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쉴 만한 소울시티는 내게도 그렇고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단연 미국 중서부 지방 일리노이주 남단의 작은 도시 카본데일이다. 서던일리노이대학 박사과정에 지원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이 생소한 도시에 독자분들이 한번 가본다면, 미국의 웬만한 고장들에는 ‘시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해질 것이다. 여기는 그 흔한 상점 ‘타깃’도 아직 없다. 처음 이사온 날, 칠흑같은 밤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고 지척에서 개구리떼 우는 소리가 옛날 농활 갔을 때보다 더 웅장하더니 아침이 되자 학생아파트 단지 길 바로 건너편에 있는 목장에서 우사 냄새가 날아 들어왔다. 이런 깡시골로 가족을 이끌고 온 것이 자책이 될 정도로 정말 작고 낙후돼 보이는 도시였다.
하지만 도시가 작은 만큼 커뮤니티도 아기자기하고 사람들도 순했다. 아나바다 장터에서 물건을 샀던 할머니가 알고 보니 애들 담임의 어머니고, 외국 학생 환영 행사에서 본 자원봉사자가 동네 농구대회 심판인 식이었다. 한인 커뮤니티도 대단히 가족적이어서 한인회와 한글학교와 한인교회 구성원들이 거의 일치했고, 통틀어도 몇 집 안 돼 서로의 저녁 메뉴까지 다 아는 사이였다. 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동네에서 어린 형제를 키우며 우리 부부는 조금씩 그 여유로운 환경을 닮아갔다. 한국에서는 귀가하다가도 아는 사람 만나 술 마시느라 늘 늦던 남편을 나는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독차지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을 대동하고 공부하러 간 미국 일리노이주의 도시 카본데일은 다른 동네에 ‘시골’이란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작고 한적한 곳이었다. 오은하 제공
자동차 3대만 늘어서도 ‘교통이 막혀 큰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적한 마을에 정 붙이고 산 지 몇 년 만에 큰 자연재해가 찾아왔다. 토네이도가 닥쳐 작디작은 마을이 재난에 휩싸였는데 마침 남편은 한국에 다니러 가야 했다. 살던 기숙사 아파트 지붕이 날아가고 전기가 끊기고 나무가 쓰러져 문이 안 열리는 상황에서, 돈이든 남편이든 둘 중 하나라도 있는 여자들은 다 애들 데리고 도시를 탈출하고 나처럼 혼자 애들 데리고 있는 아줌마들만 단지에 남아 보름 가까이 전기 없이 견뎠다. 막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이었는데, 잠시라도 집을 비우면 냉장고의 음식이 썩는다고 직원들이 색출을 해가는 바람에 나와 이웃집 한국 아줌마는 고춧가루, 마른 멸치 등 각자의 소중한 한국 음식 재료를 번갈아 지켜주며, 오늘은 어느 동 앞에서 구호음식을 나눠준다더라, 오늘은 어느 공공 건물을 개방해 거기 가면 씻을 수 있다더라 하는 정보를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한 줌 남은 부루스타 연료로 남은 모든 달걀을 삶고, 구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싹 구워 다만 며칠이라도 먹을 수 있게 마련하고, 물을 나눠 아껴 마시며 나날을 보내는 사이, 이웃집과 돈독한 정도 쌓이고 철부지였던 아이들은 갑자기 성숙해졌다. 얻어먹기만 하던 구호음식 텐트에서 아이들은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이후에도 타지의 재해 소식을 들으면 스스로 저금을 헐어 성금을 보내게 됐다. 우리를 가족으로 거듭나게 하고 지금도 연락하고 사는 애틋한 이웃을 갖게 하고 아이들을 성장시킨 카본데일, 이후 다른 도시로 옮겨 살다가 그곳을 다시 방문했는데, 마을 어귀에 이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질렀다. “야, 집이다!” 카본데일은 아직까지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집이다. 영혼이 쉴 수 있는 우리의 소울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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