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1일 밤 9시30분, 검은색 SM5 승용차는 서울 마포대교를 달리고 있었다. 옆에 앉은 취객이 창문을 내렸다. 찬바람에 ‘벌써 겨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 ‘우에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는 창으로 머리를 내민 채 토하고 있었다. 역한 냄새가 금세 차 안을 어지럽혔다. 시속 80km로 달리는 자동차를 편도 5차선인 마포대교에서 세울 곳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해 돈을 받은 뒤 다른 손님에게로 뛰어가면 그만이었다. 나머지 창을 열어 냄새가 잦아들기만 바랄 뿐이었다.
‘5160번 기사.’ 지난 11월10일부터 2박3일간 나를 대표하는 인식표였다. 누구를 만나도 이름을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손님에게는 ‘대리기사입니다’, 대리운전을 알선해주는 콜센터에는 ‘5160번 대리기사입니다’라는 말만 하면 됐다. 동료 대리기사를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프로그램을 쓰느냐’가 인사를 대신했다. 대리기사들은 ‘로지’ ‘아이콘’ ‘콜마너’ ‘콜마트’ ‘365’ 등 대리기사 전용 휴대전화 소프트웨어를 쓴다. 소프트웨어당 월 1만5천원의 사용료를 내는데, 지역마다 ‘콜’이 잘 뜨는 소프트웨어가 달라 2~3가지를 함께 쓰는 대리기사도 많다. 휴대전화에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은 뒤 이를 통해 전달되는 대리운전 ‘콜’을 잡는 것이다. 하나의 소프트웨어에서도 어느 대리운전 업체에 소속되느냐에 따라 다시 그룹이 나뉘었다. 나는 대리기사들 사이에서 ‘로지 프로그램을 쓰는 C그룹 기사님’으로 통했다.
한 업체 소속 대리기사만 4천여 명인식표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주민등록등본, 사진 1장,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됐다. 그리고 몇 시간의 교육을 받고 나면 바로 대리기사가 됐다. 11월10일 찾아간 서울 논현동의 대리운전 업체는 3시간 동안 5명에게 교육을 했다. 40대 2명과 30대 3명이었다. 이들은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이곳에 오거나 본업 외에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택했다. 양아무개(31)씨는 “혼자 주식을 하다 사채까지 쓰고 신용불량 위기 직전 상황이다”라며 “취업은 어렵고 조금이라도 벌려고 대리운전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40대 남성은 “대리기사를 해도 실업급여를 받는 데는 별 문제가 없죠?”라고 물었다. 회사에서 내몰리거나 스스로 그만둔 지 채 6개월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일이 없거나 있어도 가장 쉽게 돈을 벌 기회가 되는 것이 대리운전인 셈이다. 강사도 “많은 때는 30~40명씩 교육했지만 요즘은 줄었다”며 “어제, 그제는 10명씩 가르쳤다”고 말했다. 또 “겨울에 대리운전을 하려고 찾아오는 이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 업체에 소속된 대리기사만 4천여 명에 달했다.
교육 내용은 ‘술 취한 고객을 이기려 들지 말라’ 등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조언을 비롯해 보험 보장 내용, 대리운전 소프트웨어 조작법 등이었다. 또 돈이 오고 가는 흐름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회사는 대리운전을 할 때마다 대리운전비 가운데 수수료 20%씩을 떼고, 매일 보험료 2천원과 소프트웨어 사용료 500원을 가져간다. 돈은 미리 입금된 계좌에서 빠져나가는데, 계좌에 잔액이 없으면 콜을 잡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서울~인천 간 3만원짜리 콜이 오면 계좌에 수수료로 뗄 6천원 이상이 들어 있어야 콜을 잡을 수 있다. 계좌에는 최소 3만원부터 입금이 가능하다.
교육을 마치고 보험 가입이 끝나면 바로 다음날 새벽 0시부터 대리운전을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보험 효력이 발효되기 때문이다. 현장은‘0.001초’의 싸움장이다. 2~3인치 휴대전화 화면에 뜬 콜을 누가 빨리 잡는지가 돈과 직결된다. 화면에는 가격, 출발지, 목적지 등이 나온다. 이런 내용이 한 화면에 다 담기기 어려워 최종 목적지가 일부만 뜨는 경우도 있다. 막상 콜을 잡았는데 목적지를 확인해보니 너무 외진 곳이어서 돌아올 일이 막막하거나 운행시간이 지나치게 길면 낭패다. 이때 콜을 취소하면 수수료가 발생한다. 10초 안에 취소하면 500원이 벌금으로 차감되고, 10초 이후에는 강제 배차가 된다. 특히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콜을 잡기 위해서는 콜 선택 여부를 결정하는 순발력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초보자에게는 멀리 가고 돈도 적게 받으면서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기 힘든 이른바 ‘똥콜’만이 돌아왔다. 한창 바쁜 시간은 밤 12시부터 새벽 2시 사이. 이때 좋은 콜을 잡아야 수익이 늘어난다.
