계들이 어느 정도씩 결함을 갖고 있다. 그 결함을 기사들이 미리 알아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일할 곳이 생길 때마다 기사 개인이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해야 하는 탓에 그 결함을 모르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박 기사는 자신이 프로야구 선수라고 했다. “프로야구 선수처럼 건설현장이 끝나면 다시 연봉계약을 해야 하고, 혹시나 그때 부러진 야구방망이를 지급받으면 첫 타석에서 죽을 수도 있죠.” 박 기사가 이번에 만난 타워크레인은 두 바퀴 반까지 회전이 가능한 다른 크레인과는 달리 한 바퀴를 겨우 돈다. “처음에는 이걸 몰라서 큰일 날 뻔도 했어요. 당시 뭔가 이상해 바로 조치를 하지 않았으면, 뭐, 그렇죠?”
휴대전화에도 깨지는 바닥 유리
조종석 한켠에 ‘1995 현대중공업’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박 기사가 지금까지 올라탄 타워크레인 가운데 가장 낡았다. 최근 사고가 난 서교동 자이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이 10년간 사용으로 노후화됐다는 지적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박 기사의 불안을 짐작할 수 있다. 박 기사의 타워크레인에도 결함은 곳곳에 있었다. 우선 ‘리미트’라는 장치가 파손돼 있었다. 리미트는 물건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올라오면 자동으로 멈춰주는 작용을 한다. 리미트의 결함은 곧 들어올리는 물체와 타워크레인 가로축과의 충돌을 의미한다. 며칠 전 가로축 일부가 건축자재와 충돌해 찌그러졌다. 더 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바깥을 둘러보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면·좌우·천장까지 유리였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는데, 아래에서 볼 때와 달리 바닥도 유리로 돼 있었다. 뻥 뚫려 있는 느낌이 공포감을 더했다. 유리 아래로 새끼손가락 굵기의 철근 두개만 가로지르고 있었다.
“무섭기보다는 불안하니까 좀 찝찝하죠.”
<font color="#008ABD">심리적인 어려움에 앞서는것이 물리적인 근무 여건이
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있지
만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
고, 겨울 난방은 발 아래 온
풍기가 전부여서 시린 발을
겨우 면할 정도다.</font>
유리를 발로 굴러봤다. 박 기사가 다른 때와는 달리 곧바로 만류했다. 강화유리가 아니었다. 상당수 기사들이 일어나거나 기지개를 켜다가 잘못 밟아 유리가 깨지는 일이 빈번했다. 박 기사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는데 유리가 깨진 적도 있다고 했다. 깨지면 비용도 발생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새 유리를 갖고 올라오는 일이다. “어느 유리가게 사장님이 유리를 메고 70m를 올라오려고 하겠어요. 그냥 갈아끼웁니다. 제가 갖고 올라오기 쉬운 걸로.” 아크릴로 갈아끼우기도 하지만 선명해야 아래 작업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니 가급적 사비를 털어 유리로 갈아끼운다.
박 기사에게 다시 자리를 내줬다. 습관인지 유리판 위의 발을 꼼지락거린다. 그리고 전원을 올려 운전을 시작한다. 타워크레인은 330V의 전기를 케이블로 끌어올려 움직인다. 타워크레인은 기본적으로 ‘마스트’라고 하는 기둥(세로축)을 세우면서 높이를 높이고, ‘지브’라고 하는 가로축을 회전하면서 작업한다. 그리고 그 가로축에 ‘훅’(고리)이 달린 와이어를 연결해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내리고 가로축을 따라 당기기도 하고 밀기도 한다. 운전은 10cm 정도의 스틱을 좌우에 배치해 왼손으로는 회전과 들고 내림, 오른손으로는 밀고 당김을 조절한다. 세밀한 조절이 필요한 일이어서 처음 시작한 뒤 1년 정도는 아래에서 자재를 받는 인부들로부터 원망을 산다고 한다. 이날 아래의 인부들과 공동작업을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날은 리미트 점검을 의뢰한 날이다.
“조종석에 앉아 있는 시간을 계산해보고 학교 다닐 때 이렇게만 앉아 있었어도 지금쯤 어느 학교 교수를 하고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하죠.”
와이어를 움직이는 시범을 보인다. 왼손 앞에 버튼 두 개가 있다. 왼편은 브레이크, 오른편은 브레이크 해제 버튼이다. 오른손 앞의 버튼은 전원을 넣는 버튼이다. 이렇게 손을 까딱까딱하는 작업이 전부이다 보니 엉덩이와 등 쪽 땀띠는 기본이다. 치질이나 하지정맥류도 그들의 직업병이다.
