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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공간] “연탄을 드립니다”

등록 2004-11-26 00:00 수정 2020-05-03 04:23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어쩌면 올겨울엔 길가에 쌓인 하얀 연탄재를 볼지도 모르겠다. 장기 불황, 기름값 폭등으로 시대의 흐름에 밀려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연탄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연탄 공장은 물론, 연탄 난로와 보일러를 만들어 파는 업체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첨단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엔 옛날식 난방용품을 전문으로 파는 사이트(www.oldadopter.com)가 등장했다. 공급이 달려 벌써 품절이 많다.

1980년대만 해도 연탄은 생활 필수품이었다. 연탄의 연료 점유율은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떨어지더니 53.8%(1991)→11.8%(1995)→0.9%(2000)까지 떨어졌다. 비슷한 속도로 도시가스가 빈 공간을 차지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연탄은 여전히 없는 사람들의 필수품이었다. 도시가스관이 닿을 수 없는 높은 달동네는 아랫동네와 다른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등고선은 높이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세기의 삶을 구분하고 있었다.

11월 초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달동네에 ‘연탄은행’(02-930-0646)이 문을 열었다. 말이 은행이지 연탄을 맡겼다가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은 아니다. ‘원주밥상공동체’가 서민층에 무료로 연탄을 나눠주는 곳이다. 전국 여섯 번째, 서울에선 첫 번째다. 꼭 필요한 사람들은 하루 5장씩 가져갈 수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짬을 내 봉사활동으로 연탄은행 관리를 맡고 있는 전병종(51)씨는 “동네 사정을 빤히 아는 만큼 어려운 분들이 연탄을 가져갈 때는 보람을 느끼지만, 생활에 여유가 있거나 심지어 사업체를 갖고 있는 분들까지 가져갈 때면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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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등고선을 따라 도심으로 내려온 연탄재를 보거든 절대 발로 차서는 안 된다. 안도현 시인한테 혼난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그리고 조심해야 한다. 불을 쬐야지 절대 마셔서는 안 된다. 연탄가스 중독사고 없는 겨울을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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