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이름만 들어도 ‘권위’가 느껴지는 과학 학술지 에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했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인 필자가 작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이 기사는 한국의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증거로 알려진 시조새와 말에 관한 부분이 수정·삭제되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렸다. 개정을 청원한 ‘교과서 진화론 개정추진회’라는 단체는 ‘창조과학회 교과서위원회’와 ‘한국진화론 실상연구회’가 결합한 기독교단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는 “진리를 호도하고 있는 진화이론의 허구를 집중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교과서 진화론의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단체의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단체는 일단 교과서에서 시조새와 말에 관한 부분을 문제로 삼았지만, 최종적으로는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퇴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영감이 질식시키는 것들
진화론의 전문가도 아니고, 무신론의 대표자도 아닌 내가 ‘과학과 종교’ ‘믿음과 증명’에 관한 지리멸렬한 논쟁에 굳이 끼어들 이유는 없다. 인류 사상 가장 지루한 이 논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증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논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사이비 논쟁에 인생을 낭비하고 싶겠는가. 다만 이 단체가 현상적으로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논거를 동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은 종교적 영감에 근거해 과학과 교육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신자들은 ‘신의 은총’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매우 가엾고 황량한 인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을 영접한 분들의 처지에서 아직도 신을 찾지 못해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나 또한, 도무지 근거를 찾을 수 없는데도 쉽게 신을 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같은 인류로서 속이 상해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물론 올바로 찾았는지 스스로 속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을 찾은 당신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는 것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삶의 우연성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러니를 견뎌가는 불신자들의 마음의 풍경은 어찌 보면 참 서글프다. 그러나 근원적 슬픔을 피하고자 증명되지 않은 것에 자신의 삶을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을 탐해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버려진 사막에서 비록 고독하게나마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해나간다.
‘숭고함’은 과학에 배치 안 돼
인류가 형성한 ‘신에 대한 관념’의 귀중한 부분은 진화론에 의해 훼손될 정도로 연약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지닌 ‘신에 대한 관념’이 진화론에 의해 위협받는다면, 성찰되어야 하는 것은 진화론이 아니라 당신이 지닌 지나치게 소박한 ‘신에 대한 관념’이다. 나는 비록 아직도 신을 찾지 못한 자로 남아 있지만, 신을 찾는 인간의 노력에 깃든 ‘숭고함’을 사랑하며, 그 ‘숭고함’은 진화론은 물론 어떠한 과학적 성과와도 배치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이 나의 종교라면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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