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어찌할 바 없는 비통함의 그림자를 느낄 수 없었다. 결연했다. ‘탈상(脫喪)을 하지 못한 사람’ 같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를 풀 수 있는 자신의 방법, 그리고 해원(解寃)의 방법을 찾은 듯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1월1일 19대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봉하마을이 있는 경남 김해을 지역구의 민주통합당(민주당) 예비후보다.
국회의원 선거 출마는 ‘평범한’ 결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 자리를 내려놓고, ‘정치인 김경수’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이 ‘원칙과 상식의 정치’라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실현하려는 것이라는 결심은 분명해 보였다.
서울대 총학생회 학술부장 출신으로 임채정 전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김 본부장은,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을 맡아 노 전 대통령과 ‘질긴’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등을 거쳤고, 노 전 대통령의 퇴임 뒤엔 봉하마을에서 봉하재단과 노무현재단 등의 일을 맡아왔다.
사실 그는 지난해 4월 보궐선거 때 출마를 검토하다, 국민참여당 등의 압박으로 불출마한 바 있다. 이번엔 1월11일 김해 진영문화센터에서 ‘김경수의 봉하일기 북콘서트-바람의 시작’이라는 이름의 출판기념회를 열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부산·경남 지역 총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인사들과 함께 승리의 결의를 다지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를 준비한다. 그사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1월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대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19대 총선 출마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가.
지난해 4월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후보단일화를 했지만 졌다. (불출마를 선언한) 나를 포함해 모두가 노 대통령의 고향을 못 지킨 사람이 돼버린 거다. 그래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꿔 총선·대선을 필승 구도로 만들자고 했고, 야권 통합을 추진했다. 국민이 열망하는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혁신도 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통합당을 만들며 국민에게 한 약속이므로 총선 출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문 이사장이 먼저 결심했고, 나도 이어 결심한 거다. 그러나 누구도 지난해 4월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실패를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나의 작은 힘이라도 보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다.
총선 출마 선언문 형식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로 선택했는데.
아주 당연한 선택이었다. 김해는 노 전 대통령의 생애와 철학이 응축된 곳이다. 여기서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김경수 개인이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의 고향을 민주주의의 보루로 지키겠다는 결의를 김경수라는 사람을 통해 다지는 것이다. 대통령과 개인적 관계도 있다. 2007년 대통령이 내게 경남 진주 총선 출마를 세 차례 권유했다.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필생의 화두가 있었고, 그 화두를 풀려면 젊고 참신한 인물이 영남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중에 대통령이 “정치하지 말라”고 쓴 글도, 행간을 잘 보면 정치가 워낙 힘들고 어려운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정치를 권한 미안함을 담은 것이다. 어쨌든 당시엔 “끝까지 옆에서 모시고 싶다”고 피해나갔다. 그러니 출마를 결심하며 누구보다 대통령께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 아니겠나.
출마 선언문에서 약속한 “(노 대통령에게) 배운 대로 하겠습니다”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10년 동안 대통령을 모시며 배운 게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 거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며 감방에 세 번을 갔다왔는데, 운동의 가장 큰 목표가 세상을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꾸는 거였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접어들자 그 목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세상을 바꾸자는 기개도 사라졌다. 다시 그 생각을 한 건 대통령을 만나면서부터다. 그와 힘을 합하면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것이 정치인 노무현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둘째는 ‘바보정신’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멀리, 크게 보고 가야 한다. 당장은 손해나는 선택일 수 있지만, 원칙을 지키면 옳은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바보정신이다. 정치를 그렇게 하지 않으니 국민에게 외면받는 것 아닌가.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정치, 그걸 배운 대로 안 하면 내 스스로를 배신하는 것이기도 하고, “노무현 사람도 별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거다. 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는 게 중요하다. 그게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는 길이다.
그렇다면 ‘정치인 김경수’의 정치는 무엇인가.
민주당은 이제 혁신을 시작했다. 1~2년 만에 성과가 나오는 실험이 아니다. 정당·정책·사람이라는 세 가지 혁신 과정은 총선과 대선을 거친 이후에도 끊임없이 도전받을 거다. 그런 도전을 하나하나 극복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고 싶어했던 시민민주주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시민정당을 어떻게 만들지가 내 정치의 비전이 아닐까 싶다. 어떤 정치를 할 거냐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정치를 하는 한 계속해야 할 일이다.
친노 인사와 민주당은 문재인 이사장,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등을 내세워 ‘낙동강 벨트’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벼른다. 하지만 이 지역은 생각만큼 친노 진영에 우호적이지 않고,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해져도 민주당 지지로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지역 정서상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들고 나가서 이길 수 있느냐는 건데, 그 이름은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4·19부터 촛불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역사, 민주정부 10년을 함축한다. 시민들도 이명박 정부를 겪으며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많이 알게 됐다. 한나라당에 실망해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건 야당이 그 민심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걸 바꾸려고 통합한 거다. 통합만 이뤘다고 곧바로 영남 시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통합 과정에서 합의한 혁신의 원칙을 지키고, 시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실현해낼 거라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관건이다. 시금석은 이번 지도부 경선 과정에서 시민선거인단이 얼마나 참여하며, 새 지도부가 얼마나 혁신하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하루아침에 역전되는 게 아니라, 총선을 거치고 대선까지 가며 지역주의는 서서히 허물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국회의원과 지역 일꾼이라는 인식 사이에 간극이 좀 있는 것 같다. 지역발전론을 많이 얘기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정권 교체 없이 지역 발전은 없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때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하며 지방자치단체 복지예산을 늘렸고, 지자체를 통한 사회복지 전달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복지예산은 줄었고, 사회복지 전달 체계도 무너졌다. 지역에서 개인 하나 잘 뽑으면 지역이 발전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당의 정책이 지역 발전에 가능한 것이냐, 그런 당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역 발전이 근본적으로 규정받는 거다. 국민이 선택을 할 때 그런 부분을 함께 봐주시면 좋겠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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