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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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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지 마세요

등록 2012-07-05 11:32 수정 2020-05-03 04:26

용산 참사는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2010년 11월, 대법원(주심 양승태 대법관)은 농성 철거민들의 유죄를 확정했다. 2009년 1월20일 서울시 용산구 남일당 옥상 망루에서 불에 타죽은 철거민 농성자 5명의 생명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지금, 그 망루에서 살아남은 8명의 시민이 감옥에 갇혀 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던가.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김일란·홍지유)이 6월28일 관객 1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이레 만이다. ‘1만 명’은 독립영화의 장기 흥행 여부를 가릴 척도로 불린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영화보기 운동이 거세다. 개봉관도 16곳에서 22곳으로 늘었다. 단체관람이 줄을 잇고, 유력 정치인들도 극장을 찾아 한마디씩 거든다. 민주당은 국회 개원 뒤 진실 규명 및 구속된 철거민의 특별사면을 위한 석방촉구 결의안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사회현상이다. 영화는 힘이 세다.
영화엔 이런 법정 장면이 나온다. 검사가 묻는다. “진압작전 중에 김남훈 경사가 사망했는데, 사망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5초간의 침묵. 경찰특공대 대원이 답한다. “농성자한테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그 침묵의 의미를 파고든다. 5초의 침묵에 법정에서 인정받지 못한 또 다른 진실이 있다. 영화는 경찰특공대 B팀장의 진술서에 앵글을 멈춘다. “희생된 철거민 농성자의 목숨도 우리 동료도 사랑하는 우리 국민입니다.”
영화 제작진은 엔딩 크레디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용산 참사의 역사적 진실을 위해 기억과 기록의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현상은 역사의 법정을 향한 외침이다. ‘1980년 5월 광주’가 전두환의 원죄이듯, 이명박 정권은 ‘2009년 1월20일 용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쯤에서 영화의 마지막에 배치된 박진 용산철거민사망사건진상조사단 활동가의 질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용산에서 ‘아, 이렇게 해도 국민이 참아주는구나’라는 걸 본 거죠. 그게 정말 몹쓸 교훈이 돼버린 거예요. 이런 폭력이 이 정부 끝날 때까지, 아마 이와 유사한 정부가 온다면 또 오겠죠. 이게 너무나 무서운 거라서, 시민들이 언제까지 이런 걸 관용할 건지 전 참 궁금해요.”
‘용산’은 도처에 있다. 쌍용차 노동자·가족 22명의 죽음, 홍익대 앞 두리반과 명동 마리의 재개발 철거, 제주 강정마을…. 그러므로 영화가 바라는 건 ‘눈물’이 아니다. ‘판단’ 그리고 ‘행동’이다. 영화는 묻는다. 2012년, 당신은 국가폭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마침 6월28일 ‘SKY Act.’(스카이 공동행동) 시국회의가 열렸다. 쌍용·강정·용산의 영문 이니셜을 딴 스카이 공동행동의 모토는 이렇다. “노동자가 하늘이다. 구럼비가 하늘이다. 쫓겨나는 민중들이 하늘이다.” 8월 중순 이후 전국을 돌며 노동과 평화와 생존권을 잇는 연대행동을 추구하겠단다. 이참에 다큐 영화 과 도 챙겨보는 건 어떨지.
다시 영화 얘기. 대선 직전인 11~12월 정치색 짙은 영화 여러 편이 스크린에 걸릴 예정이다. 박정희의 아내이자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씨를 모델로 한 (감독 한창학). 5·18 희생자 가족들이 유혈진압의 최종 책임자인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사적 복수’에 나서는 (원작 강풀, 감독 조근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뜬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사연을 다룬 (감독 정지영). 이 세 영화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해 구구한 주석을 달지 않겠다. 영화는 힘이 세다. 그리고 영화의 힘을 현실의 힘으로 바꾸는 건 시민이다.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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