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다 시들해졌지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청소년·젊은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기자의 길을 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좋은 기자’ 되기는 어려운데, ‘나쁜 기자’ 되기는 쉽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자는 기사를 쓴다. 기사는, 밥이나 빵처럼 먹는 게 아니다.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생활에 유용한 물건도 아니다. 기사는 다만 동시대인의 세계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 기사의 쓰임새란, 독자(시청자)들이 세상사 가운데 꼭 알아야 할 일이 뭔지 가리는 걸 돕는 일이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 옹호와 권력 감시가 특히 중요하다. 진실을 외면한 기사는, 불특정 다수의 영혼을 좀먹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흉기다. 기자가 권력의 주구가 되거나, 자기도 진실이라 여기지 않는 걸 기사로 쏟아낸다면? 그는 반사회적 범죄자일 뿐이다. 모든 기사엔 바이라인이 달린다. 자기 이름을 걸고, 기사의 진실성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고독한 단독자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대부분의 기자는 특정 언론사의 구성원이다. 조직의 논리·문화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때로 그 조직의 논리는, 겉으로 내세운 편집권 독립을 부정하기도 한다. 이 경우 저항은 기자의 숙명이다.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 진실의 편에 서려다 독재권력과 언론사주의 미친 칼춤에 해직 언론인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던 수많은 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기록하는 놈’인 기자는 진실의 빛을 좇아야 한다. 21세기 한국에서 언론노동자들이 동시 파업에 나선 까닭이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꼭 기자가 되고 싶다’는 청소년·젊은이들에겐, “가고 싶은 언론사를 고르기에 앞서, 기자의 꿈을 접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가지 않을 언론사를 먼저 정하라”고 말한다. 마지노선을 치라는 당부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작은 매체에도 눈을 돌려보라”고도 권한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치러본 젊은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처음엔 특정 언론사 입사를 꿈꾸며 시험 준비를 하지만, 숱하게 낙방하고 나면, ‘합격시켜주면 어디든 감사하게 일하겠다’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튼다. 기자의 길을 걷고 싶은 젊은이에게 죽음의 키스가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국가안보에 국가보안법이 필수’라고 주장하는 언론사가 있다. 그곳에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젊은이가 기자로 들어간다. 역의 경우를 상정해도 무방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개 기자가 오랜 역사를 지닌 거대 언론사의 논조를 뒤엎는 일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신념을 지키려고 기자의 꿈을 접고 퇴사하거나, 조직의 논리에 맞춰 생각을 바꾸는 길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자 숱한 선택의 결과다. 가령 이런 선택은 어떤가? 한국방송·문화방송·YTN··· 등의 언론노동자들이 동시다발 파업을 벌이고 있다. 나는 이를 ‘찌라시’ ‘땡×뉴스’라는 오명을 벗고 진실의 편에 서려는, 양심에 따라 보도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받아들인다. ‘기록하는 놈’의 숙명을 배반한 ‘김인규·김재철·배석규들’에 의해 많은 이들이 해고됐지만, 저항은 더 거세지고 있다. 4·11 총선에 실린 민심이, 거리로 나선 언론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무지개다리를 놓아주기 바란다.
이제훈 편집장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명태균에 겁먹고 계엄 했나…“나 구속되면 정권 붕괴” 발언 소환
국무위원들 사의 표명…총리·국힘·대통령실 긴급 회동
[속보] 야6당 ‘윤석열 탄핵안’ 발의…5일 0시1분 본회의 보고
이재명·한동훈 체포용 의심 ‘수갑’ 공개…계엄군이 국회에 떨궈
이재명 “윤, 계엄 또 시도할 것…북한과 국지전 벌일지도”
친윤계 “대통령 오죽했으면…” “우리가 말벗해 줘야”
[단독] 계엄 건의한 김용현, 군에 “수고했다…중과부적이었다”
현직 경찰, 경찰청장 ‘내란죄’ 고발…“부당한 계엄령 집행”
광화문 메운 시민들 “내란죄 윤석열을 탄핵하라”
오늘 저녁 6시 종로·국회 등 서울 곳곳 촛불…“내란 윤석열 즉각 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