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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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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들이 개미길을 만들어주는 그곳

임순례 감독의 다람살라- 삶의 본질에 다가가게 하는 정화의 공간
등록 2012-03-08 10:25 수정 2020-05-03 04:26

2005년 겨울 이전만 해도 ‘다람살라’는 내게 참으로 낯선 지명이었다.
이 무렵 우연히 부산영화제에서 티베트 영화 을 보고 나서 티베트 문화와 불교에 관해 깊은 울림을 받게 되었고, 이 울림은 예전에 대충 읽고 책장에 꽂아둔 달라이라마의 과 를 다시 꼼꼼히 읽는 계기가 됐다. 곧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분이 살고 계신 다람살라라는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듬해 1월 다람살라로 향하게 되었다.

인도 델리에서 밤 버스를 타고 열두어 시간을 달려 도착한 다람살라의 중심지 매클로드 간지에 대한 첫인상은 ‘혼돈’이었다. 좁은 공간에 차들과 사람, 당나귀, 소, 개 등 온갖 동물이 뒤엉켜 ‘무질서’하게 보였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아 그 무질서 뒤에 숨은 자연스러움과 조화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를 영혼의 안식처로 여기는 이들이 지구촌 곳곳에 적잖다. 한겨레 자료사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를 영혼의 안식처로 여기는 이들이 지구촌 곳곳에 적잖다. 한겨레 자료사진

다람살라는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불교적이고 영적인 도시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불교의 핵심인 자비와 지혜, 생명존중 사상 등이 일상생활에 잘 녹아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코라’, 즉 불탑이나 신성한 불교적 상징물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도는 것을, 전생의 ‘업장’을 녹이는 일이라 해서 중요하게 여긴다.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은 코라를 돌거나 부처님께 깨끗한 물을 올리며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컴퓨터나 TV 전원을 켜며 하루를 시작하는 대부분 나라의 도시인들과는 얼마나 다른가?

언젠가, 불탑을 도는 티베트 여인네의 뒷짐 진 손에 양이 좋아하는 채소가 들려 있고, 양은 주인을 따라 코라를 도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자기가 키우는 동물의 업장도 녹여주려는 배려심이 티베트인의 기본 심성이다. 매클로드 간지에는 주인 없는 수많은 개들이 떠돌아다니지만 그들이 사람을 경계하거나 굶주림과 학대에 처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린 꼬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을까 개미길을 산 쪽으로 내주거나, 야생 원숭이들이 집 베란다를 습격해 온갖 말썽을 피워도 그들을 해하는 것을 듣고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 귀찮다고 오랫동안 키우던 개를 버리고, 길고양이 음식에 쥐약을 놓고, 배고파 민가로 내려온 고라니와 멧돼지에게 총질을 해대는 ‘어떤 나라’와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이후 다람살라를 두 번 더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람살라는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정화시키며 삶의 핵심적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내게는 마치 영적인 도반 같은 존재의 공간이다.

물질문명의 무한경쟁과 가공할 속도 속에, 우리가 손 놓아버린 영적인 가치, 인간의 고귀한 품성과 자연의 지극한 조화가 아직 살아 숨쉬는 도시, 다람살라는 내게 영원한 ‘소울 시티’로 남을 것이다.

임순례 영화감독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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