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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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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위기, 탈출구는 없나

주변국과 평화의 소녀상·사드 배치·핵미사일 갈등…

박근혜 정부, 동북아 국제정치 구조 오판 ‘고립무원’
등록 2017-03-09 12:52 수정 2020-05-03 04:28
2016년 2월7일 국방부는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6년 2월7일 국방부는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현실이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동쪽 일본과는 ‘평화의 소녀상’ 문제로, 서쪽 중국과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한국 배치 문제로, 북쪽 북한과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 문제로 갈등을 벌이고 있다. 국론 분열은 심각하다.

현재의 외교안보 환경은 오나라 육손과의 이릉전투에서 대패한 울분으로 유비가 사망한 직후 촉나라가 동쪽 오나라, 서쪽 강족(羌族), 남쪽 서남이(西南夷), 북쪽 위나라 등으로부터 다방면 압박에 직면한 것과 유사하다. 당시 촉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 등불과 같았다.

우리가 직면한 외교안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한국을 짓누르는 외교안보 위기의 근본 원인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미국의 의심을 받아가면서까지 노태우 정부 시절 시작된 북방정책(Nordpolitik)을 발전시켜 중국과 북한에 가까이 다가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남북 교류를 통한 한반도 안정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경제·사회적 통합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의 정치적 통합을 목표로 하는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일차원적 외교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적 상황을 오해한 끝에 미국 일변도로 기울어 남북관계와 한-중 관계는 물론 한-일 관계마저 후퇴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동북아 국제정치 구조를 오판하고, 톈안먼 망루 외교 등 단기 성과에 집착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에 대한 군사전략적 우위 확보와 함께 한-중 관계를 이완시켜 동북아를 ‘한·미·일↔북·중·러’ 냉전 질서로 되돌리려는 목적으로 감행한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술수에 넘어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일차원적 방식으로 대응해 한국 외교를 출구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우리 외교안보가 위기에 처한 것은 멀리는 한국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군부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이 얼마나 허약하고, 미군과 중국군(중공군)이 얼마나 강했는지 전승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이해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으며 △미군과 강력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군부는 무게중심을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현실주의 외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물론 때로는 적대감마저 보이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이 끝난 지 64년이나 지났지만, 70대 이상 세대의 대다수는 북한에 대해 전율에 가까운 공포감과 함께 증오심을 품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사대부는 물론, 대다수 백성들도 명나라를 ‘조선을 다시 세워준 은인’으로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군부를 중심으로 한 우파 인사들도 미국을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군부 지도자들의 DNA에는 북한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미군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각인돼 있다. 이들에게 유연한 현실외교는 반미(反美)와 다름이 아니다. △중국의 부상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미국의 정책 변화 △일본의 보통국가화라는 동북아 정세 변화 속에 중심을 잡아야 할 외교부는 매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장·차관을 비롯한 행정부 각료들이 심지어 새벽까지 회의를 하지만, 간부 대다수가 사무관 시절부터 판에 박힌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범생 스타일이라 수가 뻔히 보이는 대책만 제시하고 있다. 필자가 접해본 외교부 간부 대다수는 큰 틀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제시할 만한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한 듯하다. 매일 발생하는 사건에만 매달려 그날그날 대응할 뿐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정책을 취했을 때 어떤 결과가 야기될지도 잘 모른다. 사무관부터 장관까지 습득하는 정보의 양과 질만 다를 뿐 사고방식 자체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아무리 장시간 회의를 하더라도 유사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NSC 수장들은 군인 출신
2016년 4월2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2016년 4월2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외교부는 대국을 보기보다는 일차원적 대응을 지속함으로써 외교안보 상황을 극도로 악화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 △사드 한국 배치 △평화의 소녀상 부산 설치 문제가 대표적이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집만 센 지도자와 일부 언론의 단견(短見)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외교안보는 절망적 상황으로 내몰려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외교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이 잘 보지 못하는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면밀히 관찰, 진단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외교부와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 등에서 파견한 직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파견 부처들과 비슷한 정책 판단을 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NSC 수장(首長)인 안보실장이 전략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인물일 경우 NSC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NSC를 주도한 인사들은 안목이 좁은 사람들이었으며, 박근혜 정부 NSC 수장들은 군인 출신들로 외교안보 문제를 과도하게 미국만 중시하고, 디테일(detail)을 강조하는 군부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지금의 외교안보 위기를 초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북한을 포함한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국정원은 사실보다는 정권 희망 위주로 정보를 수집,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북한 정보는 정권이 희망하는 방향으로 수집·가공돼 오늘날같이 옹색한 외교안보 환경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북한 문제를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 통일부도 비슷하다. 통일부는 외교안보 부처 내 목소리마저 미약하다.