박 기사가 이날 갖고 올라온 것은 세 가지다. 휴대전화, 담배 세 갑, 무료 신문 2부. 휴대전화는 정해진 시간에만 받을 수 있다. 양손을 움직이는 작업을 하는 탓이다. 쉬는 시간에는 주로 담배를 피운다. 하루 두세 갑은 기본이다.
심리적인 어려움에 앞서는 것이 물리적인 근무 여건이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겨울 난방은 발 아래 온풍기가 전부여서 시린 발을 겨우 면할 정도다. 박 기사의 무전기 ‘ETECH’가 울린다. “기사님, ○층 ○○입니다. 이동 바랍니다.” 주문이 쉴 새 없이 이어지지만 알고 보니 박 기사를 부르는 무전이 아니었다. 옆 타워크레인의 주파수를 맞춰놓고 있었다.
원래 타워크레인의 1회 작업 용량을 기준으로 t당 100만원 정도가 원청업체에서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적정금액이다. 보통 타워크레인의 용량은 10t 안팎이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하청업체의 직원으로 월급을 받는다. 업체에서 최소한 월 800만원을 받아야 기사의 월급도 보장되는데, 최근에는 월 500만원 정도에서 낙찰되고 있다. 그래서 박 기사가 매달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월급이 적은 건 당연히 불만이지만, 불안한 건 회사를 운영할 여건이 안 될 만큼 대금을 받으니 정비 비용을 줄이는 거예요. 부품이 워낙 비싸기도 하고.”
현장에 설치할 당시에만 국토해양부의 검사를 받으면 되고 그 뒤 검사는 2년마다 한다. 대부분 공사가 그 기간 안에 끝나고 타워크레인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타워크레인은 안전 검사에서 방치 상태나 다름없다. 게다가 박 기사처럼 15년이나 된 타워크레인을 탈 경우에는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박 기사와 함께 올라오면서 볼트 결함을 두 군데나 발견했다.
“타워크레인은 넘어지기 전까지는 넘기지(폐기시키지) 않는다는 말을 해요. 어쩌겠어요. 그냥 해보는 수밖에요.”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다. 집 청소는 못해도 조종석 청소는 한다고 했다. 가장 먼저 올라와 하는 일이 간이 전기청소기로 바닥의 먼지를 치우는 일이다. 그래도 조종석 뒤에 달린 에어컨은 녹을 뒤집어쓰고 있다. 먼지를 닦으니 대우라는 글자가 보인다. 벽에는 각자가 좋아하는 걸그룹을 시대순으로 적어놓은 듯 S.E.S, 핑클… 원더걸스까지 각자의 필체로 어지럽다.
사실 올라올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용변통은 여기저기를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 방에다 똥오줌을 해결하는 사람은 없죠.” 대변은 대부분 아래에서 해결하고 소변도 웬만하면 참는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집 못지않게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에 대부분 강박적으로 청결을 유지하려 한다. 혼자 일하면서도 담배는 조종석 밖으로 나가서 피우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무인도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한 몇 가지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래도’라고 단서를 달아 물었다. “저는 검은 비닐봉지를 써요. 어떤 때는 갖고 올라오기도 하는데….” 박 기사는 절대 먹지 않는 음식이 있다. 찬 우유와 달걀은 속이 불편할까봐 먹지 않고, 꿀이나 인삼 등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음식도 타워크레인에 올라오기 전에는 삼간다.
오늘도 3천 대에 3천 명이 매달려30분쯤 뒤 박 기사는 내려가자고 청했다. 내려오는 길, 다시 아득하다. 여전히 팔은 굳어 있다. 내려가는 길도 20분이 걸렸다. 엘리베이터에 대해 다시 물었다. 3천여 대 중 단 1대에서 시범적으로 운용되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데 600만원이 든다. “볼트 정비도 안 되는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라니요. 발 아래나 잘 보세요.”
가끔 내려다보며 오르는 길과는 달리 내려오는 길은 70m에서 땅에 발을 디딜 때까지 아래를 계속 봐야 했다. 그는 사뿐 땅에 발을 디뎠다. 툭툭 발을 굴렀다. 광부들이 갱도에 내려갔다 올라오며 맑은 숨을 내쉬듯, 철제사다리를 올라갔다 무사히 내려온 박 기사만의 의식이었다.
최초의 타워크레인은 1920년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쌓아올렸다. 벡텔이라는 건축기사가 발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서울 조선호텔 재건축에 처음으로 쓰였다. 발명가의 이름을 딴 미국의 벡텔주식회사가 들여왔다. 전성기 때는 노태우 정부 시절 200만 호 주택 건설과 함께 전국 건설현장 여기저기에 흔하게 꽂혔다. 이제는 고층 아파트를 중심으로 공장, 댐, 철탑 등 광범위한 건설현장에 사용된다. 현재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완성품 검사 대수를 기준으로 매년 3천 대 정도가 설치·운용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오늘도 단 한 사람만이 올라가 있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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