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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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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는 백척간두

트럼프 당선, 한– 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으로 직면한 위기…

중국의 북핵 문제 강경 대응, 일본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 커져
등록 2016-12-06 22:15 수정 2020-05-03 04:28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협상 재개 선언부터 체결까지 27일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졸속 추진됐다. 11월23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협상 재개 선언부터 체결까지 27일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졸속 추진됐다. 11월23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큰 나무는 비바람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가 썩어 쓰러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외침이 있기 전 부패와 혼란으로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호남 동학군이 봉기했다. 전주를 점령한 동학군이 대원군과 모의해 고종을 폐위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민씨 일족은 민영준(나중에 민영휘로 개명)을 청나라에 보내 원병을 요청했다. 청나라가 파병을 결정하자 일본도 톈진조약 제3조(조선 파병시 통보 의무)를 빌미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조선이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인 것이 일본군의 조선 진입을 불러왔다. 일본은 이어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에서 청나라 세력을 몰아냈다.

조선은 이번에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다.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지원했다.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은 1904~05년 뤼순과 선양 육전 그리고 동해 해전에서 러시아를 연파하고, 1910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 정부가 보여준 것은 무능과 무책략, 대외 의존밖에 없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날카로운 대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가 새 국제질서를 향해 꿈틀대고 있다. 지금은 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이 한반도를 탐내던 19세기 말과 유사한 점이 많다.

‘선택적 관여’에 담긴 의미

혼용무도(昏庸無道)한 대통령이 통치하고 외교·안보 분야를 포함한 많은 정부 지도자들이 무능, 무책략, 대외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당시와 상당히 닮았다.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한 것은 분명하지만, 대외정책은 여전히 한국과 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세계 모든 나라에 상수로 작용한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주창했다. ‘미국 제일주의’는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익 확보를 위해서는 재균형(rebalancing to Asia)이 아니라 ‘선택적 관여’(selective engagement)가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나왔다.

‘미국 제일주의’는 먼로식(전통적) 고립주의와 다르게 필요시에는 관여도 할 것이라는 점에서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라 할 수 있다. 트럼프가 경제 측면에서 중국 포위를 의미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의사를 다시 천명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개정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미국이 더 이상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멕시코 등을 경제적으로 포용할 힘이 없음을 고백한 것과 다름없다.

미국은 2015년 약 8천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는데, 중국과의 교역에서만 3700억달러 적자를 보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급성장한 경제력에 힘입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을 주도하는 한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출범시키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세계 제2위 규모의 내수시장을 무기 삼아 신조공질서, 즉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동아시아의 3대 안보 이슈는 △중국의 해양굴기 △중국·대만 관계 △북한 핵문제이다. 모두 미·중·일 관계는 물론 한국의 현재 및 미래 안보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미국은 군사력과 기축통화(달러) 발권력 등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약화는 중·장기적으로 군사력 약화와 함께 기축통화 발권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잘 아는 트럼프는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면서 한국과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동맹국들에 재정 기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국방 분야 연방 예산 자동 삭감 조치(시퀘스트)를 폐기하고, △전투 병력(49만 명→54만 명) △군함(270척→350척) △전투기(1100대→1200대) △해병대(23개 대대→36개 대대) 증강을 추진하려 한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어떠한 세계 질서를 추구할 것인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시도할 것인가? 정말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러시아계가 다수 거주하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를 포함한 발트 3국과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 지방) 등을 러시아에 양보할 것인가? 나토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러시아는 여전히 경제난을 겪고 있으며, 러시아 국민의 블라디미르 푸틴 지지도 예전 같지 않다. 푸틴은 경제난이 지속돼 정권 안정이 흔들릴 경우 러시아 민족주의에 기대기 위해서라도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에서 ‘하이브리드 전쟁’(비정규전, 사이버 공격, 정보 조작, 외교 등을 혼합한 새로운 유형의 전쟁)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 군사력 강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전인 9월15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에서 강한 미국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 뒤 지지자들과 만나고 있다. REUTER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전인 9월15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에서 강한 미국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 뒤 지지자들과 만나고 있다. REUTERS

나토가 에스토니아 등을 포기할 경우 그 무기력은 만천하에 드러나 붕괴하고 말 것이다. 반대로 나토가 에스토니아 등을 지키려 할 경우 러시아와 전쟁까지 각오해야 한다. 이런 극단적 경우까지 상정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나토를 포함한 범대서양 관계를 경시하면 독일은 재무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질서로 복귀할 가능성마저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면 남는 힘을 중국을 견제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시진핑 단일지도 체제로 이행 중인 중국은 저성장을 감내하면서 개혁해나간다는 신창타이(New Normal) 경제를 운용 중이다.

