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kg짜리 대형 맨홀의 뚜껑은 열려 있었다. 그 주위로 빨간색 안전봉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 공사 트럭이 서 있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 한 쇼핑센터 인근 도로 한쪽. 철제 사다리가 맨홀 아래로 놓여 있다. 가끔 봤던 작업 현장, 그러나 가본 적 없던 3m 땅 밑으로 내려갔다. 10월20일 수요일 오후 2시10분.
컴컴했다. 서늘했다.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네요.” 첫 느낌은 그랬다. 맨홀 아래 지하, 가운데로는 계곡에서 내려온 깨끗한 물이 3m 폭의 우수관로를 따라 흐른다. 도로 폭에 따라 우수관로는 2개가 되기도 하고 4개가 되기도 한다. 이곳은 녹번천 위로 도로를 놓은 복개천이다. 우수관로가 지나는 양쪽 옆 시멘트 차단막 너머로 오수가 흐른다. 너비와 높이 각 60cm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오수차집관거’, 시궁창이다.
“밝아서 다 보이면 더러워서 못해”똥과 오줌이 정화조로 들어가 ‘건더기’만 남기고 이곳으로 빠져나온다. 샤워하고 설거지하고 생선을 씻은 온갖 폐수가 골목과 도로에서 흘러든 빗물과 함께 섞여든다. 이렇게 3.2km 복개구간을 흘러 불광천을 만난다. 하천을 덮어 도로를 깔지 않은 자연하천은 주로 자전거도로 밑에 이런 오수차집관거가 묻혀 있다. 1980년대 한강개발 사업을 하면서 설치하기 시작해, 순차적으로 설치하면서 서울에는 거의 100% 설치됐다고 난지물재생센터 박용범 시설관리팀장은 설명했다. 우수(빗물)는 바로 한강으로, 오수는 서울의 경우 4개 물재생센터로 모여 정화된다. 박 팀장은 “이렇게 오수를 걸러주니까 악취 나던 서울 시내 하천에 고기가 살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내려간 작업자를 찾아 우수관로를 따라 걸었다. 조정갑 반장이 손전등을 들고 안내했다. 희미했다. 취재 메모를 위해 가는 볼펜 대신 굵은 사인펜을 준비하길 잘했다 싶었다. 쏴아아~.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덜커덩, 덜커덩. 가끔 맨홀 위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땅 밑에 있음을 깨닫게 했다. 우수관로 바닥은 떠내려온 자갈과 돌덩어리들로 울퉁불퉁했다. 머리 위로는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다. 물이 흐르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우수관로 중간중간 너울을 만들어, 약 50cm 높이를 딛고 올라서기도 했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 100m 넘게 걸었을까. 이렇게 어둠 속을 걷다가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땅 아래에서는 그곳의 언어가 위치를 알려준다. ‘녹번L1240.’ 녹번천 상류의 하천을 덮은 복개 시작 지점부터 왼쪽 아래로 1240m 지점이라는 뜻이다. 이런 표시는 통상 20m마다 붙어 있다. 조 반장은 “하도 다녀서 빠꼼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니, 영화에서처럼 미로 같은 하수구를 헤맬 일은 없다. 앞서던 조 반장의 말에 따라, 허리를 굽히고 옆 우수관로로 건너갔다. 멀리서 번쩍번쩍 빨간불이 깜박대는 안전조끼를 입은 작업자들이 걸어 내려왔다. 비추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그들은 자체 발광 조끼를 입는다.
그 습하고 깜깜한 곳에 그들이 내려간 이유는 노동을 위해서, 돈벌이를 위해서다. 작업은 오수차집관거에 쌓인 모래를 제거하는 일. 이 관로에 떠내려온 모래가 쌓이면 맑은 우수관로 쪽으로 오수가 넘치게 된다. 서울의 권역별 4개 물재생센터로 가서 정화돼야 할 물이 우수관로를 따라 한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오수차집관거를 따라가며 막대나 발로 모래가 쌓인 지역을 점검한다. 작업자들은 ‘가래질’을 했다. 삽으로 한 사람은 퍼올리고 한 사람은 삽에 묶은 줄을 끌어당긴다. 이렇게 퍼올린 모래는 우수관로로 넘긴다. 철벅~, 철벅~. 퍼낸 모래는 하루 뒤 마대자루에 담아 밖으로 옮긴다. 어둠 속에서 난지물재생센터의 한 직원이 말했다. “차라리 어두운 게 나아요. 밝아서 다 보이면 더러워서 일 못해요.” 작업자들이 잠시 삽질을 멈췄다.
삽질의 연속“힘들지 않으세요?”
“삽질하는 게 힘들지요. 가슴까지 땀에 젖으니까. 삽질을 하면 허리가 아프고 당기면 팔이 아프고.”
“힘들다 생각하면 진짜 못해요. 마음 편하게 생각해야지.”
“마음의 위안을 삼는 거지요.”
