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일전쟁이 끝난 뒤 이스라엘의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꿈에 부풀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완승해, 이들이 차지하던 영토를 점령했다. 성도 예루살렘 등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시대라는 솔로몬왕의 강역이 포함됐다. 예루살렘 등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로 성서에 적힌 이스라엘 역사를 실증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땅을 빼앗았다는 국제 여론에 시달리던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 정통성을 더욱 다지려 했다.
발굴이 진행될수록 결과는 실망을 넘어 곤혹스러웠다. 19세기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시작된 이른바 ‘성서 고고학’의 기존 성과마저 부정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도 배운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 통일왕조 영화라는 게 있었는지를 회의케 하는 발굴 결과가 쏟아졌다.
6일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범위한 고고학적 발굴 성과는 1980년대 후반 집대성돼 학계에서 공인됐다. 다윗과 솔로몬은 근동의 강국이라는 이스라엘 통일왕조의 대왕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팔레스타인 내륙 산악지대에 있는 자그마한 부족국가의 군장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됐다. 앞서 성서 고고학자들이 솔로몬의 영화를 증명한다고 인정했던 기존 발굴 유적과 유물은 300년 뒤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왕조 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박해한 나치의 인종주의를 견본 삼아
선민사상에 기초한 이스라엘의 기원도 부정됐다. 이집트를 탈출하는 엑소더스의 지도자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이스라엘의 기초를 닦았다는, 구약 내용에 바탕을 둔 이스라엘 기원설(‘외부 침입설’)도 형해화됐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외부 집단이 아니라 가나안 원주민이 분리되면서 그 기원이 생겨났다는 게 고고학계의 다수설로 됐다. 과거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의 후예라는 현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뿌리 구분은 무의미하게 됐다.
이스라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에는 1985년 제정된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관련 조항이 있다. 의원 선거 후보자의 목표와 행동에 “유대민족 국가로서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포함”되면, 출마가 금지된다. 건국 70돌을 맞은 2018년 7월, 크네세트에서는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배타적 민족국가’로 선언한 기본법이 통과됐다. 기본법의 하나로 제정된 ‘민족국가법’은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조국이며, 그들은 배타적 자결권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한민국을 한민족이나 배달민족의 국가로 규정하는 조항이 없다. 전세계 어떤 국가의 현대 헌법에서도 그 국가를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국가로 규정하는 조항은 없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헌법은 그 헌법이 적용되는 국가 내 합법적 국민의 주권을 규정할 뿐이다.
앞서 두 사례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둘러싼 모순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건국은 서양 기독교 문명 세계가 낳은 유대인 문제의 파생품이다. 서양 기독교 문명이 성립된 뒤 계속된 차별과 배제의 상징인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전후 이스라엘 건국으로 귀결됐다. 이스라엘 건국은 박해받은 유대인이라는 ‘민족’ 혹은 ‘집단’의 자구책이겠으나,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이라는 ‘민족’ 혹은 ‘집단’에 대한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낳았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이스라엘 건국 정당성을 찾으려다가, 자신들을 박해한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수단으로 삼았다. 두 사례는 그것이다.
차별과 배제, 박해를 당한 유대인이 자신들의 고난과는 아무 상관이 없던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찾았다는 게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본질이자 모순이다. 이를 유대인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유대인 문제는 서양 기독교 문명이 만들었고, 현대 이스라엘 문제 역시 미국 등 기독교 문명에 입각한 패권국가가 만든 국제질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문제는 서방세계의 역사, 신학, 철학의 석학들이 2천 년 동안 고민한 주제다. 현대의 이스라엘 문제 역시 정치인, 정치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인권운동가들이 씨름하는 주제다. 그 뿌리는 서양 문명의 한 뿌리인 유일신 개념의 헤브라이즘이 싹튼 기원전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한쪽은 선, 다른 한쪽은 악
앞으로 이 연재에서 짚으려는 건, 헤브라이즘이 성립되기 시작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부터 이스라엘 현대사까지의 통사가 아니다. 유대교나 유대인 기원 등 신학적, 역사적, 고고학적 탐구도 아니다. 기독교 문명 세계에서 유대인 박해 등 유대인의 비극을 다루려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발화한 현대 중동분쟁의 탐구도 아니다. 이에 얽힌 한 사건만도 책 한 권으로 설명이 부족할 것이다.
내가 다루려는 건, 거대한 역사적 배경이 얽힌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놓고 극단적 편향으로 양분된 일반인들의 인식이다. 한쪽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선’, 다른 한쪽은 ‘악’으로 바라본다. 유대인, 이스라엘과 역사적으로 직접적 관련성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인들이 특히 그렇다.
