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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먹고 싶네


술을 빚고 생겨난 쾌락과 행복의 DNA, 그러나 쾌락에는 알코올중독 등 대가와 비용이 드는 법
등록 2008-11-27 12:02 수정 2020-05-03 04:25
자꾸만 먹고 싶네

자꾸만 먹고 싶네

무슨 잠을 이렇게 많이 잤담. 호모사피엔스 키키는 해가 앞산 중턱에 걸렸을 때에야 간신히 초막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조금 아픈 것 같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아내 키니와 아이들은 곡식 낟알이나 훑으러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키키는 문득 어제 초막으로 돌아온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혹 요깃거리라도 있을까 초막 안을 둘러보니 어제 주워왔던 나무 열매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열매 몇 알을 입에 넣어본다. 아, 이 맛! 그렇지. 어제 저 숲에서 이 열매들이 뭉개져 섞인 물을 마셨었지! 키키는 불현듯 그 물을 들이켰을 때 입안에 가득했던 그윽한 향기와, 몸이 붕붕 뜨는 듯한 야릇한 느낌, 그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간신히 초막까지 돌아왔던 일들을 기억해냈다. 갑자기 입안에 침이 돈다. 키키는 초막을 나와 부지런히 주위 숲속을 뒤지며 나무 열매가 으깨어진 물을 찾아 헤매었다.

신비의 물을 마시기 위해 매일매일 숲속을 뒤지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어렵게 그 액체를 찾아내도 한 모금 마실 만큼의 양도 안 된다. 이리저리 궁리 끝에 키키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토기 그릇에 나무 열매를 직접 으깨어 이 신비스러운 액체를 양적으로 얻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이 지혜는 키키의 부족 모두에게 전해지게 되고, 모두가 나름의 방법으로 이 액체를 빚어 즐기게 되었다. 오호, 쾌재라! 키키의 이러한 호기심은 인류의 70%에게 술을 빚고 이를 즐기게 하는 DNA를 심어주어 쾌락과 행복을 전해준 것이다.

이후 이 신비스러운 액체는 키키의 아들과 손자, 증손자, 고손자 그리고 수천 년 뒤 키키와는 촌수를 따지지 못할 수많은 그의 후손에게까지 두고두고 이어지며 변증적으로 양과 질을 발전시켜 인류를 즐거움에 빠지게 했다. 이로써 바로 음주자에게는 건강 등 어떤 악영향도 주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용납되는 범위 안에서 음주가 이뤄지는, 인류 초기의 소박한 알코올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쾌락에는 언제나 대가와 비용이 드는 법. ‘즐거움을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등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고 마셔댔던 알코올화의 폐해 또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나친 음주, 곧 지속적이고 폭력적인 알코올의 섭취는 신체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쳐 간질환, 위염, 췌장염, 고혈압, 뇌졸중, 식도염, 당뇨병, 심장병 등 많은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 만성 과음자의 대다수가 알코올성 간질환, 간경화, 지방간, 심근증, 위염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으며 위암, 식도암, 구강암, 대장암 등 각종 암에 걸릴 가능성도 평균치를 훨씬 웃돈다.

만성 음주자의 종착역은 알코올의존증, 곧 알코올중독이다. 알코올중독은 알코올화의 특수한 현상으로서 술의 금단 증세를 보이는 질병이다. 그러나 알코올중독은 1849년 스웨덴의 의사 마뉴스 후스가 처음으로 그 용어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술꾼들의 나쁜 버릇, 곧 오늘날의 술주정 정도로 여겨져왔다. 그래서 그즈음까지는 버릇 나쁜 술꾼들에 대한 대책으로 개인의 자유의지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해, 감옥 비슷한 강제 수용 시설을 만들어 자유의지를 제어함으로써 그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다.

알코올중독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피폐화하고 개인의 삶과 가족의 행복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곧 개인의 비극이자 온 가족의 질곡인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 공동체에 범죄, 무질서 등 무시하지 못할 폐해와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사회적 질환이기도 하다. 이것이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돼 격리 수용에서 벗어나 약물적 치료법이 개발된 것은 20세기 중반이었다.

그때까지 수천 년 동안 풍류와 멋으로 포장된 술주정으로 스러져간 술꾼들의 운명이 애달프다. 개인의 자유의지만으로 술의 홍수, 술 권하는 사회에 대처하기는 벅차지만, 어쩌랴! 술꾼 자신이 알코올중독의 1차 방어선인 것을. 나를 비롯해 모든 술꾼들에게는 하나 마나 한 소리지만, 덜 마시자, 건강을 위하여!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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