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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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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라서, 트럼프가 아니라서 다시 한번 트럼프의 전쟁

바이든 대통령 지지자 4%가 변심, ‘두 번째 트로피’ 들어올릴 트럼프 진영이 준비하는 무서운 미래
등록 2024-03-01 07:32 수정 2024-03-07 02:30
2024년 2월24일 미국 매릴랜드주 내셔널하버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회의에서 연단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2월24일 미국 매릴랜드주 내셔널하버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회의에서 연단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2월24일(현지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내셔널하버에서 ‘보수정치행동회의’(CPAC)가 열렸다. 미국보수주의연맹(ACU)이 주최하는 연례행사다. 전·현직 보수 정치인과 풀뿌리 활동가가 대거 모여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거대한 성조기를 배경으로 한 연단에 올라 근엄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행사장의 또 다른 연단에 적힌 구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글로벌리즘, 여기서 잠들다.”

2월27일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미시간주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치러졌다. 개표 초반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일한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대사를 30%포인트 이상 앞서나갔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이어 경선 5연승이다. 캘리포니아 등 15개 주와 1개 자치령(미국령 사모아)에서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3월5일)까지 갈 것도 없다. 공화당 대선 후보는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굳어졌다.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미시간주 예비선거도 같은 날 치러졌다. 2월28일 밤 9시30분(한국시각) 현재 99% 개표율 속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81.1%(61만7천여 표)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당내에 그를 대체할 만한 후보는 없다.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0만표 이상 나왔다. 가자지구 전쟁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 지원을 거두지 않는 바이든 행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준비된 항목인데, 득표율 기준 2위(13.3%)다. 미시간에는 중동·아랍계 이주민이 많이 산다.

미시간은 대표적인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로 꼽힌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시간에서 1만여 표 차이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2020년 대선 땐 바이든 대통령이 15만여 표 차이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겼다. 2024년 대선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맞붙게 됐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미시간 유권자들은, 그리고 미국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도래 가능성이 그 선택에 달렸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무운을 빈다, 아메리카의 ‘동료 시민들’이여.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화려한 부활’이란 수식으로도 부족하다. 누가 예상했을까? 2020년 대선 패배 뒤 미국 정치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듯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대선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상대는 2020년 대선 때 맞붙었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 2024년 11월5일 치러질 미국 대선은 전·현직 간 ‘리턴 매치’다.

선거는 언제나 ‘심판’이 핵심이다. 2020년 대선 때는 심판 대상이 현직 대통령이었다. 2024년 미국 유권자가 심판할 대상은 전직 대통령일까, 현직 대통령일까?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닝컨설트가 2월23~25일 실시해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43%)은 트럼프 전 대통령(44%)에게 1%포인트 뒤졌다. 대선을 치른 2016년과 2020년의 2월 말에 실시한 민주-공화 양당 후보 간 여론조사 격차는 11월 본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사 결과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민주당 지지층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84% 대 6%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섰다. 공화당 지지층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88% 대 5%로 바이든 대통령을 눌렀다. 당내 지지기반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좀더 단단해 보인다. 무당파층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39%)과 바이든 대통령(33%) 간 지지율 격차가 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더이상 죽이지 마라.’ 2024년 2월26일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유대계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유혈극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더이상 죽이지 마라.’ 2024년 2월26일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유대계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유혈극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83%가 ‘계속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 ‘계속 지지’ 의사를 밝힌 유권자는 89%에 이른다. 특히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4%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판세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티파티 계승자’를 자처하던 신예 정치인

일리노이 주의회 상원의원이던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일약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2008년 11월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온 세상이 휘청이던 때다. 미국을 상징하던 거대 금융자본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해 베이징 여름올림픽을 떠들썩하게 주최했던 중국은 바야흐로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의 세기가 저물기 시작했지만, 일부 미국인은 이를 현실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한 달여 뒤인 2009년 2월 풀뿌리 보수주의에 기반한 ‘티파티 운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아래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미국 전역에서 뭉치고 있었다.

“낙태는 어떤 경우라도 허용돼선 안 된다. 동성결혼을 개별 주정부가 허용하더라도, 연방정부가 나서서 금지해야 한다. 1200만 명에 이르는 불법 이민자는 미국 체류 기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인 4600만 명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기후변화는 음모론에 불과하다. 어떤 식으로든 총기 소지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위헌이다. 어떤 이유로도 세금을 올려선 안 된다.”