시진핑은 정치·경제 분야에서 불확실성을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국민들에게 민족주의 감정이 결부된 동남중국해 및 북한 문제와 관련 미·일의 압력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어렵다. 미국 역시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이나 동아시아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체결 등을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즉 신조공질서를 구축하려 한다면 앉아서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재균형 정책’보다 더 강하게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할 경우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지렛대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핵문제 해결은 지체되고, 한반도는 한층 더 불안정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일본의 어깨너머로 동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경우, 일본은 안보 불안감이 증폭되고 핵무장 등 군사력 강화를 시도할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은 남쿠릴 4개 도서 문제 등과 관련한 러시아와 일본 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음은 한– 일 상호군수지원협정

일본은 미국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중국을 견제하는데, 일본 스스로 군비를 증강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제 측면에서 중국 포위망 중 하나인 TPP 출범 무산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등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경제력 증강을 추구하려던 일본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될 경우 어쩔 수 없이 중국 주도의 새 동아시아 질서를 수용하되, 중국의 경제성장이 정체될 경우에는 미국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서 함께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협력 체제를 만들려 한다.

이를 위해 동원된 것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다. GSOMIA는 재협상을 시작한 지 1개월도 안 돼 속전속결로 지난 11월23일 한국 국방장관과 주한 일본대사 서명으로 발효되었다. 그런데 GSOMIA는 미국 ‘재균형 전략’의 완성을 의미한다.

일본과 군사정보를 교환할 필요성은 있다. 일본은 정보수집위성 5기,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천km 이상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 막강한 정보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GSOMIA는 양날의 칼이다. 정보 획득에는 도움이 되지만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단서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군사정보 획득이라는 작은 이득을 위해 미국과 중국 간 냉전 선도, 일본의 한반도 문제 개입 가능성 증대 등 큰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GSOMIA 다음은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이 될 것이다.

2012년 한–일 정부는 GSOMIA와 ACSA 병행 체결을 추진했다. 하지만 ‘밀실 추진’ 논란으로 GSOMIA 체결이 무산되면서 ACSA 논의도 자연스레 묻혔다. ACSA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항공기나 함정 등이 한반도에 투입되는 국제법적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 군수물자를 주고받으려면 협정 체결국 간 군사비밀 정보교환이 불가피하다. 군수물자 교환을 위해서는 협정 상대국 공항과 항만 위치 등의 정보를 미리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 협정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GSOMIA와 ACSA는 ‘이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다. GSOMIA와 ACSA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국 배치와 더불어 중국을 한층 더 자극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중국 대응과 관련해 한국이 일본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할 경우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집착은 더 강화되며, 북한 감싸기는 지속되고, 북한 핵문제 해결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한반도 통일이 난망해질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이 한국에 대해 한류 확산 차단, 여행객 수 조절 등 저강도 경제 압박을 가할 경우 경제력 약화는 물론 안보 기반까지 손상될 수 있다.

19세기 말 위기를 기억하라

19세기 말 일본이 톈진조약을 빌미로 조선에 파병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켜 조선을 병탄한 것이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분단 고착화로까지 이어졌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 동의 없이 일본과 GSOMIA 체결을 밀어붙인 정부 관계자들은 나중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향도(向導)한 ‘제2의 민영휘’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더욱이 어리석은 지도자로 인해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발이 얼었다 하여 오줌을 누어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언 발에 오줌을 누면 당장은 발을 덥힐 수 있지만 곧 발이 더 차가워지는 것은 물론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우문태(宇文泰) 정치학박사, 중국청년정치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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