어떻게 해야 당면한 외교안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사면에서 적을 맞이한 촉나라 제갈량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전쟁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오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사안은 사드 한국 배치 문제이지만, 이 문제를 야기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이다. 우리 안보의 최대 위협은 북한 핵과 미사일이나 지금은 파생된 사드 문제가 더 우리의 숨통을 죄고 있다.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를 이유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정권 생존과 우리에 대한 군사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사드 한국 배치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북한의 핵위협을 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미국에는 중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유지·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국은 사드 한국 배치로 인해 미국에 대한 전략적 균형이 무너질까봐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면 중국은 전략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신무기 개발이 필요하고, 이는 중국을 미국과의 무기 경쟁에 몰아넣어 중국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중국은 주로 이런 이유로 사드 한국 배치를 반대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중 전략 경쟁의 한복판에서 빠져나오려면 일차적으로 북한과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독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정권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감행할 수 있는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은 국제 제재로 인해 물자 반입이 막히면 인민들의 피를 팔아서라도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원하며, 또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칠보산 관광 등 협력사업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 남아도는 한국 쌀과 북한산 광물·해산물의 교환거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와 논의해 북한에 가해진 각종 제재를 점차 해제해나갈 필요도 있다. 여기에서 북한 핵·미사일과 사드 한국 배치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이 경제제재 방법으로 체제 생존이 걸린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없다. 제재보다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리의 대응 능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서독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소련과 대등한 외교를 했으며, 일본도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지만 중국에 잘 대응해나가고 있다.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것은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북한 등 간 동북아 지역에서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다. 더 확고한 안보를 세우려면 한국의 경제력이 더 강해져야 한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태종에게 항복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식량이 떨어졌기 때문이며,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위기에 처한 소련에 300억달러 이상 지원할 정도로 경제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통일부를 남북협력부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대다수 선진 강국의 행정부 수석부처는 외교부(미국은 국무부)이다. 독일에선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외교 업무를 총괄한다. 차기 정부는 외교부를 부총리 부처로 격상함과 함께 모범생 스타일의 외교관이 아니라, 정치력과 국제 감각을 갖춘 인사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국방부의 문민화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육·해·공군 할거주의에서 벗어나 총체적 시각에서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에 맞서는 군 구조 개편을 단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 자산 획득·운용 측면에서 미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육군 중심의 군 구조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국정원은 정치 개입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정책 판단은 하지 말고 사실만 수집·정리해 NSC와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등 외교안보 관련 부처에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은 북한의 소멸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북한과의 협력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통일부를 남북협력부로 개칭할 필요가 있다.

서독도 통일부가 아니라, 내독부를 두었다. ‘내독부’라는 명칭은 ‘독일 내부 일은 독일이 알아서 한다’는 민족 의지의 산물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즉 무불통지(無不通知)형 전략가(책사)가 NSC를 맡아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상대도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국가 안보는 진보와 보수가 상대방도 애국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즉 국민에게서 광범한 지지를 받을 때 확보할 수 있다. 우리의 상대는 북한이나 미국, 중국, 일본이지 우리나라 내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우문태(宇文泰) 정치학 박사·중국청년정치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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