금융위기가 만들어낸 안팎의 혹독한 상황에서도 오바마 행정부는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선진국’ 가운데 미국만 전 국민 의료보장 제도가 없었던 시절이다. 민간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의료권을 보장해주려는 ‘오바마케어’는 2010년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화두였다.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티파티는 조직적으로 저항에 나섰다. 당시 선거에서 공화당은 약진했다. 특히 예산권을 쥔 하원에서만 무려 63석을 늘리며, 30년 가까이 민주당이 틀어쥐었던 하원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티파티의 압도적 승리였다.

’한번 더, 미국을 위대하게.’ 2024년 2월24일 공화당 대선 후보 예비선거가 치러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록힐에서 열린 투표 독려 행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번 더, 미국을 위대하게.’ 2024년 2월24일 공화당 대선 후보 예비선거가 치러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록힐에서 열린 투표 독려 행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선거 승리를 이끌어낸 티파티는 영원할 것으로 보였다. 일부 티파티 활동가들은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주지사 공관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공화당 주류까지 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티파티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 또한 아니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홀연히 티파티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신예 정치인이 나타났다. 도널드 존 트럼프다.

민주당 소속에서 공화당으로 바꾸자…

트럼프는 1946년 독일계 이민자인 부동산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망나니’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그의 부친이 ‘규율’을 가르치기 위해 그가 13살 때 기숙형 군사학교에 강제 입교시켰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떠돈다. 부친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업고 일찌감치 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든 그는 30대에 이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부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막대한 부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할리우드를 넘나들며 고급 사교계를 주름잡았고, 온갖 추문이 꼬리를 물었음에도 텔레비전 리얼리티쇼에서 “당신 해고야”를 외치며 전국구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 그가 2015년 6월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트럼프식 농담’쯤으로 치부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처음엔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선출직 경력이 전무한 정치 초보에, ‘깍쟁이’ 뉴욕 출신 민주당 소속이던 그다. 돌변한 그가 공화당 ‘접수’에 들어갔을 때,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빠르게 세를 불려나갔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란 그의 으뜸구호가 사그라들던 티파티 운동을 되살려냈다. 한때 미국의 힘을 상징했던 제조업 중심지였던 이른바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트럼프주의’(트럼피즘) 바람이 미국 전역을 강타했다. 그는 압도적으로 2016년 대선에 출마할 공화당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본선에서 자신이 패배할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남편 빌 클린턴과 함께 백악관에서 8년을 보낸 그다. 연방 상원의원과 국무장관까지 지내며 관록을 쌓은 터다. 더구나 트럼프 후보를 둘러싼 각종 성추문과 탈세 의혹까지 들끓었다. 클린턴 후보는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트럼프 후보의 엇나간 발언이 나올 때마다 헛웃음만 흘렸다.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여전한 대중적 인기 속에 민주당도 무난한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2016년 11월8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치러졌다. 개표 결과 트럼프 후보는 6298만여 표를 얻으며 46.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클린턴 후보는 6583만여 표를 얻으며 득표율 48.2%를 기록했다. 얻은 표도, 올린 득표율도 부질없다. 미국 대선은 주별로 할당된 선거인단을 해당 주에서 단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에게 몰아주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다시, 승리의 길로.’ 2024년 2월2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서 열린 예비선거 승리 축하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다시, 승리의 길로.’ 2024년 2월2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서 열린 예비선거 승리 축하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들(이주민)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간다. 그들(중국) 쪽으로 우리 일자리가 빠져나간다.” 러스트벨트의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의 ‘경합 주’(스윙 스테이트)를 휩쓴 트럼프 후보는 30개 주를 확보한 반면, 선거 막판 ‘부자 몸 사리기’에 골몰했던 클린턴 후보는 20개 주를 얻는 데 그쳤다. 티파티의 계승자, 트럼피즘의 완벽한 승리였다.

