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갑자기 ‘상하이 거리를 뒤덮은 최고급 슈퍼카 행렬’이 화제가 됐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상하이 주요 번화가에 최근 들어 각종 고급 슈퍼카들이 매일 출근하듯이 줄줄이 나타나 대규모 질주 행진을 했다. 중국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높고 부자가 많은 이곳에서 고급 외제차와 슈퍼카들이 질주하는 광경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슈퍼카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대에 질주하는 광경은 드문 일이다. 갑자기 나타난 슈퍼카 행렬에 와이탄과 우캉루 등 상하이 주요 관광지를 가득 메운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현지 중국인들도 의아해했다. 슈퍼카 행렬이 교통체증을 일으킬 정도로 ‘도를 넘자’ 급기야 교통경찰까지 출동해 제지해야 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그게 다 ‘한국인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24년 11월8일부터 2025년 12월31일까지 모든 한국인에게 무비자 관광을 허용한다고 일방적인 선언을 했다. 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복을 못하는 중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 중 하나였다. ‘무비자 효과’가 있었는지 상하이와 칭다오 등 몇몇 인기 도시에는 이미 한국인 여행객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는 2024년 연말부터 부쩍 젊은 한국인 20~30대를 중심으로 주말 ‘도깨비 여행족’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자 중국 SNS에서는 온 상하이에 한국인들의 ‘습니다~’가 들려오고, 한국의 젊은 주말 여행객들 덕분에 상하이 경제가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며 환대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일부 SNS에 “상하이에 놀러 온 한국인들이 ‘상하이에서 고급차를 보기가 힘들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이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자 온 상하이의 방귀깨나 뀐다는 ‘재벌집 도련님들’이 즉각 최고급 슈퍼카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이 가진 고급 슈퍼카를 끌고 나와 주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질주하며 ‘과시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떼로 나타난 슈퍼카 행렬에 한국인 관광객들은 신기해하며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구경했다. 이 모습이 중국 내 인터넷과 각종 SNS로 퍼져나갔다.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호화 외제차와 슈퍼카를 몰고 나타난 이들을 향해 일부 누리꾼은 “중국인의 체면을 세웠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대다수 중국인과 SNS 여론은 냉담했다.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대규모로 찾아온 이웃 국가 손님들에게 유치하게 ‘돈 자랑’이나 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뤘다. 또 한 부류는 이런 목소리를 냈다. “너희들이 아무 노력도 안 하고 부모가 사준 슈퍼카를 굴리며 부를 과시하는 동안 수많은 또래 동포는 지금 미얀마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억류돼 국내 동포들을 사기 치는 일에 강제 동원되고 있다. 미얀마로 납치되지 않은 ‘운 좋은’ 우리는 (경제불황으로) 헐값에 소나 말처럼 부려먹히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다. 너희들의 슈퍼카가 중국인의 체면을 세웠다고? 지금 미얀마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억류된 수십만 명의 동포들을 보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그게 정말로 체면을 잃은(丢脸) 중국의 현실이다!”
고급 슈퍼카 행렬이 화제가 되기 며칠 전, 중국 언론과 인터넷을 달군 사건은 이른바 ‘왕싱 사건’이다. 왕싱은 최근 들어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조금씩 비중 있는 역할을 하며 차츰 얼굴을 알려갔지만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 가까웠던 남성 배우다. 그랬던 그가 불과 며칠 사이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가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까닭은 타이와 미얀마 국경 부근 마을인 미야와디에 있는 한 온라인 사기 조직에 납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2025년 1월3일, 타이의 한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캐스팅을 제의받고 상하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날아갔다. 출발 전부터 도착 직후까지 여자친구와 거의 실시간으로 위치와 소식을 공유하던 왕싱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것은 1월3일 낮 12시께. 여자친구의 스마트폰에 전송된 마지막 장소는 미얀마 남동쪽에 있는 미야와디 부근이었다. 그곳은 각종 온라인 사기와 보이스피싱 등을 일삼는 범죄조직들이 크고 작은 집단 근거지를 만들어 암약하는 곳이다.
