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중국 20위안짜리 지폐에 나오는 유명 관광지 구이린 양숴를 갔을 때 일이다. 국경절 연휴가 끝난 직후라 바글거리던 관광객들이 사라지고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해거름 무렵,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 근처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식당들을 기웃거릴 때, 한 노점상 앞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 동네 맛집’인가 싶어 얼른 가서 줄을 섰다. 안에 들어가는 소만 다를 뿐, 우리나라 호떡과 비슷한 중국식 호떡을 파는 작은 노점상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자세히 보니, 노점 앞에는 “이 가게는 일본인을 환영하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인 안내문이 있었다. 친절하게도 중국어 밑에 영어로 “This shop does not welcom Japanese”라고 번역도 해놓았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종류별로 호떡을 서너 개 주문하면서 ‘welcom’에 ‘e’가 빠졌다고 알려줬다. 그러자 호떡을 굽던 사장은 나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내 중국어 발음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당신 혹시 일본인? 일본인에게는 이 호떡을 팔지 않아요.”
중년 여성 사장의 말투가 워낙 싸한데다 목소리도 커서 뒤에 서 있던 사람들도 순간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해 8월부터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방류하면서 중국 내 반일 감정이 험악하던 때였다. 중국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고, 인터넷과 각종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일본 타도’ 함성이 울려퍼지던 때이기도 했다. 속으로 ‘일본인이라고 거짓말해볼까’ 하는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했지만, 호떡집 사장의 눈초리가 워낙 살벌했고 줄서 있는 사람들도 나를 노려보는 듯해 그만 실실 웃으며 “나 한국인이에요”라고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눈길이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웃음기 없는 얼굴로 호떡을 마저 구우며 사장은 말했다. “다행이네요. 이렇게 맛있는 내 호떡을 일본인에게 맛보게 할 수는 없죠. 일본과 일본 사람들은 정말 너무너무 짜증 나요. 안 그래요?”
하이라이트는 뒷줄에 서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나와 사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뒷줄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 가게는 진짜 애국 노점상이네요. 그래서 이렇게 손님이 많군요. 아예 애국 호떡집이라고 간판을 내걸지 그래요? 천하제일 애국 호떡집!”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박장대소했다. 또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호떡집을 열심히 ‘촬영’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날 그 호떡집은 여러 인터넷 숏폼 동영상과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불이 났을’ 것이다.
요 며칠 중국에서는 ‘호떡집에 불난 듯이’ 때아닌 호황과 여론의 뭇매를 맞는 ‘애국 기업’과 ‘매국 기업’이 생겼다. 2024년 2월25일 중국 최대 식음료 민영기업 중 하나인 와하하(娃哈哈) 창업주 쭝칭허우가 지병으로 별세한 뒤 중국 내 인터넷을 중심으로 갑자기 번져나가는 새로운 ‘애국주의’ 물결이다.
1987년 저장성 항저우에서 와하하 기업을 창업한 쭝칭허우는 중국 식음료 분야에서 가장 먼저 ‘토종 브랜드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개혁·개방 1세대 민영 기업가다. 창업 초창기에는 주로 아동 영양 식음료사업에 주력하다가 1993년부터 ‘와하하’라는 브랜드로 생수사업에 뛰어들며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생수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98년에는 중국 최초의 토종 브랜드 콜라인 ‘페이창 콜라’를 생산하며 중국인 사이에 ‘민족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와하하 생수와 식음료 제품들은 경쟁업체 눙푸산취안(農夫山泉)이 창업되기 전까지 중국 내 시장점유율에서 줄곧 선두를 달렸다.
쭝칭허우는 중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민영 기업가였다. 하지만 1996년 역시 동향인 저장성 항저우에서 눙푸산취안이라는 브랜드를 내건 새로운 식음료 기업이 생기자 본격적인 ‘물의 전쟁’이 시작됐다. 더군다나 눙푸산취안의 창업주 중산산은 원래 와하하그룹의 식음료 대리상 출신이었다.
홍보와 마케팅에도 뛰어난 능력이 있던 중산산은 2000년 와하하 생수를 겨냥해 ‘천연수와 정제수’ 논쟁을 유발했다. 눙푸산취안 생수는 ‘자연에서 끌어올린 천연수’이지만 다른 기업이 생산하는 물은 그저 정제한 수돗물에 불과해 어떤 유익한 성분도 들어 있지 않다고 홍보했다. 당시 내건 “우리는 물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그저 대자연의 운반공일 뿐이다”라는 문구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다. 눙푸산취안은 당시 이 광고 문구 하나만으로도 와하하를 누르고 생수업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런데 쭝칭허우가 사망하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와하하가 창업 뒤 처음 만든 어린이 영양 음료수를 마시고 자란 ‘80후 세대’(1980년 이후 출생자)를 중심으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서 쭝칭허우와 와하하 기업을 향한 ‘추억 붐’이 인 것이다. 이는 곧 ‘추앙 붐’이 된다. 생전에 쭝칭허우가 45살 이상의 ‘늙은’ 직원들을 절대로 해고하지 않았다는 것 등 확인되지 않은 미담들은 살아갈 힘을 주는 ‘긍정의 힘’으로 작용했다.
