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는 4100원짜리 카페라테가 팔리고, 역 앞 별다방에서는 3천원에 하룻밤 잠자리를 판다. 밤 9시가 넘으면 만화방에는 신간만화를 원하는 사람보다 해진 소파에 눈치껏 낡은 담요를 까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농촌·중소도시에서 컨테이너가 새롭게 등장한 집없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주거 형태라면, 도심 한가운데에서는 다방·PC방·만화방 등이 그 자리를 맡고 있다. 사람이 살 수는 있지만 살지 않아야 마땅한 곳은 종류와 수를 늘려만 간다.
다방 3천원, 만화방 5천원, PC방 6천~7천원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사단법인 한국도시연구소에 의뢰해 결과를 낸 ‘비주택 거주민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빈곤계층의 주거 형태에 대한 종합보고서다. 뜻하지 않은 가을 추위와 곧 닥칠 겨울은 실태조사 속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 안에서 빈곤 주거의 형태는 과거 비닐하우스, 쪽방촌 등에서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졌다. 그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지는 듯하다. 서울(서울역·영등포역), 대전, 대구 등 세 지역에서 ‘비주택’이라는 낯선 용어로 정의되는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은 3289명이다. 노숙인을 제외한 수치다. 이들을 보고서는 ‘비주택 거주민’이라고 부른다.
비주택 거주민 실태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비숙박 다중이용업소’로 불리는 다방, PC방, 만화방, 찜질방, 사우나 등의 주거 실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삶은 제각각이지만 목적은 하나다. 싼 곳을 찾아 사는 것이다.
가장 저렴한 곳은 다방이다. 3천원이면 커피를 마시고 소파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영등포역 인근에만 두 곳이 있다. 조사보고서는 “당일(9월께) 영등포 지역 다방 두 곳에서 숙박한 인원은 34명이나 겨울이 오면 수가 더 늘어난다”고 밝힌다. 다방은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남은 곳은 숙박시설로 기능할 뿐이다. 대개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만화방에서도 산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방 다음으로 싸기 때문이다. 영등포역·서울역 등 조사 지역에서 발견된 만화방은 7개소로, 5천원이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거주 기능을 하는 서울역 앞의 한 만화방을 들여다보면, 2개 층 가운데 아래층은 주로 만화를 보거나 하루씩 자는 사람이, 위층은 장기 거주하는 사람이 이용한다. 석 달 이상 장기 거주자는 20여 명인데, 숙박료로 한 달에 15만원을 낸다. 장기 거주자들끼리는 가족관계와 유사한 위계질서도 잡혀 있다. 샤워가 가능하며 빨래는 한 번 할 때마다 2천원을 낸다. 이들은 대부분 건설현장이나 이삿짐센터 등의 일용직 노동자다.
PC방도 잠자리로 이용된다. 이유는 역시 간단하다. 그다음으로 싸기 때문이다. 세 지역의 PC방 수를 합하면 24곳으로, 하룻밤 평균 비용이 6천~7천원이다. PC방 거주민은 일본에서도 공론화됐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넷카페 난민’으로 부른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7년 넷카페 난민이 5400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구주택조사는 물론 인권위 조사에서조차 국내 ‘PC방 난민’ 수는 파악하지 못했다.
다중이용업소 가운데 정상적인 삶과 가장 근접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찜질방·사우나 등이다. 세 지역을 통틀어 13곳에 달하고 하루 비용은 평균 7천원, 한 달 비용은 17만원 내외다. 한 달 비용으로 치면 다른 곳에 비해 3만원 정도 비싸지만 이곳에서 상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찜질방·사우나를 두고 조사보고서는 “비주택 거주민들이 밖에서 버티다 안 되면 들어가서 잠을 청하는 거주지라고 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노동을 희망하는 젊은이 많아
비숙박용 다중이용업소 비주택 거주민들의 특징은 이전의 전통적인 빈곤층 주거 형태에 비해 젊은 고학력층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저렴하지만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환경이어서 체력적으로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거처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사에 응한 26명을 기준으로 평균연령은 41.4살이다. 비주택 거주민 전체의 평균연령인 52.1살(전체 206명)보다 11살 정도 젊다. 또 전문대졸 이상이 38%로, 다른 곳(고시원 22%, 비닐하우스 16% 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현 거주지에서 거주해온 기간이 짧은 것도 특징이다. 응답자 가운데 19명(73%)이 6개월 이하다. 이들이 이동하는 곳은 주로 다른 종류의 비숙박용 다중이용업소다. 일하는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짧게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1년 사이 PC방(15회), 사우나·찜질방(10회) 등을 주로 순환하는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젊은 고학력층이고 일자리를 따라 임시 거주를 하고 있지만 다중이용업소 거주민의 한 달 노동 일수는 월 15일 미만이 76.9%에 달한다. 응답자 가운데 6명은 아예 무직이다. 무직자를 제외하고 2008년 월평균 소득이 50만원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75%에 이른다. 그들은 2008년 한 해 동안 1인당 최저생계비(46만3047원)에 못 미치는 벌이를 한 것이다. 이는 다른 빈곤층 주거 유형과 비교해도 형편없는 소득이다. 비닐하우스 거주민의 월평균 소득인 91만원의 절반도 안 되고, 고시원(66만원), 여관·여인숙(59만원) 등의 거주민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부채비율도 73%로 쪽방(40%)이나 비닐하우스(53%)보다 월등히 높다. 연령이 낮고 고학력이지만 통계지표만 봤을 때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다른 주거 형태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
희망이 없지는 않다. 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취업 알선 및 창업’을 선택했다(61.5%·16명). 이들 가운데 정작 저렴한 주택 제공을 원한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생계급여를 받는 사람이 단 1명도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조사보고서에서는 이를 두고 “노동을 희망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밝힌다.
비닐하우스 거주민 8668명
통계청이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는 ‘주택’을 기준으로 한 것일 뿐, 주택 이외의 삶은 외면돼왔다. 그 수치 또한 실제와 거리가 너무 멀다. 4년의 간극이 있다지만,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파악된 영등포 지역의 여관·여인숙 등 숙박업소 장기 거주자는 119명에 그친 반면, 2009년 인권위 조사 결과는 역 인근 업소만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239명이다.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고시원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서 파악한 현황은 영등포 전체 438명인데, 인권위 조사에서는 역 인근만도 665명이다.
아예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항목도 있다. 대표적 비주택 유형인 비닐하우스는 1980년대 말 불량주택 재개발사업으로 저소득층 주거지 철거가 대단위로 시작되면서 집중적으로 생겨나 그 역사가 20년을 넘지만 여전히 실태 파악은 오리무중이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 주민연합’에서 발표한 게 그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전부다. 비닐하우스촌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32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거주민은 8668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전히 국공유지와 체비지를 무단 점유한 무허가 건물에서 철거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간다. 인권위 조사에서 그들의 70%가 주거 문제로 지적한 것은 ‘악취’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