‘미국 우선주의’에서 지-제로의 시대로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고립’을 자처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오랜 세월 공들여 쌓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세계화’ 체제를 근본부터 흔들어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두 기둥 삼아 미국 손으로 세우고 유지해온 국제질서를 미국 스스로 허물었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는 그 시작이었고, 곧 불을 뿜은 미-중 무역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 동맹은, 동맹 취급도 받지 못하게 됐다. 다자 외교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은 급전직하했다. 옛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 질서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다. 더는 국제사회를 이끌어갈 지도력을 갖춘 국가가 없는, ‘지-제로’(G0)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폭풍 같은 4년의 혼돈기를 지나 2020년 11월3일 미국 대선이 치러졌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지만, 투표율은 앞선 대선 때보다 6.5%포인트 높아진 66.6%를 기록했다. 1900년 이후 대선 최고 투표율이었다. ‘오바마의 부통령’인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8128만여 표(51.3%)를,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7422만여 표(46.8%)를 얻었다. 두 후보가 각각 25개 주에서 승리했지만, 인구 비례에 따라 주별로 할당된 선거인단 수에선 306명 대 232명으로 바이든 후보가 멀찌감치 앞섰다. 일부 경합 주에서 단 몇 표만 더 얻었어도 뒤집힐 수 있는 승부였다. 트럼프 후보는 패배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2021년 1월6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빨간색 모자를 쓰고, 목에 성조기를 두른 이들이 미국 민주주의의 ‘성전’ 격인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난입했다. 당시 의회에선 대선 결과를 확정 짓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명백한 선거 불복이자 민주주의 절차를 가로막으려는 폭동을 현직 대통령이 부추기고 독려했다. ‘트럼프의 시대’는 영원히 종말을 고할 것으로 보였다.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했던 상·하원 후보가 줄줄이 낙마했다. 한때 막강했던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눈에 띄게 약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선거 일주일 뒤인 그해 11월1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자택에서 대선 재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번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의 선거운동은 2021년 1월 퇴임 직후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집권 2기 준비하는 ‘미국 우선 이행 프로젝트’

바이든 행정부 출범 첫해인 2021년 중반부터 수도 워싱턴에서 신생 연구단체 하나가 세간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소기업청(SBA) 청장을 지낸 린다 맥마흔과 <폭스> 출신 보수 언론인 래리 커들로 등이 주축이 돼 만든 ‘미국 우선 정책 연구소’(AFPI)다. 이 단체는 누리집에서 “전직 장관 9명과 백악관 고위 당국자 출신자 25명, 전직 행정부 고위 당국자 40여 명 등 400여 명이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4년 2월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매릴랜드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 공군 1호기 쪽으로 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2월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매릴랜드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 공군 1호기 쪽으로 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단체는 2023년 9월21일 ‘미국 우선 이행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단체 쪽이 누리집에 올린 프로젝트 소개 영상을 보면, 미국 우선주의의 대척점에 세계주의(글로벌리즘)가 있다. 평범한 개인을 괴롭히는 건 연방정부의 ‘썩은 관료’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 사례가 나열된 뒤 프로젝트의 목적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정부의 ‘무기화’를 막으려면 집권 첫날부터 준비돼 있어야 한다. 새로운 ‘미국 우선주의 정부’가 2025년 1월 출범하는 첫날부터 ‘반격’에 나설 수 있도록 정책·인력·행동계획 등을 완벽히 준비해야 한다.” 연구소는 트럼프 행정부 집권 2기를 준비하는 ‘몸통’이다.

의사당 난입 사태와 탈세·횡령 등 각종 개인적 추문으로 91개 항목에 걸쳐 모두 4개의 사건으로 기소된 터다. 그럼에도 그는 건재하다. 아니, 연방정부의 부당한 ‘정치적 탄압’에 맞서 싸우는 ‘의로운 선지자’란 망토까지 두르게 됐다. 그가 경찰에 출두해 피의자 얼굴 식별용으로 찍은 사진(머그숏)은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위해 수배한다’는 문구와 함께 티셔츠 등 기념품으로 만들어져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일부 내부 반발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공화당은 다시 온전히 ‘트럼프의 정당’이 됐다.

8년여 끌어온 ‘반트럼프 운동’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럼프이기 때문에’ 지지받고 있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가 아니기 때문에’ 지지받았다. 이번에도 같은 이유가 통할까? <뉴욕타임스>는 2월19일 “2016년 대선 때부터 8년여를 끌어온 ‘반트럼프 운동’ 진영이 2024년 대선이란 또 한번의 싸움을 앞두고 피로감과 번아웃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집권 2기’의 그림자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다. 세계가 움츠리기 시작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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