이 원로 민영 기업가를 향한 존경을 담은 애도 물결은 어느 순간부터 눙푸산취안과 그 창업주 중산산을 향한 마녀사냥으로 변해갔다. 중산산이 와하하 대리상 시절 물건을 뒤로 빼돌려 다른 지역에서 비싼 가격에 팔면서, 자신을 신뢰해줬던 와하하와 그 창업주 쭝칭허우의 등에 칼을 꽂으며 배신했다는 둥 ‘음모론’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또한 눙푸산취안 생수의 디자인이 일본 국기를 모방했다는 둥, 눙푸산취안에서 생산하는 여러 식음료 디자인 역시 일본 야스쿠니신사나 교토에 있는 청수사를 본뜬 것이라는 둥 눙푸산취안이 ‘친일 기업’이라는 논리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양한 버전이 만들어져 확대재생산됐다.
게다가 중산산의 아들이자 그룹 승계자인 중수쯔가 미국 국적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매국 기업’ 눙푸산취안을 향한 여론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져갔다. 자사가 생산한 생수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유세를 떨더니 정작 기업문화와 창업주 일가는 배신과 음모를 일삼고 국가와 민족의 이익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분노다.
이 여파로 눙푸산취안의 주가는 창업 이래 가장 짧은 시간에 최대폭으로 급락하고 있다. 보도를 보면, 2월25일 쭝칭허우가 사망한 이후 눙푸산취안의 공식 플래그십 스토어 매출이 지속적으로 급감해 감소폭이 90% 이상이라고 한다. 일부 지역의 편의점과 상점에서는 눙푸산취안 제품을 모두 치웠고, 인터넷 짧은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눙푸산취안 생수를 통째로 하천에 쏟아버리는 ‘퍼포먼스’가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경쟁 기업인 와하하는 판매량이 급증하다 못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눙푸산취안을 향한 분노와 불매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눙푸산취안과 창업주 중산산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애국과 민족’을 앞세워 인터넷에서 클릭 장사를 하며 여론을 선동해오던 대표적인 ‘애국전사’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도 보다 못해 ‘포용과 관용’을 외치며 이성적인 애국주의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경제 상황도 최악인데 애국주의 논쟁과 불매운동이 자칫 경제와 민심을 더욱 악화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사회에 공기처럼 떠도는 ‘문화대혁명’식 광기와 비이성적 낙인찍기 행위 등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시진 전 편집장이 비이성적 광기로 비판한 사건은 또 있다. 2월20일 ‘진실을 말하는 마오싱훠’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마오싱훠’는 중국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영향력 있는 블로거 중 한 명인데,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꼴보수 우익분자’에 가깝다. 2023년 11월 이후 그는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을 고발한다는 글을 꾸준히 올려왔다. 모옌이 쓴 여러 문학작품이 중국의 수많은 영웅을 왜곡하거나 모욕하고 중국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옌의 문제는 절대 문학이나 예술의 문제로 논의될 게 아니라 영웅열사보호법 위반과 반민족역사 행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급기야 2024년 2월20일 베이징 인민법원에 고소장을 정식으로 제출했다. 그는 웨이보에 고소장 전문을 올리고 자신의 고소 행위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 공익 소송’이라고 규정했다. 고소장 접수 사실이 알려지자 그의 웨이보에는 수많은 ‘같은 입장을 가진’ 애국자가 몰려와 ‘좋아요’를 눌렀고 ‘애국의 이름으로’ 모옌을 처벌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비판한 후시진에 대한 고소장도 제출했다.
근년 들어 중국에서는 모옌 고소와 눙푸산취안 사태처럼 중국판 매카시즘을 방불케 하는 신종 애국주의 광풍이 불고 있다. 특히 시진핑 3기 체제 이후 가속화하는 정치적 경직과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는’ 사회 전반에 퍼진 ‘입틀막’식 공포 분위기는 이런 정서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경기침체와 실업의 늪에 빠져 고립되고 우울한 사람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모여들어 보이지 않는 ‘군중’을 이루고, 이들은 각종 소문과 가짜뉴스를 확대재생산해내는 ‘인플루언서’들의 선동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군중의 제어되지 않은 분노와 비이성적 애국주의 광기가 인플루언서들이 던지는 어떤 ‘미끼’를 무는 순간, 군중은 순식간에 ‘인터넷 폭민’으로 돌변한다.
“와하하를 마시는 것이 애국이고 눙푸산취안을 마시는 것은 매국 행위다 . ” 지금 중국 인터넷에 떠도는 ‘애국 구호’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베이징에 거주하는 필자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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