“손자가 뛰어다닌다”는 이한옥(62)씨는 김재도(60)씨와 같이 작업한다. 바닷가 어부처럼 가슴까지 와닿는 ‘가슴장화’에 안전모를 썼다. 팔뚝까지 오는 고무장갑도 끼었다. 삽에 묶인 끈을 당기는 사람은 높이 당겨줘야 한다. 그래야 삽질하는 사람이 덜 힘들다. 삽질하는 사람은 바닥부터 긁어 들어가야 한다.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삽질은 번갈아 한다. 교대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허리가 아프면 역할을 바꾼다. 굳이 따지자면, 30~40분마다 바꾼다. 세어봤다. 54번의 삽질을 하고 허리를 한 번 폈다.
“‘왜 하필 이렇게 컴컴하고 더러운 곳에서 일하고 있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으세요?”
“바깥에서 일하면 먼지 나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거리나 되잖아요.”
“하루 종일 놀고 화투나 치는 사람도 있는데…. 집에 들어가면 떳떳하잖아요. 놀고 먹는 것하고 일하는 것 차이지.”
“위험하지는 않나요?”
“엎어지면 돌멩이니까 조심해야지요.”
“막걸리 한잔하시고는 못하겠네요?”
“아이고, 술 한잔도 못해요. 미끄러워서 엎어지고 큰일 나니까.”
인터뷰가 길어지자 이씨가 말했다. “자, 우리 몫을 해야 돼요.” 이들은 “노가다로 단련됐다”는 몸으로 3년째 해온 일을 다시 시작했다. 가끔 저 멀리서 다른 작업자의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허리야~.” 잠깐 쉬고 있던 김종화(61)씨에게도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힘들지요. 손자 자식들 살리고, 나이 먹고 할 일 없으니까 하는 거지요. 할 버릇 하다 보니 면역이 됐어요.” 환갑을 훌쩍 넘긴 유원수(66)씨는 혼자 작업했다. 어둠 속 손전등에 유씨의 얼굴이 비쳤다. 땀에 흠뻑 젖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어느 일이든 안 힘든 게 어디 있어요. 사람 하는 일이 다 힘들지.”
“여기 어두운 데서 일하는 것 누가 알까요?”
“일반 시민들은 모르겠지요. 직업이 천태만상이잖아요. 운명이다, 천직이다 생각해야지요. 이렇게 하니까 물도 맑아지잖아요.”
이들은 보통 점심을 먹은 뒤 오후 2시께 지하로 내려와 오후 5시께까지 일한다. 기간제 노동자인 이들이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은 한달에 140만~150만원. 박 팀장은 “4대 보험 별도에 주 5일”이라고 알려줬다. 겨울에는 비가 적게 오다 보니 모래가 그다지 쌓이지 않아, 3~11월 9개월만 기간제로 일한다. 우기에는 통상 2~3일에 한 번씩 작업을 한다. 올해는 비가 잦아서 그만큼 모래 제거 작업도 많았다. 지하에서 작업하지 않는 날은 하천변에서 혹시 오수가 바로 흘러들지는 않는지 순찰한다. 이날 작업 현장은 그나마 천정 높이가 2.5m 남짓이어서 다행이다. 구간에 따라서는 머리를 숙이고 작업을 해야 한다. 오수관로를 따라 작은 기계가 불도저처럼 밀어가면서 모래를 밀어낼 수는 없을까? 권순회 차집시설물 담당이 말했다. “경제성이 있으면 벌써 누가 만들었겠지요. 그보다는 인력이 싸니까….”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기자의 제안에 박 팀장이 말렸다. “아이고, 하지 마세요. 똥물이 다 튀기는데, 씻을 데도 없고.” 오수차집관거에 발을 담갔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장화에 찰랑거릴 만큼 올라왔다. 혹시 저 더러운 물이 장화로 흘러들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오수의 깊이는 낮을 때는 2~3cm, 높을 때는 15cm 정도 된다. 지점에 따라서는 30cm가 넘는 곳도 있다. 오수의 물 높이는 하루에도 시간마다 달라진다. 물을 많이 쓰는 아침저녁이 다르다. “세탁기를 쓰는 10~11시께가 가장 높다”고 조 반장이 알려줬다. 먼저 삽에 묶인 줄을 당겼다. 삽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팔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젖은 모래가 무거웠다. 가벼운 모래는 떠내려가고 무거운 자갈과 돌이 많이 포함된 탓이다. “높이 들어줘야 해요. 그래야 푸는 사람이 힘이 덜 들지. 그렇지.” “잘하네. 일할 데 없으면 와요. 젊은 사람 하나 있으면 좋지.”
스무 삽 정도 당겼을까, 팔이 아팠다. 이번엔 삽을 떴다. “바닥을 긁어줘야 돼요. 그래야 모래가 잘 올라오지.” 앞에서 줄을 당기는데 삽질로 제대로 모래를 푸지 못하다 보니, 거의 헛삽질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더러 삽질을 해봤건만, 비좁은 곳에서 오랜만에 잡은 삽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래가지고는 일당 못 받겠는데.” 금세 목장갑이 물에 젖었다. 흠칫했다. 으~. “고무장갑 안 끼면 피부병이 생기는데”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열 삽 남짓, “아이고, 힘드네요”라며 삽을 넘겨줬다. 이 때문에 환경미화원을 뽑듯 20kg 자루를 들고 옮기는 체력시험을 거쳐 일꾼을 뽑는다.
