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시진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전세계를 호령하고 겁박하던 대표 ‘스트롱맨’인 세 남자의 공통점은 자기애성 성격장애, 즉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의학사전에 따르면, 이 병의 주요한 특징은 ‘무한한 성공욕과 권력욕, (타인에게서의) 과도한 숭배욕’이다. 자기 자랑을 즐기는 것도 공통점이다. 푸틴과 트럼프는 근육질 몸과 돈을 내세워 ‘강한 남자’라고 자랑한다. 마오쩌둥 이래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21세기판 중국 ‘황제’로 등극한 시진핑은 무엇을 자랑하고 있을까.
푸틴과 트럼프가 동물적 남성성을 과시한다면, 시진핑은 의외로 자신이 ‘따뜻한 남자’라고 자랑한다. 2012년 11월 제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뒤, 중국 선전부는 시진핑을 줄곧 ‘따뜻한 모범 가장’의 이미지로 포장해서 홍보했다. 시진핑의 가정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으로 선전한다.
역대 중국 국가주석 가운데 부인과의 닭살 돋는 애정사와 행복한 가정을 시진핑처럼 대놓고 ‘자랑한’ 지도자는 없었다. 그들은 중국인들로부터 시다다(‘다다’는 큰아버지라는 뜻)와 펑마마(‘마마’는 엄마라는 뜻)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전 중국인이 본받아야 할 ‘국민 부부’로 칭송받는다. 2014년 이후 중국에 ‘시다다는 펑마마를 사랑해’ ‘결혼하고 싶다면 시다다 같은 남자와’ 같은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다.
“나는 매일 아내에게 전화한다. 결혼한 지 몇십 년이나 되었지만 똑같다. 비록 같이 있는 시간은 적지만 매일 연락한다. (부인) 펑리위안은 우리나라 유명 오페라 가수여서 매년 춘절에 방송에 불려나가 노래한다. 그래서 매년 섣달그믐이 되면 당직이 아닐 경우,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만두를 빚고 아내를 기다린다.”(<인민일보> 2019년 8월7일치. 비슷한 내용을 여러 정부 기관 매체와 인터넷에 연달아 내보냈다.)
‘따뜻한 남자’ 시진핑이 집권 뒤 지금까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가정 건설’이다. 그는 틈날 때마다 국가 거시 목표 ‘중국몽’을 이루려면 먼저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대가 얼마나 많이 변했고 생활구조가 얼마나 많이 변했든 간에 우리는 가정 건설을 중시해야 하고 가정과 가정교육, 가풍을 중시해야 한다.”(시진핑, 2015년 2월17일 춘절 단배식)
시진핑의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학교에서 일제히 가정통신문을 보내 훌륭한 ‘가풍과 가훈’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중화전국부녀자연합회(이하 중화부연)가 중심이 되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과 ‘미덕 여성’ 찾기 운동을 전개했다. 여성은 앞장서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현모양처가 되라고 주문했다.
1927년 3월 마오쩌둥은 ‘호남농민운동시찰보고문’에서 “중국 남자들은 보편적으로 정치권력, 가족권력, 신의 권력이라는 세 종류의 전통적 권력의 지배를 받지만 중국 여자들은 이외에 부권이라는 남자의 지배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당시 집에서 기르는 가축과 다를 바 없이 취급받던 수많은 중국 여성을 향해 “부녀의 역량은 위대하다. 세계 모든 일은 부녀자가 참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1940년 3월8일 옌안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연설 중)며 자신을 속박하는 가부장제 사회와 가정을 박차고 나와 ‘혁명하라’고 촉구했다.
1949년 사회주의 신중국이 건설된 뒤에는, ‘시대가 변했다. 남녀는 똑같다’라는 마오쩌둥 어록을 전국 방방곡곡에 붙이며 ‘돼지도 때려잡을 수 있는’ 용감하고 강철 같은 여성이 되라고 요구했다. 1966년 11월30일치 <인민일보>에는 이런 일화가 실렸다.
“선양의 한 부대에 왕이원이라는 여자 취사병이 있었다. 명절을 맞아 돼지 두 마리를 잡아야 하는데, 취사반원이 다 여자라서 누가 잡을지 난감해했다. 그때 왕이원이 용감하게 나서면서 ‘미국놈들은 이 돼지보다 더 크지만 당연히 때려잡아야 하지 않느냐. 이것도 혁명이다. 돼지머리를 장제스나 미국놈들의 머리라고 생각하면 때려잡지 못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에 의해 ‘네 가지 속박’을 박차고 나와 망치를 들고 돼지도 잡고 계급투쟁도 해야 했던 20세기 중국 여성들은, 21세기 시진핑 시대에는 다시 ‘집 안으로’ 돌아가 ‘착한 아내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신시대 신여성의 임무’라고 강요받는다. 덩샤오핑이 이끈 개혁·개방기에는 남자와 동등하게 일하고 돈 벌 뿐만 아니라, 백화점에 가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온갖 신상품을 사는 ‘소비자’도 돼야 했다.
한마디로 중국 여성은 시대 상황과 정치적 요구에 따라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변검 마술사 같은 역할을 요구받았다. 무엇이 진짜 ‘해방된’ 여성의 모습인지 알 수 없다. 언제는 망치 들고 혁명과 노동을 해야 하므로 밥도 공동식당에서 먹고 아이도 탁아소에 맡겨서 기르라고 하더니, 지금은 시다다 같은 따뜻한 남자랑 결혼해서 펑마마 같은 현모양처가 되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라고 한다. 모두 다 위대한 ‘정치적 아버지’들의 명령이다.
