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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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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2/3 희생 예언한 ‘시오니즘의 뿌리’

귀환한 유대인 3분의 2가 죽을 것이라는 윌리엄 블랙스톤의 주장,
현대 이스라엘을 낳은 시오니즘의 자양분 돼
등록 2020-10-31 18:35 수정 2020-11-04 11:42

현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은 건국 뒤인 1950년대에 자신의 집에서 정례 히브리성경 모임을 열었다. 기독교의 구약성서이기도 한 히브리성경은 그에게 단순한 종교 경전이 아니었다. 성서는 세계 각지에서 이민 온 유대인을 통일된 국민으로 엮고 이스라엘 땅에 묶어놓을 ‘국민 교과서’였다.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를 재현하라

시온주의 역사학자인 벤시온 디누르 당시 교육부 장관, 유명한 근본주의 성서 해석가인 예헤즈켈 카우프만, 이스라엘의 당시 대통령 이츠하크 벤즈비, 3대 대통령이 되는 잘만 샤자르 등 이 모임에 참석한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생긴 국가 이스라엘의 이념과 여론, 교육은 그 모임에서 사실상 결정됐다. 성서는 그 바탕이었다.

벤구리온 등이 성서에 집착한 이유는 원주민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과 소유권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고, 모세가 이스라엘 족속을 이끌고 광야를 방랑한 끝에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다윗과 솔로몬이 영화로운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건설했다는 성서의 내용은 벤구리온 등 건국 주역들에게는 민족 이데올로기를 캐낼 황금밭이었다.

현대 이스라엘의 시나이반도 점령은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를 재현하는 새로운 ‘이스라엘 왕국’ 건설로의 길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모든 지식인 엘리트는 기독교의 성부-성자-성령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의 성서-민족-땅이라는 신성한 삼위일체론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성서는 재탄생한 국가의 형성에서 핵심 요소가 됐다.

히브리성경인 타나크, 그중에서도 율법서인 ‘토라’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땅에 합일된 정체성을 확인하는 ‘역사서’였다. 구약의 첫머리인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구성된 토라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직접 내려준 율법이고 이를 받은 모세가 직접 썼다고 하여 ‘모세오경’이라고 한다.

토라는 유대교에서 신성한 최고 경전이었지만 유대교 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선 미미한 존재였다. 토라의 율법을 구체적으로 해석한 주석서인 탈무드, 이 탈무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미슈나 등 이른바 ‘구전 토라’의 해석과 조정 없이는 독립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경전이었다. 특히 토라에 제시된 율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탈무드의 종교법이라 할 수 있는 할라카와 공인된 성직자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다. 토라의 구절은 그저 매주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에서 맥락의 연속성 없이 낭독됐을 뿐이다. 유대인이 공식적으로 쓰는 종교·생활 교과서는 미슈나와 탈무드였다.

청교도 천년왕국의 조건, 유대인 귀환

모세오경이 유대인 세계에 부각된 것은 팔레스타인 땅에 귀환해 유대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이 시작된 19세기부터다. 16세기에 성서를 유일한 종교 권위로 확립한 종교개혁의 사회·정치적 파장에 영향받았다.

종교개혁을 촉발한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맞서, 성서를 유일한 종교적 권위로 주장했다. 성직자가 독점하던 라틴어 성서를 일반 신자가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했다. 유럽 각지의 현지어로 성서가 번역되는 계기가 됐다. 성서가 로마 가톨릭교회와 그 성직자들의 독점에서 벗어나자, 다양한 해석이 등장했다. 특히 로마 교회의 부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적 신앙과 그 종파들이 생겨났다.

이들 개신교 근본주의적 신앙은 성서에 예언된 예루살렘의 회복, 즉 예루살렘에 제3성전 건설이 예수 재림의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예루살렘 회복의 예언을 실현하자는 믿음은 시오니즘 탄생에 기저가 됐다. 하지만 그 시작은 기독교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에서 비롯했다.

