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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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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대리운전

등록 2006-04-19 00:00 수정 2020-05-02 04:24

어느 용감한 아줌마의 에피소드입니다.
얼마 전 40대 중반의 나이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따자마자 바로 승용차를 뽑았다고 합니다. 뽑자마자 연수도 안 받고 차를 몰았습니다. 그것도 차가 출고된 당일, 겁 없이 친정집이 있는 충청도 시골까지 몰고 갔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황망한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고속도로를 거쳐 지방 국도를 달리던 때였습니다. 비상등을 켜야 할 상황을 맞았는데, 비상등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더랍니다. 고민 끝에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래, 왼쪽 깜빡이와 오른쪽 깜빡이를 번갈아 켜면 되는 거야.” 한참을 그렇게 달리자, 뒷차가 경적을 울리며 옆에 바짝 붙었습니다.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린 남성 운전자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줌마! 왼쪽으로 가겠다는 거야, 오른쪽으로 가겠다는 거야? 지금 누구 약올려?”

배꼽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의 정체성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친북 우파’처럼 우스꽝스럽게 들리지만, 여기에 대한 진부한 코멘트는 접겠습니다. 그저 블랙코미디 드라마로 극화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아 양쪽 깜빡이를 번갈아 켜면서 진땀 흘리는 모습. 뒤따라오던 좌우측 모든 운전자들이 삿대질을 하는 풍경. 6년 전 <세 친구>라는 텔레비전 시트콤의 유명했던 장면까지 오버랩됩니다. 좌회전과 우회전을 못해 한강다리를 건너 결국 부산까지 내려간다는 스토리 말입니다(아마 안문숙씨가 주인공이었던 듯). 깜빡이도 깜빡이지만, 좌든 우든 핸들을 어느 한쪽으로 확실히 돌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중요한 교훈으로 와 닿습니다.

‘한-미 FTA’는 좌회전도, 우회전도 아닙니다. 나라 간의 무역장벽을 제거한다고 무작정 신자유주의로 매도될 수는 없습니다. 협상 결과를 만족스럽게 얻는다면 오히려 ‘진보’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좌회전이냐 우회전이냐가 아니라, 직진이냐 후진이냐인지도 모릅니다. 이번호 표지에 등장한 정태인 청와대 전 비서관은 FTA나 세계화 자체를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졸속으로 진행했다간 미국의 농간에 사정없이 휘말린다고 경고합니다. 그가 보기에,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위험한 후진’ 기어를 넣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또 다른 초보운전 아줌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녀는 술도 안 마셨는데 대리운전을 부른 적이 많습니다. 서울 신촌에서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집을 가려고 내부순환도로 진입로 언저리를 더듬다가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여의도로 잘못 빠진 뒤 광명까지 갔다오기를 몇 차례. 결국 대리운전사가 해결사였습니다. 소심하지만, 안전한 선택입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노무현은 한-미 FTA로 가는 길을 모르고 운전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음주운전은 아니지만, 확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았다고 합니다. 사고 나면 한두 사람 죽는 게 아닙니다. ‘대리운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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