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팽창을 계속하고 있고, 일본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해 외세에 한반도 개입 명분을 주고 있다. 중국 경제는 지금도 연평균 6∼7% 성장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20년간의 정체기를 보낸 일본은 2012년 아베 신조 총리 재집권 이후 미국을 등에 업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
북핵 위기의 근원인 한반도 분단은 가까이는 한국전쟁, 멀리는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은 인구는 조선의 두 배인 2천만 명, 경제력과 군사력은 조선의 세 배가 넘었다. 임진왜란 이후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더 커졌다. 18세기께 도쿄는 100만 인구의 세계 최대 도시였다. 당시 베이징 인구는 50만 명, 한양 인구는 30만 명 정도였다.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이러한 경제·군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만주 불안정으로 멸망한 중국 왕조들중국은 임진왜란 때는 조선 해군의 도움을 받아 일본군을 조선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19세기 들어 약점을 드러냈다. 중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다가 30여 년간의 내전을 거쳐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등장했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세계 최강 미국과 무승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제국주의 침략과 국공 내전을 거치면서 조직된 힘이 분출한 결과였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응축해온 에너지를 일거에 발산하고 있다. 시진핑의 주도로 국내적으로는 반부패, 대외적으로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기치로 남중국해와 인도양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 한다. 팽창하는 중국과 저지하려는 일본 사이에 낀 한반도는 분단 71년을 맞았다.
북한과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순치(脣齒), 즉 입술과 이빨의 관계다. 선비족이 세운 수, 한족의 송과 명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만주의 불안정이 원인이 되어 멸망한 중국 왕조는 10개가 넘는다. 1592년 명은 일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려고 대군을 파병했다. 1894년 청은 영국과 러시아 등의 침략에 허덕이면서도 조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군을 보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1년이 되지 않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때 연 100만 명 이상의 대군을 파병해 미국에 도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미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톈안먼 망루외교’에 참가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 북한이 2016년 1월과 9월 제4차, 제5차 핵실험을 감행했음에도 중국은 북한의 생존에 타격을 줄 만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목구멍에 위치한 북한의 혼란이 만주를 거쳐 수도 베이징 일대로까지 파급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중국은 ①중부전구(베이징) ②동부전구(난징) ③서부전구(란저우) ④남부전구(광저우) ⑤북부전구(선양) 등 5개 전구(戰區)를 갖고 있다. 한반도 사태를 염두에 둔 중부와 북부 전구가 상대적으로 더 강력함은 물론이다. 중국은 ①북해함대(산둥성) ②동해함대(저장성) ③남해함대(광둥성) 3개 함대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보하이만을 중심으로 총군사력의 40%에 달하는 2개 전구와 1개 함대를 배치하고 있다. 한반도에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북부와 중부 전구 병력이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중국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시 북한의 불안정을 우려해 북부전구 병력 30만 명을 국경으로 전진 배치한 적이 있다.