종교개혁에 불을 댕긴 루터와 장 칼뱅은 기독교 교회가 정신적인 이스라엘이며, 예수 그리스도 이후 하나님과의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인 신실한 기독교도가 배타적으로 독점한다고 봤다. 루터는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글에서 개종하지 않는 유대인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칼뱅의 후계자인 테오도뤼스 베자는 유대인이 예수가 재림하는 세상의 종말에는 기독교로 개종하며 그 중심 무대는 팔레스타인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칼뱅파의 주장은 영국 청교도에게 영향을 줬다. 현세의 종말과 예수가 재림하는 천년왕국의 도래를 주장하는 청교도에 예루살렘의 회복과 유대인의 귀환은 그 전제 조건이었다. 올리버 크롬웰이 17세기 청교도혁명으로 영국에서 집권하자 이런 신앙은 정치를 움직였다.

유대인은 13세기에 영국에서 추방됐으나, 크롬웰의 측근들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던 유대인들이 다시 영국으로 귀환하도록 추진했다. 크롬웰 청교도 정권에 암스테르담에서 성업하던 유대인의 금융업이 필요하기도 했다. 크롬웰의 비서장관인 존 새들러는 ‘왕국의 권리’라는 글에서 영국인이 이스라엘 12지파 부족 중 잃어버린 10지파 중 하나라며 유대인과 친척이라고 주장했다. 유대인은 17세기 중반이 되자 영국에서 재정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나중에 기독교 시오니즘이라는 종말론적 근본주의 신앙의 출발이 됐다. 기독교 시오니즘은 영국 청교도가 이주한 미국에서 근본주의적인 복음주의 신앙의 한 날개가 되면서 꽃을 피웠다. 미국 초기,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의 목사인 존 코튼 등은 유대인의 영국 재정착은 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궁극적 여정의 한 걸음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미국 하버드대학의 초기 총장인 인크리스 매더는 저서 <이스라엘 구원의 신비>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의 귀환을 주장한 대표 인물이다.

유대인 수용 말라, 로비 펼친 윌리엄 블랙스톤

미국에서 기독교 시오니즘을 운동 차원으로 끌어올린 이는 시카고의 부호에서 복음주의 전도사로 변신한 윌리엄 블랙스톤이다. 블랙스톤은 1871년 저서 <예수가 오신다>에서 역사를 신의 섭리라고 해석하는 ‘천계적 사관’에 바탕을 두고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시작으로 현세에서 예수의 왕국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블랙스톤의 저서는 48개 언어로 번역돼 100만 권 이상 팔렸다.

미국 시카고의 부호에서 복음주의 전도사로 변신한 윌리엄 블랙스톤. https://www.biola.edu/blogs/biola-magazine/2013/the-forgotten-founder

미국 시카고의 부호에서 복음주의 전도사로 변신한 윌리엄 블랙스톤. https://www.biola.edu/blogs/biola-magazine/2013/the-forgotten-founder