한국의 보수 주류와 이에 동조하는 일반인들에게, 유대인은 우수한 능력을 타고난 민족이고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능력과 단결로 꾸려나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모범국가다. 특히 한국에서 최대 종교가 된 기독교의 영향으로 그 경전인 구약에 적힌 유대인 선민사상에 영향받아서, 유대인에 대한 보수적인 한국인들의 인식은 ‘선민’ 자체다. 극우 태극기 세력 집회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나란히 등장하는 배경이다.
한국에서 출간된 유대인 관련 서적 대부분은 육아, 교육, 사업, 학문, 예술 분야에서 그들의 성공신화와 처세술을 다룬다. ‘유대인 따라하기’는 지금도 한국 출판계와 처세술 비즈니스에서 주요 흐름이다. 반면 진보적인 인사와 진영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은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중동분쟁을 불 지피는 ‘갈등 세력 담론’에 사로잡혀 있다. 혹은 전세계 금융과 언론 등을 장악한 유대인 유착이나, 미국의 대외 정책 대리인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중동분쟁에서 이스라엘의 책임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서적들이 그것을 방증한다.
보수와 진보 진영 한편에선 세계를 은밀히 움직이는 세력의 주축이 유대인이라는 음모론 역시 횡행한다. 중세 유럽의 왕실 재정에 영향을 미친 로스차일드 등 유대인 금융자본에서 비롯한 ‘그림자 세력’ 음모론이다. 이는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우 지지층이 주장하는 미국 정부 내 ‘딥스테이트’(민주주의 제도 밖의 숨은 권력 집단) 세력 음모론으로 진화해 기승을 부린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대인 박해 물결을 자아낸 음모론 문건 ‘시온 장로 의정서’의 재현이다. 현재 횡행하는 가짜뉴스도 유대인을 놓고 시작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성경은 종교 경전, 유대인은 개종자들의 후손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극단적인 편향 인식을 교정하는 첫걸음은, 유대인은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유대인은 타고난 능력의 선민이나 음모 집단이 아니다. 유대인의 고난과 성공은 역사적 환경이 만들어냈다.
또 하나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위상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됐다는 것이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에 ‘귀환’한 지 벌써 140년이 넘었다. 그리고 국가가 건국된 지 70년이 넘었다. 이스라엘은 현재 중동의 강국이다. 이스라엘의 위상에 눈감은 도덕적 비판만으로는 중동분쟁을 이해할 수 없다. 현실적 존재를 외면하고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비판만 해서는 다른 국제 문제나 우리의 남북한 문제에서도 해결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유대인과 유대교 그리고 이스라엘을 둘러싼 신화를 벗겨내야 한다. 한국인에게 각인된 구약의 서술과 역사적 사실 동일화에서 먼저 벗어나는 게 그 출발점이다. 구약은 종교 경전이지 절대 역사서가 아니다. 종교 경전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등치하는 건, 현대 이스라엘과 서구의 보수적 기독교가 만든 허구적 신화다.
이스라엘 건국의 열쇳말인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비판적 접근도 필요하다. 유대인은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 유랑하면서도 민족적 정체성, 더 나아가 인종적 정체성을 유지했다고 주장된다. 그래서 그 후손인 현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왔고, 주권을 주장한다.
기독교 문명 성립 이후 유럽 전역에 퍼져 살던 유대인이 기원전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이들의 혈연적 후손인지는 불확실하다. 현대 유대인은 유대교로 개종한 유럽 전역 주민들의 후손임을 말하는 역사적 사실과 사건이 넘쳐난다. 로마 시대부터 이스라엘 건국 전까지 유대인이 ‘민족’으로 존재했는지, 아니면 종교 공동체로 존재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현대 중동분쟁에서 이스라엘의 책임과는 별개로, 주변 아랍 국가들의 책임은 없는 것인지도 따져야 한다. 주변 아랍 국가들은 과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립을 원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가 나란히 병존하는 ‘두 국가 해법’이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국제적으로 인정했던 오슬로평화협정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성 있는 해법인지도 논란이다.
우리 사회 차별·공정 담론과 연결돼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형성은 기독교 문명이 자신들의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타자’가 있어야 ‘우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타자화의 논리다. 차별과 배제는 그 수단이다.
서방세계에서 유대인 문제의 절정은 포그롬과 홀로코스트 등 유대인 박해다. 20세기 초 대공황을 전후로 일어났다.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자, 유대인 문제가 폭발했다. 서방에서 유대인 문제가 개선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사회경제 상황이 근본 원인이었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던 ‘자본주의의 황금기(골든 에이지)’로 서구 자본주의의 고용과 복지가 안정되자, 유대인은 서구사회의 일원으로 거의 편입됐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다시 커지자, 반유대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살피자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차별’과 ‘공정’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대중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전반적으로 해결하는 작업이 없는 가운데, 소수자 차별과 배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위험이 있다는 것이 유대인 문제가 보여준 교훈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양극단으로 편향된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앞으로 몇 차례 걸쳐 살피려 한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2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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