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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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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아닌 노동자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산재보험 적용 안 되는 대리기사…

관리·감독 기관 명시한 법안 통과되면 처우 개선 기대
등록 2010-11-18 11:19 수정 2020-05-03 04:26

“차주가 내려 목을 세 번 흔들고는 머리채를 잡고 차도와 인도로 오가며 개 끌고 다니듯 끌고 다니며 때리고 찼습니다. 6~7분 정도 지났을 무렵 머리카락을 잡힌 채 질질 끌려가며 간신히 신고를 했습니다. 맞고 차이고 질질 끌려다니기를 반복하니 옆의 일행이 ‘그만해라. 이제 아주머니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맞아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중략) 머리채를 놓으니 경비실로 도망을 갔습니다. 112 신고를 했습니다. 끌려다니다 맞고 끌려다니다 맞고 그 시간은 하루보다 더 긴 시간이었습니다.”

취객을 상대로 일하는 대리운전기사는 위험에 처하기 쉽지만,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번화가에서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고 있다.한겨레21 정용일

취객을 상대로 일하는 대리운전기사는 위험에 처하기 쉽지만,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번화가에서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고 있다.한겨레21 정용일

지난 4월 대구에서 손님에게 폭행을 당한 여성 대리기사 강아무개씨가 경찰에 제출한 자술서의 일부다. 이처럼 대리기사는 항상 사고에 노출돼 있다. 하루 평균 70만 명(2008년 기준)이 대리운전을 이용하면서 자주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항상 사고에 노출되는 불안한 신분

대리기사의 전국 단위 노조를 준비 중인 전국대리기사연대회의 최영환 의장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 대리기사와 관련된 사고가 발생되고 있다”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밑바닥 경기가 최악이다 보니 이쪽(대리기사)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기준으로 대리운전 시장은 연간 3조원대에 이르며, 대리기사 수도 12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현재는 대리운전 업체가 관할 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운영하는 업체도 있다. 최영환 의장은 “보험 가입자로 분류되는 12만 명에 더해, 무보험으로 일하는 대리기사와 업소·식당에 속해 일하는 대리기사를 포함하면 15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지만 정작 사고가 발생하면 산재보험을 보장받지 못한다. 현재 대리기사는 화물·덤프트럭 운전기사, 간병인, 퀵서비스 노동자, 방송작가 등과 함께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특수고용직은 외형적으로는 고용된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신분은 개별 사업자라서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된다.

한편 국회에는 2008년 당시 국회의원인 송영길 인천시장이 발의한 ‘대리운전업 및 운전자관리에 관한 법률안’과 2009년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과 정의화 의원이 각각 발의한 ‘대리운전업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률안들은 현재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대리운전업을 경찰청이나 광역시도에 신고하도록 해 관리·감독할 장치를 갖추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최영환 의장은 “법이 통과되더라도 대리기사들의 산재보험이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관리·감독 기관이 생겨 산재보험 등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되니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은 맞다”며 “조속히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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