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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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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등록 2002-07-16 00:00 수정 2020-05-02 04:22

법은 큰 도둑에게 훌륭한 보호막입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에 3심 재판을 받을 권리까지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젠장맞을’, ‘경을 칠’ 같은 형벌과 관련된 욕이 쓰였습니다. 죄가 명백하고 죄질이 나빠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혼쭐을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젠장’은 조선시대의 형벌로 난장이라고도 하는 붉은 몽둥이로 여러명이 닥치는 대로 때리는 것입니다. ‘네 난장을 맞을’ 또는 ‘제 난장을 맞을’이 줄어 젠장이 됐다고 합니다. ‘경’은 몸에 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주로 재물에 관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 매질을 한 뒤 얼굴이나 팔뚝에 4.5cm 정도의 죄명을 문신하는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의 정착으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형벌이 사라졌으며 이는 반길 일입니다. 그러나 젠장맞을 또는 경을 칠 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젠장맞을 또는 경을 칠 일도 무죄추정의 원칙 아래 질질 끌면서 재판받고- 나중에 사면까지 받는 것이-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는 사법제도의 맹점입니다.

법이 못 따라가는 현실, 곧 법과 법감정의 괴리를 메워주고 풀어주는 것이 정치이고 통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역행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최근 개각에서 법무부 장관을 경질했습니다. 대통령 아들 비리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가 잘 듣지 않으니 바꿨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법무부 장관은 물러나는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줄 수는 없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아들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 또한 시중의 정서와는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그는 7월15일 기자간담회에서 “아들 문제에 대한 사전보고를 받지 못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 책임질 사람이 있는지 생각 중이며 대책마련을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뜨뜻미지근합니다. 책임질 만한 사람이 이미 여럿 드러난 상태이며, 정권 출범 초기부터 최근까지 폭넓게, 그리고 아태재단과 연루돼 비리가 행해졌다는 점에서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입니다. 아태재단을 당장 문 닫지 않고 개편하겠다는 것도 한숨 나오게 합니다.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짐작컨대 ‘비교우위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현 정권이 과도 있지만 공이 더 크지 않느냐는 것이 하나고, 그래도 전임 정권의 비리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근거인 듯합니다.

대단한 착각입니다. 아무리 공이 크다 해도 대통령 아들의 권력형 비리라는 과가 상쇄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비교 잣대는 과거 정권이 아니라 지금 국민의 기대 수준이 돼야 합니다. 기대 수준에 턱없이 미달입니다. 낙제점입니다.

문제는 청와대가 착각에 그치지 않고, 범죄적 요소를 감싸려한다는 느낌을 주는 점입니다. 그래서 청와대와 국민 사이에 짙은 한랭전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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