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교자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는 산업재해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인재’로 꼽힌다.
당시 사고가 난 타워크레인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던 한 관계자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을 보면, 오조작보다는 장비 노후화나 정비 불량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장 관계자는 경찰에서 “4호기(사고 크레인)가 콘크리트 작업을 위한 장비를 8층에서 5층으로 이상 없이 내려놓았으며 바로 인근의 작업자에게 건축자재를 옮겨달라는 요청을 받아 자재를 싣지 않은 상태로 회전을 하던 중이었다”며 “30도 정도 돌더니 갑자기 타워크레인의 T자 형태 가로축과 세로축을 연결하는 부위에서 탕 소리가 나면서 타워크레인 가로축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는 애초 경찰이 원인으로 지목했던 타워크레인 간의 충돌이나 와이어의 엉킴이 아니라 장비 자체의 결함으로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OECD 산재 사망률 최고이밖에도 복수의 현장 관계자들은 “사고가 난 크레인이 지난해 8월부터 잦은 고장으로 작업이 중단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타워크레인 작업 중단은 공사 기간을 맞추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에 대해서도 입을 모은다. 그만큼 사고 기종에 문제가 있었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10월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에 사고가 난 타워크레인은 지난해 창원 GS 건설현장에서 같은 종류의 사고가 났던 기종과 동일하다”며 “정비 부실로 인한 피로 파괴가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타워크레인 사고는 곧 대형사고를 의미한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07년 15건, 2008년 10건, 2009년 16건으로 꾸준히 사고가 발생해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사망자 수가 8명, 10명, 17명으로 사건 수와 관계없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박종국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연맹 노동안전국장은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한 대에 의존해 일하는 인력이 늘면서 그만큼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이라며 “최근 경기 침체로 공사현장 자체가 줄었으면 사고 건수도 줄어야 하는데 타워크레인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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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은 이로 인한 사망자
수가 8명, 10명, 17명으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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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에서 부상이나 사망을 당한 산업재해의 전체 규모는 2007년 1만9050명에서 2008년 2만835명, 2009년 2만998명으로 증가세다. 2003년 2만2천여 명에서 줄기 시작해 2005년 1만5천여 명까지 줄었다가 이번 정부 들어 다시 급증했다.
산재는 전체 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증가세다. 최근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재해자 수는 2007년 9만147명, 2008년 9만5806명, 2009년 9만7821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 7월까지만 5만7천 명으로, 20년 전의 10만7천여 명 수준에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자 비율은 단연 세계 1위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OECD 국가의 산업재해 비교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10만 명당 사망률이 무려 20.99명으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다음으로 높은 멕시코(10명)의 2배가 넘고 미국(4.01명)에 비해서는 5배가 넘는 사망률이다.
최저가 입찰 경쟁으로 안전관리 여력 없어이 수치가 전부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범관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고용노동부에서 사업장의 산재 은폐를 적발한 건수가 9013건에 달했다. 특히 올해 6월 말까지 적발된 건수는 1767건으로, 이미 2009년의 1591건을 넘어섰다.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은폐하는 횟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50인 이하 사업장의 은폐는 5년 동안 적발된 사례 가운데 79%인 7121건에 달했다. 이 의원은 50인 이하의 영세사업장에서 산재 은폐가 많이 발생하는 원인과 관련해 건설현장을 지목했다. 대형 건설사들은 산재 사망사고로 처벌을 받거나 재해율이 높아지면 입찰자격심사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에 하청업체에 책임을 전가하거나 더 조직적으로 산재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산재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황을 이유로 한 안전관리 비용 축소, 관리자에 대한 경미한 처벌, 감독기관의 관리 소홀 등이 꼽힌다. 사실 산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주제다.
최근 건설현장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과거 대기업들이 불황을 이유로 산재 위험이 높은 부서를 아웃소싱하게 됐고, 그 부작용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조합연맹 박종국 노동안전국장은 “IMF 직후인 1990년대 후반 건설현장에서는 여러 부문을 쪼개서 아웃소싱을 시작했다”며 “2000년대로 접어들어 다시 건설 붐이 일면서 상황이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경기와는 상관없이 부문별로 최저가 입찰 경쟁이 붙으면서 하청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보수관리 비용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타워크레인·굴착기 등 대형 기계의 정기적인 장비 점검이나 부품 교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어 늘 사고 위험을 안고 있다. 박 국장은 “아웃소싱한 부문을 대기업이 다시 환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안전관리 영역에서는 원청업체가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요인으로는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든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사망 등 중대 재해로 처벌받은 사업주 2368명 중 구속된 사람은 단 1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유예 또는 무혐의 처분됐다. 고용노동부는 2007년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12만8611건 가운데 96.2%에 대해 시정조치만을 내렸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은 사망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기업살인법’ 도입 목소리해외 사례를 들어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캐나다 등지에서 시행하는 ‘기업살인법’ 도입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안전조치가 미비한 사업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처벌토록 하는 내용이다. 또한 산재를 일으킨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사람에 대해 전과를 보관하는 것처럼 기업의 산재 발생 전과를 보관해 개인과 같이 가중처벌하자는 내용이다.
또 산재 문제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감독기관의 관리 소홀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통계치를 잡을 수는 없지만, 사례를 통해서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10월6일의 타워크레인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사고가 난 건설현장은 2009년 10월 타워크레인에 대한 집중 점검이 있었던 곳이다. 당시 노동부의 점검을 목격했던 한 현장 관계자는 “점검을 나왔다고 해서 가보니 몇 개월째 고장이 잦았던 타워크레인이 아닌 2009년 최신 기종에 올라 점검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홍희덕 의원의 자료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당시 노동부는 성능 유지, 작업관리 상태 등 21개 조항에 대해 안전점검을 시행한 뒤 2건의 시정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이번에 사고가 난 타워크레인은 시정 지시 대상이 아니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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