그들의 눈에만 보이는 경쟁자들휴대전화가 다양해진 만큼 콜을 잡는 방법도 다양했다. 가장 빨리 잡는 것은 이른바 ‘지지는’ 방식이었다. 삼성전자 옴니아폰의 경우 콜이 뜨는 난에 커서를 움직여놓고 옆의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콜이 뜨자마자 바로 잡을 수 있다. 이때 ‘따따따’ 소리가 나 ‘지진다’는 표현을 쓴다. 아이폰이나 갤럭시S 등 최신 스마트폰은 화면에 손을 대어 잡는 방식이고, 피처폰은 휴대전화 번호판에서 해당 번호를 누르는 방식이어서 버튼을 누른 채 계속 ‘지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느렸다.
첫 대리운전은 11월11일 새벽 12시30분에 시작됐다. 그 시각 서울 여의도에서는 수시로 콜이 들어왔다. 이때는 초보라도 골라서 잡을 수 있었다. ‘3만5천원에 인천 영종도행’을 비롯해 ‘1만원에 목동행’ 등 자주 콜이 떴다. 생소한 지역을 피해 평소 잘 아는 곳인 미아리행을 택했다.
전화 통화 뒤 5분 만에 만난 여성의 차량에 올라탔다. 요란한 ‘갱스터 랩’이 흘러나왔다. 운전 내내 들어야만 했다.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총성에 놀라면서. 내비게이션이 꺼져 있어 켜겠다고 하니 직접 안내하겠다고 했다. 차를 출발시킨 뒤 지시하는 대로 원효대교~강변북로~내부순환로~월곡IC를 거쳐 미아리 주택가에 도착했다. 뒤에서 “여기서 세워주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뻣뻣해진 목이 풀렸다. 남의 차를 운전하는 것이, 그리고 사고를 내면 내가 보상해야 하고 교통위반 등 범칙금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이 30분 동안의 운전을 긴장시켰다. 내려서 1만원짜리 한 장과 1천원짜리 다섯 장을 받았다. 절로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어 유흥주점이 많은 미아삼거리역으로 이동했다. 대리기사의 눈에는 경쟁자들이 쉽게 보였다. 이 시각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대리기사였다. 이들은 길거리에 앉아 있거나 건물 입구, 지하도 등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또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혹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휴대전화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여성도 눈에 띄었다. 미아삼거리역 출구에서 새벽 1시30분께 만난 조아무개(56)씨는 “여기에만도 200명의 대리기사가 있을 것”이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건너편 은행의 ATM 코너가 24시간 운영됐는데, 대리기사들이 거기에서 쉬고 담배를 피우니까 밤에는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5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과거에는 새벽 2시까지만 하면 10만원을 채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워낙 대리기사도 많아지고 대리운전 가격도 많이 싸져 새벽 5시까지 해도 그만한 벌이가 쉽지 않다”고 했다. 마지막엔 “아직 젊은 것 같은데 이거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라는 충고가 따라붙었다.
조씨 말대로 눈을 비벼가며 번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첫날은 오히려 공쳤다. 1만5천원을 번 뒤로는 다른 콜을 잡을 수 없었다. 대신 추위를 이기느라 마신 커피(1500원)와 목말라 마신 물(700원)에, 좀더 콜이 많이 뜰 법한 강남교보타워 쪽으로 가면서 탄 셔틀버스 요금(3천원)까지 치르느라 남는 게 없었다.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수수료 20%(3천원)와 보험료·소프트웨어 사용료(2500원)를 빼면 수중에는 4300원이 남았다. 집에 돌아갈 차비를 생각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전날 교육을 한 강사는 “한 달 내내 일해서 상위 10%가 300만원 이상을 벌고, 50%가량이 200만~300만원을 번다”며 “나머지는 100만원 조금 넘게 번다”고 말했다. 그것도 수수료나 매일 떼는 돈을 비롯해 이동할 때 드는 택시비, 셔틀버스비를 제하지 않은 수치다. 2008년 대구대리운전노조에서 180명의 대리기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 수입은 월 121만8182원이었다. 이들 대부분(68%)은 대리기사를 전업으로 하고 있었다.
도심으로 날라주는 ‘셔틀버스’그런데도 대리기사는 어딜 가나 찾을 수 있었다. 이튿날 밤 3만원을 받고 서울 마포 홀리데이인호텔에서 부천 송내역을 거쳐 인천 당하동에 갔다. 아파트만 달랑 있는 이곳에도 그들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1~2km 떨어진 불 꺼진 상가 쪽으로 걸어가니 운행 시간이 끝난 버스의 승강장에서도, 상가 건물 입구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서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정보를 구하는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줬다. 김아무개씨는 “이쪽에서 시골로 가는 콜 가운데 2만원 이상이면 잡아라”며 “돌아오는 법을 몰라 안 잡는 경우가 있는데, 픽업 서비스를 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나오면 된다”고 말했다. ‘픽업’이라고 적힌 명함도 함께 줬다.