‘중국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 일본 사회 확산현재의 일본은 1930년대 세계 공황기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당시 일본도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했고, 통화팽창을 통한 경기 부양을 추구했다. 자기애(narcissism)의 시대이기도 했다. 오늘날도 일본을 찬양하는 서적이 잇달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 국수주의(ultranationalism)에 빠져 한국을 혐오하고 중국을 배격한다. 중국과도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가쿠열도)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전자·정보통신기술(ICT)을 총동원하는 현대전이 될 것이며, 일본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의 약점을 핵무기라는 대량파괴무기(WMD) 확보를 통해 보완하려 한다. 중국은 북한의 WMD 개발을 확고히 반대한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WMD 개발을 수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핵은 북한이라는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다. 북핵이라는 기생충을 없애려면 숙주인 북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약을 투약해야 한다. 과도한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원유 공급 중단 같은 특단의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중국을 지키는 외곽의 해자(垓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하면 적게는 200만~300만 명, 많게는 700만~800만 명의 난민이 중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 중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에는 참가하되, 북한 주민의 생활과 관계되는 상품 수출입은 허용한다. 한국은 2010년 5·24 대북 제재 조치에 더해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인 2016년 2월 개성공단 철수를 단행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중국의 대북 수출은 2016년 2분기 약 8억달러로 1분기보다 31%나 증가했다. 북한의 중국 경제 의존도는 최근 90%를 넘어섰다. 중국의 역량과 의지를 고려하지 않는 어떠한 대북 제재도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이유다. 북한도 중국 경제 의존 심화가 정치적 의존을 가중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2014년께 완공된 제2압록강대교가 아직 개통되지 않는 것은 중국에 대한 북한의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 한 원인이다.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는가? 국가가 붕괴하는 것은 내부 불만이 폭동으로 표출되면서 강력한 후원국의 지원이 중단됐을 때가 일반적이다. 1990년대 초 소련의 후원이 끊어진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붕괴가 대표적이다. 북한 체제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2016년 5월 방송 (VOA)와의 인터뷰에서 “강력한 이웃 나라가 지원하는 상황에서 독재정권이 붕괴된 사례는 거의 없다”면서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십 년째 대북 지원을 하고 있어 (북한) 붕괴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무너졌다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외교력을 쏟아붓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도 결정했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 이후 대다수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최대 경제협력 파트너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중국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아시아 국가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미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 Asia) 정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대양(大洋)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의 해양굴기 저지가 주목적이다. 미국은 전자·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글로벌정보통신망(GIG)을 기초로 유라시아 대륙 연안(rim)에서 미군과 동맹국군, 우방국군을 통합해 군사력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 배치될 사드의 신형 버전 ‘사드 2.0’은 GIG의 한 부분으로 미사일방어(MD)를 포함한 사이버협력시스템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사이버 전략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중국은 여기까지 내다보고 사드 한국 배치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중국은 한국군이 아니라 미군이 주도한 유엔군의 38선 돌파를 여러 차례 경고한 뒤 개입했다. 사드도 중국을 겨눈 ‘미국의 전략무기’라는 이유로 한국 배치에 반대하는 것이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4분의 1을 상회하며, 무역 흑자의 절반 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한다. 사드 한국 배치 문제를 두고 한-중 관계가 더 악화될 경우 한국은 경제적 타격은 물론, 경제력 약화에 따라 안보 기반까지 손상될 우려가 있다. 북핵은 물론이고 사드 한국 배치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함께 중국과 더 깊이 소통해야 하는 이유다.
한 나라의 안보에는 군사 외에 외교와 경제 부문도 포함된다. 외교·안보 정책 결정에 군의 이해관계가 지나치게 많이 반영되는 것은 문제 있다. 동아시아의 안정을 유지시키는 △미-중 협력 △일본 평화헌법 △한반도 비핵화 등 3개 축 가운데 앞의 2개는 허물어지고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무너졌다.
한국의 안보는 2만7천 명의 주한미군, 한-미 상호방위조약, 미군의 전시작전권 행사, 그리고 국군에 의해 보장된다. 중국 역시 북한의 군사행동을 제약하고 있다. 한·미 관계는 다소 후퇴가 용납될 만큼 여유가 있다. 그런데 중국이 지원을 계속하는 한 북한을 붕괴시킬 수 없으며, 사드 한국 배치는 중국의 반대도 반대이지만 북한의 다연장로켓과 장사정포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효용성이 제한된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북한이 모두 관계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한국의 국익에 가장 맞는 외교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안보, 언제까지 미국에 맡겨둘까임진왜란, 청일전쟁, 한국전쟁 때와 같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힘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에 인화물질이 쌓이고 있다. 누가 성냥불을 댕기면 불이 붙을 상황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통일을 이루려면 한국군의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북한과 데탕트(긴장 완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 힘만으로 북한의 군사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국방체계도 갖춰나가야 한다. 중국과 일본 간 건곤일척의 대결을 눈앞에 둔 지금 한국의 안보를 계속 미국에 맡겨둘 경우 한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우문태 정치학 박사·중국청년정치학원 객원교수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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