“생각보다 덜하네”라고 느꼈던 냄새는 구간구간 달랐다. 더러 지름 1m 가까운 하수로에서 오수가 쏟아져나왔다. 그 바로 옆에서 그들은 작업을 계속했다. 조금 지나자 지름 30cm 크기의 또 다른 하수로에서 오수가 쫄쫄 흘러든다. 악취는 생선 냄새처럼 비릿하다가, 튀김 냄새인지 무엇이 썩어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냄새까지 뒤섞였다. 조 반장이 말했다. “주택가는 상대적으로 깨끗해요. 시내 식당가 쪽은 악취가 훨씬 지독해요.” 병원들이 있는 쪽은 냄새가 더 지독하다. “별걸 다 씻으니까.” 가뜩이나 고약한 냄새는 삽으로 바닥을 푸면서 뒤집자 더 심해진다. 작업자들은 “냄새가 배어서 모른다”면서도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안 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일할 수도 없었다. 삽질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 마스크까지 끼기는 힘들다.
예상만큼 독하지 않던 냄새는 갈수록 자꾸 코를 찔렀다. 왜 화장실에서처럼 냄새를 잊어버리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탁한 공기가 자꾸만 폐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어둠 속 먼지는 보이지 않았다. 권순회 담당은 “손전등 비춰보면 먼지가 자욱해요. 도로 위로 차가 지나가고 아래서는 바닥에서 마른 것들이 위로 뜨니까.”
이곳에 가스가 가득 차지는 않을까? 전날 친구와 통화하다가 이날 취재 일정을 얘기했더니, “중독 조심해라. 우리나라가 워낙 엉망이라서”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메탄가스에 취해 숨진 노동자들도 생각났다. “여기서 담배에 불 붙여도 되나요?” 안내하던 직원들은 영화에서처럼 폭발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좌우로 뻥 뚫린 곳에서 가스가 차지는 않을 듯싶었지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가끔 가스 농도를 조사한단다. 가스 폭발이 떠오르더니, 다시 또 다른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시체가 발견된 적은 없나요?” 권순회 담당이 대답했다. “누가 80kg이나 되는 맨홀 뚜껑을 열고, 차도 다니면서 다 보는데 버리겠어요? 강가가 더 쉽지. 죽은 고양이나 쥐는 많아요.” 시끄러워 가버렸는지, 쥐는 보이지 않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우수관로에는 더러 게가 살고 뱀도 산다.
한 직원이 가래를 뱉었다. 잠시 뒤 그 직원이 오줌을 눴다. 다시 오수차집관거 쪽을 택했다. 나는 눌까 말까 망설이다 누지 않았다. 그리 마렵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더러운 시궁창을 찾았어도, 오수에 몇 방울 보태고 싶지 않았다.
시궁창에서 일하면서 신경 써야 할 것은 더러움이 아니다. 박 팀장은 “일기예보를 제일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상류에서 비가 쏟아지면, 갑자기 물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계곡수라 언제 불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추석 때 서울 시내처럼, 갑자기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면 키 높이 넘게 물이 넘쳐 흐른다.
한때는 고기 잡는 개천이던 ‘오지’오후 4시10분께. 수시로 작업 현장을 옮기는 이들을 따라 은평구 녹번동에서 불광동 주택가까지 지하를 1.2km 가까이 돌다가 빠져나왔다. “제가 여기 2시간 들렀다고 뭘 알겠습니까. 그래도…”라고 자백하고 뚜껑이 열린 맨홀로 향했다. “수고하세요~.”
센터 직원들이 취재를 위해 사준 어두운 남색 태화 장화를 벗었다. 양말이 땀에 젖었다. 그렇게 ‘쇼’는 2시간 만에 끝났다. 공사 현장 옆을 지나던 여고생에게 물었다. “저 아래서 사람들이 모래 퍼내는 것 알고 계세요?” 수줍은 여고생은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중년의 아주머니에게도 물었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박 팀장은 “공무원들도 담당자만 안다”고 말했다. 잠시 뒤 ‘왜 남의 가게 앞에 차를 세워놓고 공사를 하느냐’고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불만을 터뜨렸다. 공사 현장 인근에 사는 류영목(69)씨는 아스팔트 도로 아래가 개천이던 시절을 기억했다. “고기 잡고 가재 잡고 그랬지요. 저기 조그마한 다리가 있었는데, 애들이 놀던 곳이지요.”
우리는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이씨와 두 김씨, 유씨는 개천이 있던 저 어딘가 도로 밑 시궁창에서 다시 작업을 계속했다. 그들을 태우고 온 트럭도 뒤에 남았다. 진짜 ‘천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동행한 사진기자는 자꾸 눈이 따끔거린다고 했다. 속이 자꾸만 니글거렸다. 머리도 계속 띵했다. 좀체 낮에는 가지 않는 화장실에 가 대변을 봤다. 푸드득. 하~. 마침 점심 약속 때 먹은 해산물 크림 스파게티. 다시는 가지 않을 발밑 땅속, 그 우리 곁의 오지로 흘러가겠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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