중화부연은 중국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특수한 비정부기구다. 중요한 국가기관이 몰려 있는 베이징 창안제에 중화부연 본부가 있다. 규모만 보면 ‘여성을 위한’ 건물로는 아마 세계 최대일 것이다. 1949년 정식으로 만들어질 때 조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남녀평등과 부녀 해방’의 실현이라고 천명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여성가족부’에 해당하지만, 1995년 베이징에서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가 열린 직후 중화부연은 정부 조직이 아닌 중국 여성의 권익을 대변하는 비정부기구로 탈바꿈했다. 중화부연 아래 수많은 진보적인 여성운동 시민단체가 만들어져 중국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집권한 뒤 진보적인 여성 관련 비정부기구는 모두 강제 폐지됐다. 특히 2017년 전세계에 ‘미투 운동’이 벌어질 때, 중국에서도 여성단체와 진보 페미니즘 그룹을 중심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났지만 많은 핵심 활동가가 체포되거나 감금됐다. 소셜네트워크나 웨이보, 블로그 등에서도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계정은 다 삭제되거나 폐지됐다. 심지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백래시’(반격)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너 정말 38스럽구나’(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을 빗댄, 원래는 대만에서 나온 조롱어)라는 반페미니즘 조롱어도 유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반여성 사건에 중화부연은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자신들의 조직을 여성들의 ‘친정’이라 부르지만, 정작 활동의 핵심 내용은 순종적인 여성 만들기다. 시진핑 시대 중화부연이 주력하는 활동도 ‘가장 아름다운 가정 찾기’와 ‘행복한 가정 뽐내기’ 운동이다.
지방의 중화부연 조직에서는 시진핑이 요구한 ‘신시대 여성’ 만들기 강좌도 연다. “2018년 3월 장쑤성 전장시에 있는 중화부연에서는 ‘새 시대의 여성’에 대한 연속 강좌를 시작했다. 이 강좌에서는 전통문화에 따라 여성답게 다리 꼬는 법, 앉는 법, 무릎 꿇는 법, 메이크업하는 법, 집 꾸미는 법을 알려준다.”(리타 홍 핀처,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중)
이에 질세라 ‘시대의 흐름’을 노련하게 간파한 일부 미꾸라지 같은 남자 정치인들도 북과 장구를 치며 ‘부녀의 미덕’을 칭송한다. 2018년 양회에서 전국정협위원 리한추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3·8 중국 부녀절’로 개명하자”고 발의했다. 그는 “중국 부녀들에게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미덕이 있었다. 애국심과 애가심이다. 그녀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것을 부녀의 모범이라 여겼다”는 것이 개명의 이유다.
빗자루 던지고 ‘자기 이름’ 기억하며 살기를20세기 전세계 많은 여성이 정치적·신분적 해방을 이뤘고, 중국 여성들도 전족에서 해방돼 멀쩡해진 두 다리로 집 밖으로 걸어 나와 ‘사회주의 신여성’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중국 여성은 여전히 정치적 가부장제에 갇힌 ‘부녀자’다.
중국에서 가장 혁명되지 못한 단어는 ‘부녀’(婦女)다. ‘여’(女)자가 부수로 들어가는 모든 한자어는 다 부정적이고 나쁜 의미로 쓰인다. 부녀의 ‘부’(婦)자는 여자가 빗자루를 든 모습이다. 빗자루를 들고 청소나 집안일을 해야 하는 존재가 부녀라는 한자어에 담긴 심오한 뜻이다.
중화부연이 진정한 ‘부녀 해방’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부녀’의 한자를 ‘빗자루를 던진 여자들’의 의미로 고치는 일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여’자가 부수로 들어가는 모든 나쁜 의미의 ‘여성’ 관련 한자어도 싹 다 뜯어고치길 바란다. 여자 둘이 나란히 있는 한자 난(奻)은 ‘다툼과 분쟁이 생긴다’는 뜻이고, 여자 셋이 모인 한자 간(姦)은 ‘간사하다’는 뜻이다. 보면 볼수록 기분 나쁜 글자들이다.
2020년 말, 가수 탄웨이웨이가 발표한 음반 《3811》(자신의 나이 38살에 부르는 11명의 여성 이야기를 담았다는 의미로, 노래 제목이 11명 여성의 이름이다. 가정폭력으로 살해당한 여성, 당나라 여성 시인, 아이를 태우고 택시기사를 하는 싱글맘, 농촌의 문맹 여성 등 다양한 여성 이야기로 구성됐다)에는 <샤오쥐안(가명)>이라는 노래가 있다.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가정폭력으로 희생된 여성들에 관한 내용으로, 자기 이름을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지는 여성에 관한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는 말한다. “내 이름을 숨기고, 내 이름을 잊어버리면 똑같은 비극이 발생하고 끊임없이 계속된다. 나의 아름다운 꿈은 묻혔고….” 여전히 빗자루에 갇혀 있는 중국 부녀들이여. ‘따뜻한 남자’에게 속아 살지 말고 ‘내 이름’을 기억하며 살자. 중국 부녀 해방 만세!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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