그에 따르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이 실현되면 기독교도가 하늘로 오르는 ‘황홀경’이 일어나고 불신자와 유대인은 남겨진다. 적그리스도가 출현해서 중동을 장악해 유대인에게 그들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고, 이스라엘에 평화를 제공하는 척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곧 유대인에게 숭배를 강요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적인 군사 복합동맹을 주도한다. 이 단계가 ‘야곱의 수난기’다. 이때 유대인의 3분의 1이 기독교로 개종해서 구원받고 나머지는 살해된다. 그리고 예수가 앞서 승천했던 기독교도들과 함께 재림해서, 현세 종말에 일어나는 선과 악의 마지막 대전쟁인 아마겟돈에서 적그리스도를 물리치고 현세에 그의 왕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귀환한 유대인 3분의 2가 다가올 천년왕국의 희생물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한 데서 보듯이, 그의 기독교 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에 뿌리를 뒀다. 실제 그는 19세기 말 러시아 등 동유럽에서 벌어진 유대인 박해인 포그롬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조국을 건설하는 데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유럽 국가나 미국이 박해를 피해 탈출하는 유대인을 수용하지 말라고 로비를 펼치기도 했다. 유대인은 재림하는 예수의 왕국을 구현하는 희생양이 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1891년 존 록펠러, 제이피 모건 등 대재벌과 정치인 등 미국의 유력 인사 413명에게서 서명을 받아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과 국가 건설을 미국이 지지할 것을 청원하는 유명한 ‘블랙스톤 메모리얼’을 주도했다. 그는 유대인 박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유대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러시아에 내정 문제를 놓고 지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러시아는 유대인이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다. 따라서 스페인의 세파르디(지중해 지역의 유대인. 중세 때 스페인이 이슬람 통치에서 회복된 뒤 스페인에서 추방됐다)처럼, 이들 아슈케나지(동유럽 유대인)는 이주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가난한 사람 200만 명이 어디로 갈 것인가? 유럽은 붐비고 더 많은 농민 인구를 위한 공간이 없다. 그들이 미국으로 올 것인가? 이는 엄청난 비용이 들고, 몇 년이 걸린다.”

러시아 유대인의 서방 이주를 반대한 블랙스톤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게 주자고 제안한다.

“1878년 베를린조약에 따라 불가리아는 불가리아인에게, 세르비아는 세르비아인에게 줬던 강대국들이 지금은 왜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게 돌려주면 안 되는가?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그리스처럼 그 지역들은 터키로부터 빼앗아서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에게 정당하게 속한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을 보호하려 트럼프를 세우셨다”

이는 곧 유대인 시오니즘의 출현을 예고했다. 유대인의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묵시록적 신앙과 민족주의를 뒤섞은 ‘블랙스톤 메모리얼’이 나오고 5년 뒤인 1896년 유대인 시오니즘의 아버지 테오도어 헤르츨의 <유대인 국가> 출간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반유대주의에 뿌리를 둔 기독교 시오니즘이 현대 이스라엘을 낳은 시오니즘의 자양분이 됐다는 사실은 시오니즘의 모순과 비극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 뒤 적그리스도와의 아마겟돈을 예언한, 블랙스톤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시오니즘은 서방에서 복음주의 신자 등 보수층에게는 이스라엘 건국으로 촉발된 현대 중동분쟁을 해석하는 담론의 밑바탕이 됐다.

실제 미국의 중동 정책에서 음으로 양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최대 기독교 시오니즘 단체이자 친이스라엘 단체인 ‘이스라엘을 위한 기독교도연합’(CUFI)의 연례 총회는 미국 주요 정치인들이 빼놓지 않고 참석하는 중요한 행사다.

워싱턴에서 열린 2019년 총회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블랙스톤의 로비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유대인의 조국에 대한 지지를 확신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치하했다. 그는 블랙스톤이 말하는 기독교도들의 승천인 ‘황홀경’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려고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세우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2020년 총회에도 폼페이오를 비롯해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 마코 루비오, 톰 코튼 등이 참석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 단체의 노골적인 지지자로서 묵시록적 사상에 바탕을 둔 기독교 시오니즘을 체화하는 대표 정치인이다.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의장인 존 하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정책을 자문하고 있다.

유대인의 시오니즘이 반유대주의에 뿌리를 둔 기독교 시오니즘과 제휴할 수 있었던 공통분모는 성서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서방의 근본주의적 신앙은 19세기부터 팔레스타인 땅에서 성서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실증하려는 ‘성서 고고학’으로 이어졌다. 이 움직임은 기독교 시오니즘이 꽃핀 미국의 보수적 목회자 출신 고고학자들의 주도로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됐다. 벤구리온 등 이스라엘의 건국 주역들도 구약을 국민 교과서로 만들고는, 역사적으로 실증하려는 성서 고고학 발굴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밀고 나갔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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