대리기사들은 콜이 잘 잡히지 않는 곳에서는 도심 쪽으로 이동한다. 택시비보다도 싼 대리운전비를 받고 다시 택시를 탈 수는 없는 신세다. 대신 곳곳에서 이들을 도심까지 태워다주는 ‘셔틀버스’가 있다. 11월11일에는 3천원에 미아삼거리역에서 교보문고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했고, 11월12일에는 2천원에 인천 당하동에서 계양구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형태도 다양했다. 서울 도심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는 봉고차 형태의 12인승 승합차와 25인승 버스 등이 주를 이뤘다. 또 인천 시내에서는 7인승 승합차나 마티즈 등 소형 승형차도 그 역할을 했다.
대신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미아삼거리역에서 탄 셔틀버스는 교통신호와는 무관하게 쌩쌩 달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심에 도착해 콜을 더 잡으려는 대리기사들과 빨리 태워다주고 또 손님을 태우려는 셔틀버스 운전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도심 속 신호 위반이나 과속은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특히 셔틀버스에는 대리기사들이 빽빽히 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한번 사고가 나면 많은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 2007년 울산에서 대리기사들을 태운 25인승 미니버스가 신호등을 정면으로 들이박아 16명이 다친 사고도 있었다.
게다가 셔틀버스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구에서 대리운전을 한 김진호(48)씨는 “지난해 11월 경북 경산시 하양읍으로 나갔다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나오는데 교통사고가 났다”며 “48살 이상만 운전할 수 있도록 돼 있는 보험인데, 41살 남성이 운전한 탓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무보험 차량에 사고를 당하면 보상을 해주는 정부의 자동차손해배상보장사업으로 일부 보상을 받았지만, 치료비에도 못 미쳤다”며 “무릎 인대가 다치는 등 장애를 입었지만 향후 생계 보상비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고객에게 밉보이면 걸리는 ‘록’대리운전이 운전만 잘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서비스업인데다 취객을 상대하는 특성으로 모진 사람들에게 치일 수밖에 없다. 불편한 상황을 많이 겪지만 화를 낼 수도 없다. 11월11일 1만원에 서울 마포역에서 목동까지 대리운전을 요청한 손님의 경우 출발지인 건물의 지하 3층에 도착해 전화를 거니 “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며~”라는 안내 멘트만 나왔다. 지하층을 돌아보고 수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다음 콜을 받기 위해서 운행을 마친 것으로 설정하고 종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콜을 잡으면 운행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는 한 10분 동안 다른 콜이 뜨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벌지도 못한 대리운전비 1만원에 해당하는 수수료 2천원만 허비한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고객에게 제대로 항의할 수 없다. 고객이 콜센터에 항의하면 ‘록’(lock)이 걸리기 때문이다. 록이 걸린 대리기사는 콜센터에서 휴대전화로 전송되는 콜 정보를 받을 수 없다. 인천 당하동에서 만난 최아무개씨는 “지난해 국내 최대의 대리운전업체에서 일을 했는데 ‘스틱운전을 잘 못한다’는 고객 항의에 록이 걸려 아직도 안 풀린 상태”라며 “할 수 없이 다른 업체의 대리기사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만취한 고객을 만나면 홍역을 치러야 한다. 마포대교에서 구토를 한 취객은 출발 때부터 목적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이 목적지라면서 내비게이션으로는 6호선 상수역을 찍었다. 목적지를 재차 물으니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가면 된다”면서도 “내비게이션대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애를 먹였다. 애초 콜대로 구로디지털단지역에 도착했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한 대리기사에게 들은 대로 창문을 모두 연 뒤 흔들어 깨워서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인천 당하동에서 만난 한 대리기사는 “서울 강남역에서 3만5천원에 여기까지 왔는데 잠이 든 뒤 일어나지 않는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는 결국 돈을 포기했다.
먹고 살 게 없어 잡는 핸들
때론 폭행까지 당한다. 지난 11월1일 대전 유성구에서 대리기사 박아무개(46)씨는 대리운전비를 주지 않는 승객에게 항의를 했다가 저수지에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또 지난 7월에는 충남 논산시에서 손님이 낫으로 대리운전 기사를 위협해 대리운전비 5만원을 내지 않기도 했다.
대리기사 대부분이 형편이 넉넉지 않다. 지난 5월26일 숨진 이동국(52)씨도 ‘기러기 아빠’였다. 중국에서 가구공장을 운영하다 2005년 부도가 난 그는 현지에 가족을 남긴 채 홀로 귀국해 대리운전으로 돈을 벌어 가족에게 송금하며 지냈다. 그렇지만 죽음은 일순간이었다. 손님이 “왜 운전을 그렇게 하냐”는 타박과 함께 뒤통수를 여러 번 친 게 원인이었다. 차를 세우고 시비가 붙었는데, 손님이 갑자기 차를 타고 후진을 해 이씨를 치었다. 그것도 모자라 쓰러진 이씨를 다시 한번 치고 달아났다. 전국 15만 대리기사들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밤마다 외롭게 핸들을 잡고 있다.
11월11일 새벽 3시 미아삼거리역에서 강남 교보타워로 향하는 셔틀버스에서 들은 한 대리기사의 통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집에 가스랑 쌀이 다 떨어졌어. 내가 대리 안 뛰면 먹고 살 게 없어.”
글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