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남자와 여자로 구성돼 있는 것처럼, 다른 한편으로 세상은 술 마시는 사람과 술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져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천지가 술판이요, 모두가 술꾼으로 보이겠지만, 통계에 따르면 인류의 30% 정도는 아예 술을 못 마시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입에 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종교적 이유나 알레르기 등 신체질환,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간 효소의 활성도가 유전적으로 매우 낮아 술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 등으로 그런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술이란 존재를 알지 못한 인류도 있었다. 에스키모와 일부 아메리카 인디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그들이다. 최초의 술은 움푹한 바위틈에 떨어진 열매의 자연 발효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에스키모가 살아온 영하 30, 40도의 얼음 벌판에는 과일나무도 없었을 뿐 아니라, 있었다 한들 그 온도에서 자연 발효가 이루어질 수 없었으니 이들이 술을 몰랐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1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자연 발효를 위한 적당한 습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부 아메리카 인디언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 역시 술의 존재를 몰랐을 것으로 인류학자들은 추정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 술을 즐겨 마셔왔으며, 문명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술의 제조법과 음주 방식, 음주 예절, 그리고 술과 관련한 숱한 도구들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민족에 따라 술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술을 음식의 일종으로 대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술을 술 자체로, 곧 기호품으로 여기는 인간들이다.
동양은 대체로 술을 음식으로 받아들였다. 동양에서는 술이란 식사 때 반주로 마시거나, 술만을 따로 마실 때도 안주(按酒·한자대로 풀이하면 술을 ‘어루만지는’ 음식)를 꼭 곁들여야 했다. 중국의 배갈(고량주)도 알코올 도수가 높기는 하지만, 그들 음식의 필수 코스로 취급된다. 곧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고 향이 짙은데, 음식이 코스별로 나올 때 그 사이에 배갈을 한 잔 마심으로써 기름기와 향을 목에서 씻어내 다음 코스 음식의 제맛을 즐기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서양에는 대개 안주 개념이 없다. 영화에서 보듯, 그들은 책상 서랍 안에서, 또는 홈바에서 위스키병을 꺼내 안주 없이 맨술을 잔에 따라 홀짝 마신다.
대체로 보면 곡주나 과일주 등 알코올기가 약한 발효주 문화권은 술을 음식으로 받아들이고, 위스키, 보드카 등 알코올기가 높은 증류주 문화권은 술을 기호품으로 받아들인다. 곧 우리의 막걸리나 일본의 청주,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와인은 음식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지만, 위스키·보드카를 즐겨 마시는 영미·북구·러시아 사람들은 술을 기호품으로 즐긴다.
술을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음주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데 비해, 술을 기호품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술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심한 편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술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술=음식’ 사회가 통제와 규제로 술을 사거나 마시기가 어려운 ‘술=기호품’ 사회보다 술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적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금주령과 금주운동은 대부분 ‘술=기호품’ 사회에서 일어났다.
또 술을 음식으로 받아들이면, 우선 다른 음식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안주가 알코올의 흡수를 완화하기 때문에 알코올중독자가 당연히 많지 않다.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이, 그리고 서양인 중에서도 영미인이나 러시아인들 사이에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요즈음 알코올중독자가 느는 등 술로 인한 폐해가 증대하고 있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막걸리, 약주 등 전통 발효주들이 몰락하고 도수 높은 소주·양주가 우리 음주 문화를 휩쓸어버린 결과임이 틀림없다.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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