2021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뒤 미얀마는 지금까지 정부군과 반군 간의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사실상 무정부에 가까운 상태다. 쿠데타 이후 치안은 물론이고 모든 정상적인 통치 시스템이 마비된 미얀마는 현재 각종 범죄 집단, 특히 보이스피싱을 위주로 하는 다국적 온라인 사기조직이 가장 많이 밀집된 곳이기도 하다. 미얀마 북부와 남동부 지역은 중국 윈난성과 국경을 마주하기 때문에 중국의 수많은 온라인 사기 범죄조직은 중국 내 단속을 피해 미얀마 북동부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자국인들을 고소득 취업을 미끼로 유인하거나 속여서 미얀마에 있는 자신들의 근거지로 데려와 각종 온라인 사기와 보이스피싱 사기에 이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4년 5월 이후, 미얀마 반군연합 세력을 이용해 이곳에 있는 온라인 사기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터진 왕싱 사건을 통해 중국인을 겨냥한 온라인 사기 범죄조직이 사라지기는커녕 지역 내 무장세력과 결탁해 갈수록 조직을 더 은밀하게 운영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소식이 끊기고 나흘 뒤인 1월7일, 왕싱은 타이 경찰과 미야와디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협조 덕분에 무사히 구출됐다. 왕싱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안 뒤, 그의 여자친구가 SNS에 그의 실종 사실을 알리며 각계의 도움을 호소한 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내 유명 배우들이 자신들의 SNS에 그의 구출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이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중국인 관광객이 타이 관광 수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터라 타이 정부는 왕싱 사건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했다. 이러한 여론이 왕싱의 구출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구출 직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왕싱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살이 쪽 빠진 몰골에 머리가 빡빡 깎여 있었고 두 눈은 거의 초점을 잃은 채 멍한 표정이었다. 그는 상하이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과 함께 미야와디 범죄 조직에 납치돼 같은 방에 감금된 중국인만 해도 대략 50명 정도였다고 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처럼 머리가 빡빡 깎인 채 범죄조직의 지시에 따라 온라인상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온갖 금융사기를 벌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왕싱 사건을 보면서 중국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상하이의 재벌집 아들들은 매일 초호화 슈퍼카를 몰고 다니며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중국인의 부’를 과시하고 있는데, 또 다른 수많은 젊은 청년은 무정부 상태의 미얀마에서 자국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범죄조직에 속아서 팔려 가거나 억류돼 ‘걸어 다니는 인민폐’(돈을 벌어주는 도구)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여름 개봉한 ‘고주일척’(孤注一掷)은 그해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중국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고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업 사기에 속아서 미얀마에 있는 온라인 사기 범죄조직에 납치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실제 원형은 하오전둥이라는 사람이 경험한 일이다. 그는 2020년 사업에 실패한 뒤 많은 빚을 지게 되자, 단기간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친척의 말에 속아 미얀마 북부 지역 코칸으로 갔고 그곳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강제 억류됐다. 그곳에서 59일 만에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뒤 자신이 당한 경험을 언론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증언했다. 당시 그의 증언은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그 후 중국에서는 ‘미얀마 북부 보이스피싱 범죄’(缅北电诈)라는 말이 널리 회자했고 사람들은 중국 정부에 강력한 제재와 단속을 요구했다.
왕싱 사건이 알려지면서 영화 ‘고주일척’과 하오전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왕싱 사건은 영화 속 내용과 하오전둥의 경험이 여전히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하오전둥은 왕싱 사건 후 홍콩 언론 ‘봉황 위성 티브이(TV)’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를 중심으로 동남아 일대에 흩어져 있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사기 조직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미얀마 북부 지역에만도 대략 20만 명 정도의 중국인이 강제 억류된 것으로 안다. 다른 지역까지 합치면 100만 명 이상일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 남성 청년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피해자 규모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농촌 지역 청년들이 대부분이고 취업하지 못한 대학생이나 고학력자들도 단기간 고소득을 벌게 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들어가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 대다수가 자신이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간다는 것이다. 어렵게 구출된 뒤에도 또다시 스스로 국경을 넘어 자기가 일했던 범죄조직을 찾아가는 사람도 많다. 막상 돌아와서도 딱히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왕싱이 실종 나흘 만에 중국으로 무사 귀환하자,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정부와 여론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왕싱이 불과 나흘 만에 속전속결로 구출되는 것을 본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나 남편, 남자친구 등도 관련 당국의 의지만 있다면 구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터넷에 ‘싱싱 귀가 프로젝트’(星星回家计划)라는 이름으로 파일을 만들어 미얀마에 억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 올렸다. 실종자들의 신상파일은 불과 사나흘 만에 1568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그 후 ‘싱싱 귀가 프로젝트’ 파일은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검열 당국에 의해 파일이 삭제당했기 때문이다. 파일에 올라온 피해자들의 신상정보와 사연 속에는 현재 중국 사회가 지닌 대부분의 모순과 문제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왕싱 사건 후, 수많은 중국 누리꾼은 애국주의 영화 ‘전랑’을 감독하고 주연했던 배우 우징의 SNS에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 “수십만 명의 사람이 미얀마의 범죄조직에 억류돼 있는데 당신이 말한 강대한 조국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영화 ‘전랑2’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징은 중국 여권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외에서 어떤 위험에 닥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 그리고 기억하라. 여러분 뒤에는 강대한 조국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미얀마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증언했다. “중국 여권을 내밀자 그들은 반색하며 ‘걸어 다니는 금괴, 걸어 다니는 인민폐들이 왔다’며 우리를 가장 먼저 납치해 감금했다. 우리 뒤에 강대한 조국은 보이지 않았다.”
‘강대한 조국’은 상하이 길거리를 질주하며 (외국인들에게) 부를 과시하는 재벌집 아들들의 고급 슈퍼카 뒤에나 있는 것일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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